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일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순진무구한 학생상에서 기인한다. 지혜로운 교육학이라면 열등생을 가장 정상적인 학생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선생의 역할을 온전히 정당화해주는 학생 말이다. 배우는 일 자체의 필요성부터 시작해 모든것을 선생에게 배워야 하는 그런 열등생! 하지만 그럴 리 없다.
학교생활이 시작될 때부터 정상으로 여겨지는 학생이란 가르침에 가장 덜 저항하는 학생, 앎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학생, 교사의 능력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 학생, 이미 뭔가를획득한 학생, 즉각적인 이해력을 가진 학생, 학생의 이해력에 접근하는 길을 찾아가는 교사의 노력을 덜어주는 학생, 배움의 필요성에 이미 자연스럽게 젖어 있는 학생, 수업 시간에 얌전히 앉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학생, 포식자들의 밀림에서 살고 싶지않으면 이성을 훈련시켜 식욕과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요람에서부터 설득당한 학생, 대부분의 즐거움은 단조로운 반복이나 육체의 소모로 이어지는 반면 지적인 삶이란 무한히 다양하게 추구할 수 있고 극도로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는 즐거움의 원천임을 확신하는 학생, 요컨대 앎이 단 하나의 해결책이라는걸 이해했을 학생, 즉 앎이란 인간을 무지에 붙박아놓는 노예상태에 대한 해결책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에 대한 유일한 위안임을 깨달은 학생이다. - P333

그들과 자네를 점찍어내는 건 정말이지 학교가 했던 최소한의 일이야. 학교는 그저 자네의 모습 그대로 되어가도록 도와준 거지! 학교가 자네를 망쳐놓을 일이라곤 없었을 테니까. 공화국의 학교가 자네를 꽤 방치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
학교를 넘치게 칭송하면서 자네가 은근슬쩍 자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네이고, 자네는 다소 의식적으로 이상적인 학생임을자처하고 있어.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 습득에서 우리를 그토록불평등하게 만드는 무수한 요인들을 감추는 거지. 상황, 환경,
질병, 기질 등등…… 아, 그 불가해한 기질이라니! - P337

실제로 자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나??
자네는 달콤한 학생이었네..
선생이 되고 나서 그런 훌륭한 학생들, 보기 드문 보석들을 반에서 발견하면 난 그렇게 부르곤 했다네(비밀스럽게). 난 그 달콤한 학생들을 아주 좋아했지! 나의 피로를 풀어줬거든. 자극도 되었고,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 애는 가장 정확하게, 종종 유머까지 섞어가며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했지. 지성의 으뜸가는 은총인 자연스러운 신중함까지 갖추고서 말이야…… - P339

필리프는 그로부터 비유어는 집 안주인의 언어이고 본래어는 한 가정의 어머니의 언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본래어는 선생님들의 언어예요, 선생님들이 학생들하고 하는 말이요!" - P341

모두에게 하나같은 차림새를 갖춰주는 것은 바로그 마케팅 할머니다. 학생들을 전자기기로 무장시키고 롤러스케이트, 자전거, 스쿠터, 오토바이, 킥보드를 태워주는 것도 그녀다. 무료함을 달래주고 정보를 찾아주고 유행에 맞춰주고 영원히주입되는 음악 속에 들어앉히고 사방천지의 소비 세계에 부려놓는 것도 그녀다. 재우는 것도 그녀이고, 깨우는 것도 그녀이며,
교실에 앉아 있을 때 바지 주머니 속에서 부르르 떨며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도 그녀다. 나 여기 있어, 겁내지 마, 여기, 네 핸드폰속에 있어, 너는 학교라는 게토의 인질이 아니야! - P344

요즘 젊은 교사들이 준비하지 못한 ‘그것‘의 한 요소가 바로 고객인 아이들로 이루어진 학급을 대면하는 일이다. 물론 선생자신도 그런 아이였고, 자기 자식들도 그런 아이지만 이 교실 안에서 그는 선생이다. 선생으로서 그는 부모라면 마음이 흔들리는 사랑의 채무를 느끼지 않는다. 학생은 교사단 구성원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감격할 만큼 바라던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학교에 있는 것이지, 집이나 쇼핑몰에 있는 게 아니다. 선물로 피상적인 욕망의 간청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의무들을 통해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우선은 그 아이들을 일깨워야 하므로 배움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렵다. 이러한 욕망과 욕구 사이의 갈등은 교사에게 험난한 임무다! - P354

만일 내가 십오 년 전에 태어난 열등생이었다면, 그리고 그 열등생의 어머니가 아이의 최소한의 욕망도 들어주지 않았다면,
분명 그 아이는 집안의 저금통을 훔쳤을 테지만, 이번에는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최신의 오락기기를 사서, 그 화면에 빨려들어가고, 시공간을 서핑하기 위해. 그 속에녹아들어가, 구속도 한계도 없이, 시간도 지평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또다른 자기 자신과 채팅을 할 것이다. 그 아이는 그 시대를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도 보장해주지 않지만, 현재를 소멸시켜버리는 기계들로 넘쳐나는 그 시대를 말이다. 그 아이는 청소년을 현실에서 이탈시켜 젊은 비만아로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룩한 한 사회의 이상적인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 P356

"그럼 뭐가 문제인데?"
"젊은 선생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공표하는 ‘그것‘의 진정한 본질, 그게 바로 유일한 문제이고, 네가 그것을 질문한거야."
"답은?"
"세상만큼이나 낡은 대답. 선생이란 앎과 무지의 충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그게 다야!"
"그 얘긴 수도 없이 했잖아."
"맞아. 지표 상실, 폭력, 소비에 대한 이야기, 그 모든 장광설이 오늘의 설명이야. 내일은 또 달라질걸. 게다가 너 스스로 그얘길 했어. ‘그것‘의 진정한 성격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구성하는요소들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 P359

선생들 자신은 적어도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으므로 열등생들이 서서히 만들어가는 무지상태를 이해하는 일에서 절대적으로 무능하다. 선생들의 가장 커다란 장애는 자기들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태를상상하지 못하는 그 무능에서 기인할 것이다. 어떤 지식을 알아내는 데 겪었던 어려움이 어떠했든 간에, 그 지식을 얻어낸 순간부터 그들은 지식과 동질체가 되어버리고, 이후로는 그 지식을명백한 사실로 파악하고(아니 이런, 이건 너무 분명하잖아!"),
무지의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지식이 불러일으키는 절대적인 낯섦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 P360

"너희 선생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너희에게 결핍된 건 무지한 상태에 대한 강의야!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온갖 지식의 경연대회를 통과했을 때, 그때 너희가 갖춰야 할 최초의 자질은 너희는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내는 능력이어요 해!" - P362

"감정이입 하지 마! 당신들의 감정이입 따위 관심 없거든! 당신들의 그 감정이입이 우리를 침몰시켜! 누구도 당신들에게 우리 입장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 않거든.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는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것뿐이야, 이해할 수 있겠어? 당신들의모든 지식에다 무지에 대한 직관을 보태달라고, 그리고 열등생을 건져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게 당신들 일이야!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가르쳐주면 공부 못하는 학생도 스스로 헤쳐나갈거라고! 당신들한테 요구하는 건 그게 다야!" - P364

나라면 그게 당신들이 상상하듯 그렇게 커다란 블랙홀은 아니라고 말할 거야. 오히려 정반대지. 단 하나, 즉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려는 욕망, 그것 하나만 빼고 다른 모든 걸 찾아
낼 수 있는 벼룩시장 같은 거라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도 결코무지한 상태로 살아가진 않아. 나는 내가 무지한 게 아니라 그냥한심하다고 생각했거든. 그건 전혀 다른 거야. 열등생은 못난 애로, 비정상으로, 반항아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당신들이 가르쳐주려는 것과는 다른 수많은 것을 아는 아이로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이내 당신들의 앎을 더이상 원하지 않게 되지. 그것의 장례를 치러버리는 거야. 때로는 고통스러운 장례식이긴 하지만, 뭐라겠어? 이 고통을 견디는 게 고통을 치유하고픈 욕망보다 더 매혹적인데. 이해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그래!
열등생은 자신의 무지를 심오한 자기 본성으로 착각하는 거야. - P365

교육에 있어서의 사랑은 우리 학생들이 미친 새처럼 날아갈 때와 비슷하다. G 선생님과 니콜 H. 선생님이 몰두했던 일도 바로 그것이었다. 날개가 부러진 제비떼를 학교생활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 그때마다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따라가는 데 실패하고, 몇몇은 다시 깨어나지 못해 카펫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다음번 유리창에 목이 부러지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제비들을 묻어준 정원의 깊숙한 구덩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 회한의 구멍을 남긴다. 하지만 매번 노력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학생이니까. 이 아이 혹은 저 아이에 대한 호감이나 반감(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지만!)의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 대한 우리 감정의 정도를 말한다는 건 너무 쉽다. 지금 문제가 되는 사랑은 그런 게아니다. 기절한 제비는 되살려야 하는 제비일 뿐이다. 그뿐이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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