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구조불황과 일본 정치경제시스템의 변화
진창수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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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문 - 일본경제의 불황기가 어느덧 끝이 보인다고 합니다. 1990년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일본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하는 것은 2005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모토로 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이 있어보이는 책이니 꼭 한번씩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장면 1

 1989년에 일본 소니사는 컬럼비아 영화사를, 미츠비시는 록펠러 센터 빌딩을 사들였다. 하버드 대학의 에즈라 보겔 교수의 저서 “Japan as No.1", 이시하라 신타로(현 동경도 지사)와 모리타 아키오(당시 소니 회장)의 공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미일 양국에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소니와 AIWA, Panasonic 카세트는 중고등학생의 영원한 로망이었다. 국산 제품은 무언가 뒤처지고 후줄근한 인상이었고 그걸 쓰려면 약간의 용기(?) 비슷한 것도 필요했다. 삼성과 금성은 일제 하청기업 처지였고, 사람들은 미제 무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거 뜯어보면 “일제” 전자부품이 90% 넘는다며, 팍스 아메리카는 가고 팍스 자포니카의 새시대가 도래할 거라며 모두들 얘기했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장면 2

 2004년에 삼성의 시가총액은 소니를 넘어섰고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은 사상 최초로 외국인 CEO를 영입하면서 경영일선에서 은퇴했다. 일본경제의 최전성기에 거짓말처럼 불황은 시작되었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잃어버린 10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박단소로 상징되는 일본 전자제품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소니와 아이와의 로망은 이미 오래전에 삼성 휴대폰과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일본제품? 글쎄... 디지털 카메라 정도...?


거품호황과 불황의 시작

1985년 당시 일본의 천문학적 무역흑자로 무역마찰이 심화되자 서방선진 5개국 재무장관들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엔화와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골자로 하는 합의(플라자 합의)에 도달했다. 엔화는 달러당 238엔에서 약 1년 반만에 120엔대까지 치솟게 되면서, 이것이 불러올 불황을(엔고불황) 우려한 일본은행은 팽창적인 통화정책, 즉 재할인율 인하와 본원통화 공급 증가로 대응하였다. 이 결과 막대한 신용팽창이 발생, 부동산과 주택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결과 1990년 전국 지가총액은 1985년의 2.3배로 증가하였고, 니케이(NIKKEI) 주가지수는 3만8천엔까지 급등하게 되었다.

 1990년에 들어서 비정상적 거품호황을 우려한 일본은행과 대장성이 은행의 신용공여 축소,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면서 마치 풍선에 바늘을 갖다댄 듯 갑작스러운 경제붕괴가 시작되었다. 거품붕괴는 맨 처음 부동산과 관련된 3업종(부동산투자, 주택, 제2금융권)에서 시작되면서 “토지가격 거품 붕괴→담보가치 하락→부실채권 발생 및 대출축소→제2금융권 붕괴→제1금융권과의 합병→합병은행의 불안 증대”와 같은 수순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면교사 - 정책 대응의 실패

 1992년부터 부실채권을 견디지 못한 금융기관의 도산이 실체화되었다. 1992년 伊予銀行과 東洋信金이, 1994년에는 東京協和信用組合과 安全信用組合이 각각 도산하였다. 1994년의 경우 대장성이 양대 조합의 사업을 모두 양도받는 동경공동은행을 설립하고 이에 출자까지 하는 형태로 사건을 수습했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의 IMF 이후 대응책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1995년부터는 파산규모도 커지기 시작했다. 코스모신용조합은 2,500억엔의 부실채권으로 도산했고, 木津信用組合도 예상액보다 훨씬 큰 불량채권을 안고 쓰러졌다. 예금보험공사는 목진신용조합의 해결에만 1조 3천억엔의 자금지원을 해야만 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훨씬 더 강력한 금융시장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 대장성과 정치인들은 기회를 잘 이용하지 못하였다. 대장성은 부실기관을 가급적이면 제1금융권의 우량은행으로 합병시키는 방안을 선호했고, 정치인들은 아직까지 가시화되지 않은 미래의 금융불안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근시안적으로만 보고 반대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잃어버린 10년”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단지 자신감의 결여가 그러한 ‘신기루’를 조장하고 있다는 허황된 발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1992년부터 나타난 주택금융회사의 해결과정에서도 대장성은 무려 4년을 허비하고 난 뒤에야 공적자금 투입없이 7조 5천억엔의 불량채권을 포기하도록 은행업계를 설득시키는 안을 마련했지만 금융권에서 이러한 해결책을 받아들일 리 없었고 그나마도 정계내부의 공방전과 대장성의 내분으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 국내 일각에서 금융개혁이 급선무라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경기부양이 오면 부실채권은 자연히 해결된다”는 식의 근시안적 논리가 난무하면서 1992년 미야자와 내각 이후 112조 6천억엔에 달하는 재정정책이 집행되었으며, 16조 9천억엔에 달하는 감세정책도 더불어 시행되었다. 이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이 국채로 충당되어 재정구조가 급격히 악화되었음은 물론이다.

 약 6년간의 기간을 허송세월한 후 1997년부터는 금융공황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도래했다. 97년과 98년 2년 동안 58개의 금융기관이 도산하였으며 여기에는 북해도척식은행, 야마이치증권, 일본채권신용은행 등 쟁쟁한 금융기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에 가서야 일련의 금융개혁법안을 마련하고 금융감독청을 발족시킴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이는 시기상 너무나도 늦은 것이었다.

 공황상태에서 금융긴축을 통한 조기부실정리를 선호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처럼 경기불황 타개를 위한 재정정책을 선호한 결과 2001년 현재 국채 및 지방채 잔액은 693조원, GDP의 135%에 달하면서 유수의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등급을 속속 낮추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노령인구 급증으로 인한 사회복지비용 지출은 재정적자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데 15세 미만보다 65세 이상 인구가 많은 현상황에서 2010년 이후 재정이 건전화될 가능성은 낮으며, 그나마도 ‘92년 이후 집행된 수 차례의 이른바 “재정출동”이 모두 실패하였다는 사실은 그 정책효율성조차 낮다는 점을 암시한다.


불안한 미래


 고이즈미 내각은 이러한 재정적자 문제를 중시하여 각종 구조개혁 정책을 내세우면서 2001년 4월 취임하였다. 성청 산하에서 공공사업을 전개하는 86개의 ‘특수법인’ 개혁 및 우정사업 민영화, 6개 부문의 산업경쟁력 강화 및 환경과 IT를 포함하는 4개 신산업 창출 등 혁신적이고 강력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단, 성과가 있는가는 아직 불확실한데, 무엇보다 겨우 3년 남짓한 기간이 문제이고 또 최근의 “보통국가화(군사대국화)” 경향이 이러한 개혁정책을 좌초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마지막 장의 저자인 박영준(국방대학원)은 “일본 경제위기의 전개과정 비교”에서 현 상황의 경우 대부분의 주요인사들이 군국주의 노선은 일본의 국익에 해가 될 것이라는 합의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하면서 1930년대와 같은 군국주의의 발호는 다시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으나,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한일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현시점에서는 다소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대응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산업화 이후 일본은 한국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외환관리법과 재정투융자, 주거래은행(메인뱅크) 등의 정책도구들은 그 개념뿐 아니라 명칭까지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한국은 이러한 일본의 전략을 단순히 따라잡는 것(Catch-Up)만으로도 중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고 일본은 한국으로의 기술 및 설비이전을 통해 분업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호이익을 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는 이러한 발전궤적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 ‘잃어버린 10년’은 결국 일본형 발전모델의 한계를 나타낸 것이고 ‘IMF 공황’역시 한국형 발전모델의 종말을 드러낸 것이다. 다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대선과정에 걸친 민주적 개혁을 완수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경제개혁에도 성공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 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시절의 사죄담화에서도 후퇴하는 퇴행적인 정치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정치퇴행이 경제개혁의 발목을 잡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더 이상 한국의 거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을 따라잡아야 할지도 모를 현 시점에서, 일본경제 발전의 명암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분석해낸 이 책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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