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참 눈부시다
크리스티안 생제르, 백선희 / 다른세상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그대, 참 눈부시다..

 

생각의 차이를 많이 느낀 책이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 속에서 느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무엇인가가 공감되어졌다. 여성이 쓴 책이라 더 공감이 되었을까? 가르치려고도 지시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많은 메타포를 통해 잔잔함으로 다가와 세포 하나하나에 천천히 스며드는 감동이 있었다. 그러다가는 머리가 쭈삣설만큼의 임팩트한 무엇에 반응하여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참으로 오랫만에 100%의 공감을 느꼈다.

 

첫장에 타이핑체로 쓰여진 단 두마디  "삶은 성스럽다" 에서 크리스티안 생제르의 메세지를 감지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단어는 "나를 사랑하라"라는 단어와 오버랩 되어졌다. 너무 많은 책들이, 시선들이, 행복해져라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말처럼 정말 행복해 보이려는 의무처럼 되어졌을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주문에 세뇌되어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책은 행복해져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행복을 휘발성이라고 정의함으로서 그저 여러가지 예를 들어 자신을 돌아보게 할뿐이었다. 그리고 성스러운 삶을 사는 나를 사랑하도록 하고 있다.

 

금욕주의, 경쟁주의로 물들어가는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우리의 예민한 지적감각을 탐욕스런 문어발과 바꾸고, 우리의 뿌리깊은 본능을 소비벽과 바꾸며, 분화된 우리의 지식을 강력한 슬로건과 맞바꾸고 있다고 표현함에 동의한다. 이런환경에서 어린아이들은 점점 더 볼모가 되어가며 인위적인 삶외의 다른것을 알지 못함에 진짜 경험으로의 접근이 막혀있다고 하여 컴퓨터를 비판하고 있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처럼 위장하고자 가장 값싸고 가장 파렴치하고 가장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 낸 사회를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컴퓨터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고있지 않은가? 더 쉽고 더 신속하고 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시대에서 우린 정말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핸드폰, 컴퓨터가 없이 하루를 살기엔 참으로 불편하고 불만스럽지 않던가. 컴퓨터는 인간과의 대화를 거두고, 눈빛을 거두고, 자연과의 소통을 거두고, 감동과 감성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성성의 문제에 대한 공감을 한다. 여성성, 난 은연중에 여성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살아왔다.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그러했으니 말이다. 작금의 시대에 여성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란 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바뀌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평등이니, 여성상위시대니 하는 외부의 강요된기준, 외모와 사회적, 직업적 이미지에 따라 소비와 유행에, 사회적 강박관념에 순응되어 인공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여성성, 구조와 기능 차원에서 대지를 닮은, 관계를 맺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재능을 갖은, 생명을 창조해내는 재증을 갖은, 그것이 여성이며 여성성이다. 카프카의 연인 밀레나는 수용소에서 자기막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간수 몰래 훔친 3-4분동안 순식간에 공포를 없애고 죽어가는 여성들을 환영받고 사랑받는 소중한 손님으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소개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3-4분에 그들이 느꼈던, 내적 삶을 받아들이고, 존재하는것을 받아들이는 그런 기분을 나 역시 느낄수 있었다고 감히 말한다.

 

교육, e-ducere. 밖으로 인도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빛나는 임무는 우리가 받은 것을 전수하고 우리의 자식을 교육하는 일이다라고 생제르는 말하고 있다. 동물들은 세포와 신경계에 특수한 지식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DNA속에 본능이라고 불리우는 특수한 지식을 갖고 태어나지 않던가? 그러나 인간이 갖는 특수성은 교육이란 단계를 통해서 삶의 메세지를 읽고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교사가 무기력한 청소년들을 데리고 딱 3주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한 학생이 요약한 메세지는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안에 무언가가 있다는걸 결코 알지 못했을거에요, 이제는 느낀것을 실천할 겁니다. 아찔한 확인이다. 인간안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는 그것을 깨우지 않는 이상 시간의 끝까지 잠들어있다는것. 그것을 깨우는것이 교육인것을, 내가, 그리고 전수자가 해야 할일이란 것을 배운다. 그리곤 눈을 감고 나를 돌아본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온 수필의 일부, 너무나 중요한 수필이었다고 해서 외웠던기억이 난다.  생제르는 65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책은 생의 마지막에 썼음을 느낄수 있다. 젊은시절의 영혼은 유행성 류마티스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이데올르기와 현행규범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청춘예찬의 부분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청춘이 주는 가능성은 무한하겠디만 청춘이기에 가혹한 판단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빛을 감추고 있다. 사람이 마음과 사유를 넓혀 영적 자유를 얻는데는 한평생이 필요하다. 한평생이다. 청춘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실수투성이의 청춘일뿐이다. 내 아이를 좀더 이해한다. 내아이가 겪는 시절을 본다.

 

이렇듯 이책은 여러부분에서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수용하고, 자연과 호흡하고, 자발적으로 변화하기를 권한다. 아마 몇일이 지난후 난 또 유혹과 탐닉의 세상에서, 행복을 강요당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내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글귀처럼.. 말이다.

 

 

2011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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