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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지음 / 현대미학사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둘 간의 사랑에 대해서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 도덕적이다 아니다, 동성애다 이성애다 등등의 잣대를 함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단순히 동성애를 옹호한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다. 마누엘 푸익이 ‘성적 해방이 정치적 해방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이 글을 쓴 작가의 말도 옳긴 하지만(아니 작가가 그런 의미로 썼으니 당연히 절대적으로 옳겠지만은) 오히려 이런 면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우리가 인간 사이의 감정교류를 함부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남들을 판단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익숙함을 넘어서 그것이 옳은 것이라 거의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기껏 생각한대봤자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정도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 결국은 따뜻한 몰리나에게 슬슬 동화되어가는 발렌틴의 모습, 그리고 결국 관계를 맺는 모습은 딱딱함을 흡수하는 부드러움, 이성을 넘어서는 감성, 이론을 넘어가는 사랑 - 그리고 결국은 근본적으로는 하나인 인간의 본성, 즉 제 아무리 딱딱한 껍데기를 입은 채 감추고 있어도 사실은 연약하고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약한 동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성의 해방, 정치적인 해방, 복잡한 사회적 문제 등등 다른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라도 - 아니, 사실 그런 것은 잘 모른다. - 작품을 다 읽고 몇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결국은 머리카락을 몇 개씩 뽑아 가면서 고민한 결과로 나온 주제는, 유치하게도, 아니면 너무 당연하게도, ‘사랑’이었다. 뭐가 더 거창하고 멋있는 주제를 뽑아내려고 했지만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또 이 세상에 사랑만큼 거창하고 멋있는 주제가 또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고....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만족스럽기도 하고 여하튼 복잡하다. 도대체 이 느낌은 뭘까?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것처럼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