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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의학박사, 철학박사, 정신과 의사 등 여러 가지 직함의 유대인인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의 자전적인 수용소에서의 체험이 1부이고, 2부는 수용소에서 깨달은 인간 본연의 의미, 즉 삶의 의미를 새로운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통해 새로운 정신질환의 치료를 고안한 저자의 이론적인 개념을 정리했고, 이어 3부는 1983년 서독에서 열린 제3차 로고테라피 세계대회에서의 발표했던 내용의 요약이다.
우선 그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로고테라피' 얘기에 앞서 수용소에서의 자전적인 체험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그도 수용소에서의 인간 이하의 취급과 잔인한 체벌 및 가스실의 집단 학살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은 없다. 이미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다른 체험자들의 증언에 의해 나치의 만행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하는 집단 광기와 같은 이야기들은 이미 차고 넘쳐 굳이 재탕, 삼탕 할 필요도 없지만, 그 자신의 기억 속에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을 거란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하더라도 그러한 이야기들을 다 빼고서는 수용소의 진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고통과 - 육체적은 물론 심리적인 - 인간 이하 짐승, 그것도 이미 죽어있는 고깃덩어리와 같은 취급에 대해서 담담하게 서술한다.
나치 장교의 손가락 움직임에 의해 삶과 죽음이 갈리고, 병에 걸리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다시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의 길로 간다. 수감자 중에 다른 수감자를 감시하고 나치 대원보다 더 악랄하게 동료 수감자를 가혹하게 괴롭히는 '카포'라는 계급이 있고, - 물론 악랄하거나 가혹하게 수감자를 괴롭히지 못하면 다시 쫓겨난다 - 카포가 되진 못했지만 수용소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이성과 인성이 없어진 수감자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수감자의 목숨 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고, 심지어는 친구도 팔아넘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수용소 생활에 대해 저자가 얘기하는 수감자의 심리는 첫 번째는 '충격'이고, 두 번째는 '무감각'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에 여러 가지 심리적인 치료를 요하는 개개인의 상태이다. 특히 세 번째 단계는 사람에 따라서 감정이라든가 생각이라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충격'에 대해서는 자유를 잃어버린 - 특히 육체적인 - 모든 일련의 일들이다. 개인의 소지품을 비롯해서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까지 소멸된다. 정신적인 자유도 육체의 혹독한 시련과 혹사가 누적되면서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소멸한다.
두 번째 단계인 '무감각'은 인간의 마지막 남은 양심도 마비시킨다. 시체를 보는 인간적인 시선은 없다. 그저 나와 관계없는 시체일 뿐, 시체가 남긴 음식이 있으면 가져가고, 자신의 신발보다 좋아 보이면 가져가는 이제는 썩어갈 존재일 뿐이다. 저자도 자신이 먹고 있는 수프에 집중할 뿐, 두 시간 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살아있던 인간은 이미 잊혔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이다.
다른 수감자들과 다르지 않았던 저자를 일깨운 것은 한 수감자가 이야기 한 아내의 존재이다. 그는 아내를 생각해 냈고 마음속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아름다움에 비유했다. 인식의 변환 또는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날 저녁 피곤에 지쳐 막사 바닥에 앉아 수프를 먹으며 그와 동료들은 해가 지는 풍경에서 서쪽에 빛나는 구름을 보았고, 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그렇게 그는 이제 무감각한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 학파'의 이론적인 것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가 수용소에서 느낀 진리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그의 결론이다.
그는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의미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이 무너져 가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의 -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의 수감자들 - 끝은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니체의 말을 들어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로고테라피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린다.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서 저자는 기존의 정신분석과 비교해 볼 때, 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자기 성찰을 덜 요구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치도록 만드는 것이며 이것이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로고테라피는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다. 도덕적 훈계와 거리가 먼 것처럼 논리적 추론과도 거리가 멀다. 비유를 하자면 로고테라피 치료사가 하는 일은 화가보다는 안과 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화가는 자기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안과 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주려고 노력한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두 번째는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서, 세 번째는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의 방식이 바로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세 번째가 시련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 밖에 '초의미', '삶의 일회성', 기법으로서의 '역설의도',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등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정의한 정신의학에 대한 글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