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첫 수업부터 학생들과 나는 ‘거기‘ ‘그것‘ ‘모든 것‘ 이것을 공략했다. 이것들을 통해 문법 보루에 습격을 개시했던 것이다. 우리가 수업이라는 현재시제에 견고히 자리잡고자 한다면, 현실을 벗어나버리는 이 불가사의한 대리자들을 해결해야만했다. 절대적으로 먼저 해치워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불분명한 대명사들을 사냥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은 마치 짜내버려야 할 고름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 P140

부사적 대명사라는, 처음 들으면 뭔 소린지 모를 딴 나라 말 같은 그 호칭은 건너뛰고, 그것의 배를 갈라 가능한 의미를 죄다 끌어내고, 정식으로 목록에 작성된 내장들을 제자리에 다시 들여놓은 다음 다시 꿰매어 그 문법적인 명칭을 붙여줄 것이다. 문법학자들은 이 단어에 불분명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자세하고 분명하게 설명해보자!
그해, 어깨를 으쓱하며 욕설을 퍼붓듯 그 말을 내뱉던 아이의 경우, ‘거기‘라는 말이 좀 전에 아이가 이를 갈며 풀었던 수학 문제에 대한 쓰디쓴 기억을 되살려놓았다. 수학 문제가 아이를 뒤집어지게 한 것이다. 연필을 집어던지고 공책을 탁 덮어버리고(아무튼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무시해버릴래요, 지긋지긋해요등등) 문밖으로 내쫓긴 그 학생은 다음 수업인 내 국어 시간에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고 또 다른 난관인 문법적 어려움에 부딪혔고, 그리하여 전 시간의 괴로운 기억이 급작스레 되살아났다. - P141

그리하여 그해 우리는 ‘거기‘ ‘그것‘ ‘모든 것‘ ‘이것‘ ‘아무것’의 배를 갈랐다. 수업 시간에 튀어나올 때마다 그토록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이 말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섰다. 우리는 조난당한 아이들의 작은 배를 무겁게 만드는 무한히 늘어나는 그 가죽부대들을 비워내고, 침몰하려는 배에서 물을 퍼내듯 그것들을 덜어내어, 우리가 뱃전 너머로 던져버린 그것들의 내용물을 가까이서 조사해보았다.
‘거기‘ : 우선은 수학 연습문제, 이것이 재앙의 불씨였다.
‘거기‘ : 다음으로는 문법 연습문제, 이것은 꺼져가는 불씨를되살렸다. (선생님, 문법은 수학보다 더 지겨워요!) - P143

그로부터 교사인 나의 단호한 결심이 비롯되었다. 문법적인 분석을 이용해 아이들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부사적 대명사, 즉 하루에도 수천 번씩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그 중요한 말이 무엇에쓰이는지를 이해하는 아주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자는 것이다. 이 성난 아이 앞에서 도덕적이고 심리학적인 궤변을 늘어놓아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완벽하게 쓸모없다. 지금은 토론할 때가 아니라, 아주 시급한 일을 해결해야 할 때다.
일단 ‘거기‘와 ‘그것‘이 비워지고 깨끗이 청소되면, 그것들에 합당하게 꼬리표를 붙였다. 까다로운 대화에서 상대를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데 아주 실용적인 두 개의 부사적 대명사. 우리는 그 대명사들을 언어의 지하 창고, 범접할 수 없는 헛간, 절대 열어보지 않는 가방, 열쇠를 잃어버린 물품 보관함 속 잠꾸러기에 비유했다. - P145

문법으로 생긴 병은 문법으로 치유하고, 철자법의 오류는 철자법 연습으로, 책 읽기의 두려움은 책 읽기로, 모자란 이해 능력에 대한 두려움은 텍스트의 몰입을 통해 치유하고,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습관은 몰두하는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성의 차분한 강화를 통해 치유한다. 우리가 여기 있는 한, 지금 그리고 여기서, 수업 시간 동안, 이 반에서 해야 한다. - P147

수없이 거듭된 이러한 실패로부터 학생들에게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의 언어로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문법이 두렵다고? 그럼 같이 문법을 공부해보자! 문학에 관심이 없다고? 같이 읽어보자고! 왜냐하면 학생 여러분에게는 꽤나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여러분은 우리가 가르치는 과목들로 빚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러분은 우리의 모든 과목의 재료이다. - P149

애송이 심리학자를 믿었다간 언제나 일이 더 복잡해진다. - P152

하지만 아니다. 학생에게 선생 입장이 되어보라고 절대 요구하지 말 것. 그건 냉소의 유혹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학생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재보라고 절대 제안하지도 말 것. 우리의 시간은 정말이지 학생의 시간과 다르다. 우리는 같은 시간의 흐름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우리나 학생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일로 말하자면, 그건 말도 안 된다. 피해야 할 주제다. 우리가 결정한 것으로 만족할 것. 이 문법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균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하니까. 결국 나의 일이란 내 학생들이 그 오십오 분 동안 문법적으로 존재한다고 느끼게 하는 데있다. - P155

모범생과 문제아를 구별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구현 속도다. 문제아는 선생들이 흔히 꾸짖듯 생각이 딴 데 가 있기 일쑤다. 그들은 앞 시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추억 속에서 질척거리거나 또다른 어떤 욕구에 몸을 던진다. 그들의 의자는 그들을 고1 교실 밖으로 튀어나가게 하는 도약대 같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졸고 있든지. 그들의 정신이 온전히 여기 있게 하려면 내 수업에 안착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안착시키는 방법? 그것은 결국 절대적으로 현장에서 습득된다. 내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건, 내 학생들의 현존이나의 현존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급 전체와 무엇보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나의 현존에, 또한 내 과목에 대한나의 현존에, 그리고 내 수업이 진행되는 오십오 분 동안 육체적이고 지적이고 정신적인 나의 현존에 의존하고 있다. - P156

나는 선생이 아니라 박물관 안내원이었고, 기계적으로 의무적인 관람을 안내하고 있었다.
망쳐버린 시간이 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는 지치고 화가난 채로 교실에서 나왔다. 그 화는 하루종일 학생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위험이 있다.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치기 때문이다. 얘들아, 조심해라, 바짝 기어라, 선생이 자기비하에 빠져버렸으니 맨 처음 걸려든 사람한테 불똥이 튈 거다! 그날 저녁은 집에 가서 숙제 검사 같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피로와 불쾌한 의식은 좋은 충고자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날 저녁은 숙제 검사도, 텔레비전도, 외출도 그만두고 잠자리로 직행! 선생의 첫째 자질은 수면이다. 일찍 자야 착한 선생이 된다. - P158

수업에 완전하게 몰두하는 선생님의 현존은 단번에 감지된다.
아이들은 학기 첫 순간부터 그것을 느끼며, 우리 모두가 그것을경험했다. 선생님이 막 들어선다. 그는 절대적으로 여기 있다.
그것은 그가 바라보는 방식,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방식, 자리에앉아 자기 책상을 차지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그는 아이들의반응을 걱정하며 두리번거리지 않으며,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바로 자기 일에 빨려들어가 그 자리에 현존하고, 아이들 각자의 얼굴을 구별해내며, 학급은 즉시 그의 눈앞에 존재하게 된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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