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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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또는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비슷한 제목이기도 하고 후자가 더 친절한 제목 같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온갖 사상범 - 그들의 입장에서 사상범이지, 실상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온갖 이유들로 수용되어 있다 - 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의 하루를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시선으로 아침 다섯 시부터 취침시간인 밤 열 시까지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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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다섯 시 기상부터 점호, 아침식사, 작업장으로 가는 여정, 작업장에서의 일, 점심시간, 오후 작업, 수용소 복귀, 중간중간의 인원점검, 저녁 시간, 점호, 취침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가 수용소에서는 모든 것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다. 밥 한 끼 - 그래봐야 멀건 국물만 있는 양배추(그것도 썩은) 수프, 거기에 생선 머리와 몸통 뼈와 꼬리만 남은 건더기, 건더기도 없는 죽 등 -에 목숨 걸고, 담배 한 모금 얻어 피우기 위해 비굴하게 아양떨고, 영하 27도의 날씨에도, 작업도구가 없어도 맨땅에 헤딩하듯 작업은 알아서 꼭 완수해야 하며, 수용소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그런 일상의 나날들이 주인공 '슈호프'가 있는 소비에트 공화국, 스탈린의 수용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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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있는(솔제니친은 1945년 반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강제노동 수용소에 있었다) 이 소설은 스탈린 시대의 강제노동 수용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극도로 가혹한 환경에서의 중노동과 수용소 내에서 만연하고 있는 부패와 뇌물, 밀고, 그리고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약자들인 죄수, 감독관 등의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같은 죄수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막사장이나 당번들, 소포 담당하는 사람, 물건 보관해주는 사람, 취사부들,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들과 그들의 갑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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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 이야기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도 만연한 부패한 정치권력 이야기이며, 근본적인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문제, 자신이 속한 소집단의 이기주의로 인한 편가르기 등 이 소설을 읽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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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끝에 나오는 침례교도 '알료쉬카'가 '슈호프'에게 하는 하느님에게 하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당장의 작은 만족을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알료쉬카'의 말은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술에 대한 언급도 있다. '예술 과잉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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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슈호프'는 자유를 얻는다 해도 그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모른다. 이미 수용소에서의 생활에 길들여져. 막연히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나 간절함은 없다. 10년의 형기를 마쳐도 다시 유형을 당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 실제로 그런 죄수들이 태반이다 - 오직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 견디어 나가며 영창에 안 가는 걸 감사하게 여기고, 그저 죽 한 그릇, 빵 한 개 더 먹을 수만 있으면 행복하다. 그에게는 미래나 희망은 없다. 단지 하루하루 견디어 나가는 똑같은 오늘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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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p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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