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추락 (Disgrace) - 존쿳시

'추락'. 데이비드는 얼마만큼 자신이 추락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추락한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추락이 아니라, 자신의 실체를 만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욕망을 쫓다 대학사회에서 매장되고, 유일한 혈육인 딸 루시의 농장에서 낯선 흑인들에 의해 강간당하는 딸을 보호하지 못하고 자신조차 화상을 입는 데이비드, 또한 책상에 앉자 무언가를 적어내는 것으로 일상을 안주하던 그가 동물들의 마지막을 청소하는 일을 일상으로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까지, 결코 그가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상일 것이다. 그리고 강간으로해서 흑인의 피를 임신하고도 낙태할 수 없다는 루시를 루시 자체로 받아들이는 거 그것도 그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결국 그것을 그냥 바라보기로 한다. 그것이 추락이라면 추락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끝없이 갈구하는 욕망의 개체가 아니라 주어지는 데로 그냥 놔두는 방식을 익히는 거 그게 추락일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 작품은 그 사회의 인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려울 것이다. 도시와 동떨어진 곳에 자리한 백인 젊은 여자의 농장. 그리고 그녀를 강간하고 부수적으로 물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본토박이 흑인강간범. 그리고 백인 여자 옆에 사는 영악한 본토박이 페트루스. 그리고 그것을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젊은 여인 루시. 그리고 그러한 딸을 바라보는 도심 속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퇴출된 문학교수 데이비드.

나는 그 사회를 모른다. 허나, 그 사회를 모른다는 단서를 두고 바라보더라도 작가가 바라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독자에게 삶에 대한 사람의 내면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생을 인간의 일상을 아주 잘 찝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멋진 사람이다. 나는 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뼈아프게 인정해야만 하는 아버지 데이비드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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