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 자신이 경험한 저학년 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아이들이 몹시 좋아하는 마을 놀이를 했다.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개개인의 특성, 적성, 소망, 독특한 습관을 발견한 뒤 반 전체를 하나의 마을로 바꾸는 단순한 놀이였다. 그 마을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친구들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단해준 자기 역할을 찾는다. 빵집 주인, 우체부, 교사, 자동차 정비사, 식료품 가게 주인, 의사, 약사, 농부, 철물공, 음악가거기다 민이 상상해낸 직업, 예컨대 꿈의 수집가나 구름의 화가처럼 꼭 필요한 직업도 포함시켰다.
"불량배는 어떻게 했어? 0.4퍼센트에 해당하는 꼬마 불량배한테는 뭘 시켰지?"
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경찰이지." - P294

살인의 경우, 무장 공격, 공공 대로에서의 난투, 치정살인, 경쟁 조직 간의 원한 청산 등을 제외한 약 80퍼센트의 유혈 범죄가 가정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환기하는 것은 무익하지 않다. 인간이 서로 죽이는 일은 무엇보다 자기 집에서, 한 지붕 아래서, 가정의 은밀한 동요 속에서, 가족의 불행 한복판에서 벌어진다.
학교를 범죄 유발의 장소로 치부하는 일 자체가 학교에 대한 몰상식한 범죄다. - P297

 오늘날 도시 폭력의형태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두렵다. 나는 도시 폭도들의 비열한 짓거리에 두려움을 느끼며, 도시 외곽에서 살아가는 두려움 또한 알고 있다. 나는 집단주의의 위험을 느끼며 무엇보다 그런 곳에서 여자로 태어나는 어려움과 그곳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세대를 거치며 이어진 실업자 집안의 아이들에게 노출된 극단적인 위험도 가늠할 수 있다. 온갖 종류의 밀매에 동원될 그 먹잇감들! 이 모든 것을 알고있으며, 이렇게 무서운 사회의 진창에서 가장 많이 무너진 아이들을 마주한 교사들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위험에 처한 지역의 모든 청소년을 이런 극단적인 폭력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일을 거부하며,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선전이 새로운 선거철마다 쑤셔대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증오한다. 버려질 대로 버려진 청소년을 국민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환상의 대상으로 만드는 인간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부성의 감정까지 잃어버린, 명예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회의 찌꺼기다.
- P309

사랑한다는 말이 뜻하는 것

이 세상에서는 총분히 착하려면좀 넘치게 착해야 한다."
- 마리 보, 「사랑과 우연의 유회」 - P313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잊게 하는 데는 한 분 단 한 분! - 의 선생님이면 충분하다.
- P318

정말로 그분은 다시는 바칼로레아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한 해동안 우리를 무지의 심연에서 조금씩 끌어올리는 일에 주력했고, 그런 우리를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즐거워했다. 우리 자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그분은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사실에 늘 경이로워했다.
- P320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거든! 봐라, 페나키오니,
너는 네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니?"
물론 이러한 산파술만으로 우리 모두가 수학의 귀재가 되지는못했지만, 발 선생님은 우리를 너무도 깊던 우물에서 그 우물의가장자리까지, 즉 바칼로레아의 평균 점수까지 끌어올려주었다.
다른 많은 선생님들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있다는 우리의 그 비참한 앞날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암시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 P321

그분은 위대한 수학자였을까? 그리고 이듬해에 만난 지 선생님은 대단한 역사가였을까? 재수 때 나를 가르친 S선생님은 유례없는 철학자였나? 그러리라 추측하지만 솔직히 나는 모른다. 단지 이 세 선생님이 자기 과목을 전해주려는 열정에 빠져있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선생님들은 그런 열정으로 무장하고서 낙담의 구렁텅이에 있는 나를 찾아왔고, 일단 내 두 발을 자신들의 수업에 굳건히 딛게 하고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그들의수업은 내 인생의 전前 단계가 되었다. 그분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나에게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분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못하는 아이들이나 공평하게 대했고, 단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해하려는 욕망을 되살려줄줄 알았던 것 뿐이다. - P322

 그분들은 내 노력을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해주었고, 우리의 진전을 기뻐했으며, 우리의 느림에 조바심내지 않았고, 우리의 실패를 결코 개인적인 모욕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며, 가르치는 일의 특성과 일관성과 관대함에 근거한 더없이 엄격한 까다로움을 우리와 함께하는 가운데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하면 달라도 너무 다른 선생님들이었다.  - P323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했던가?  - P323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수학을 해보면 어떨까, 페나키오니? 자,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치워버렸다.
또하나, 그분들에게는 하나의 스타일이 있었던 듯하다. 자신의 과목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예술가였다. 수업은 물론소통 행위였지만, 그것은 거의 자발적인 창조로 통할 만큼 숙달된 지식의 소통이었다. 어찌나 편안하게 수업을 했던지 우리는매시간의 수업 자체를 하나의 사건처럼 기억할 수 있었다. 지 선생님은 역사를 부활시켰고, 발 선생님은 수학을 재발견했으며,
소크라테스는 S 선생님의 입을 통해 표현되었다! 수학공식, 평화조약, 철학개념 같은 것들이 마치 바로 그날 만들어진 것처럼 기념비적인 수업을 해주었다. 그분들은 가르치면서 사선을 창조했건 것이다. - P324

이 선생님들이 우리와 공유했던 것은 단지 앎만이 아니라, 앎에 대한 욕망 자체였다! 그리고 나에게 나누어준 것은 그 앎을 전달하고픈 의욕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뱃속의 허기를 느끼며 그들의 수업에 들어가곤 했다. 우리가 그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 관심(요즘 젊은이들 말로 하자면 존중)을 받았고, 그관심은 우리의 숙제에 써놓은 교정 문구들, 우리들 각자에게 일일이 건네주었던 그 코멘트에도 나타나 있었다. 
학창 시절 막바지에 만났던 이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일관성 없는 공공의 군집으로 축소시키고 그런 학급을 극히 열등하다고 말하던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내 생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대부분의 선생님들 눈에 우리는 언제나 그들이 만났던 가장 공부못하는 중3, 중4, 고1, 고2, 고3이었고, 이보다 최악의 반은 없었다.…… 그렇다…… 해가 갈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받을 자격이 점점 더 떨어지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그에 대해 지도부와 학급운영회와 학부모회에게 불평했다.
그들의 푸념은 우리 안의 특별한 잔인성을 일깨웠다.  - P3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