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금 지치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
안대근 지음 / 달 / 2019년 11월

이전에 읽었던 안대근 작가님의 글은 마음 속의 생각을 조용조용 나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에세이는 열정적인 느낌보다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책을 읽는 시간이 지하철이나 침대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걸까. 이번에 읽은 에세이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외의 이야기도 있지만 사랑과 보고 싶은 마음에 대한, 그런 종류의 마음에 대한 글들이 더 와닿았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메트로눔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메트로눔이 맞는 사람끼리는 조금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을 만나지만 그래도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어느날 남들과 다른 박자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돌아본다. 꼭 같은 박자를 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다른 박자를 가지고 있으면 쉽게 어우러질 수 없으니까. 그런 불안감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내가 가진 행복 중 하나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내 메트로눔의 박자를 다시 한 번 조정한다. 에세이를 읽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재를 가지고 깊이 있게 생각을 풀어낸 글이 그렇다. 작가님을 인간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일상이나 삶의 작은 부분을 살펴볼 수 있고 감정의 한 조각을 볼 수 있으면 더더욱 좋다. 사랑에 대한 글을 보면 상대방을 아껴주고 싶고 마음을 쏟고 싶어하는 부분들이 느껴진다. 사랑받아 마땅한 부분을 찾아내는 그 시각이 다정했다. 상대방은 연인일 때도 있고, 친구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온도는 내내 따뜻해서 읽는 동안 나 역시 내가 아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여전히 조용하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의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 나도 이런 생각할 때가 있는데.’ 라거나 ‘이런 표현과 생각은 나도 잘 기억해두어야지.’ 하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가방을 늘 무겁게 메고 다니는 모습이 욕심이 많다는 것, 해내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는 뜻이라는 생각을 만나서 반가웠고, 어떤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며 그 선택에 떳떳하다면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도 많이 공감했다. 작가님과 소중한 사람이 갔던 한강에 대한 글을 보며, 나 역시 몇 년 전에 그 당시 소중한 사람과 한강에 가서 돗자리를 펴고 보던 노을과 무지개분수가 기억이 났다. 공감할 수 있는 생각을 만나는 것은 반갑고 행복하다. 오늘 조금 지치더라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고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답은 뻔하다. 사랑을 증명하는 일은 상대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게 된다. 내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증명해서 그 마음에 들고 싶었던 거니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해 보이는 그 어떤 일들도 나에겐 가능의 영역으로 보였다. 그게 어떤 일이든 고작 이 정도로 내 애정의 크기를 증명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 P15

행복하고 싶어질 때마다 그애의 이야기를 적었다. 이 이야기 안에서 아무도 행복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세상을 견디는 힘이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추억은, 어떤 기록은 견디는 힘이 된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그애에게 준다. 나에게만 소중할지도 모르는 것, 그 행복의 전부를 상대의 양손에 쥐여주는 일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더이상 나도 꺼내볼 수 없고, 상대도 꺼내보지 않는 것들을 또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 P21

눈에 보이는 반짝반짝한 하루들이 늘 부럽고, 그렇지 못한 하루들도 성실하게 살아내야만 할 때 뿌듯하면서도 속상한 기분이 든다. 그런 내 곁에 있는 사람. 내 삶에 여유가 되어주는 사람. 평범한 날들을 성실하게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사람. 날씨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져도 괜찮다. 너와 내가 같이 나이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걱정을 미루고 행복해진다. 어제의 나는 그런 사람과의 한강. - P24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지음 / 달 / 2020년 6월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짝사랑을 해본 적 있지만 나의 짝사랑은 이 책과 같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했다. 작가님의 짝사랑은 들이치고 멀어지기도 하는 파도같다. 자신에게도 부드럽게 들어와 그 사람한테 상처받아 약해진 마음을 한없이 어루만질 때가 있다면, 그 마음이 상대방에 차가운 태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새살이 돋아 깎아지고도 티가 나지 않아 밝게 빛날 정도로 세게 몰아칠 때도 있다. 상대방은 모른다, 내 마음에 상처가 나고 새살이 돋아 그 부분이 다시 빛나고 있음을.

그사람에 한해서 약해졌다가, 또 포기하지 않고 한없이 강해지는 마음이 고스란히 적혀있어서 지금 애인이 없는 나도 사랑할 때의 그 기분을 느꼈다. 다음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래서 내 마음을 전하고 둘이 관계를 잘 쌓아갈 수 있다면, 작가님처럼 온 마음을 들여 사랑하고 싶다. 작가님이 그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서, 정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여 최선을 다해 사랑하여서 그 마음을 엿본 나는 행복했다. 

짝사랑으로 온 마음을 다 던질 자신은 아직 없다. 아프고 외로운 그 과정을 혼자서 하는 일은 엄청나게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이 산문집을 써내려간 작가님은 굉장히 용기있고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소중히 키워낼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 글을 읽어가면서 그 용기에 감탄하고 그 사람이 가진 감정에 감동을 받는다.

산문과 시집을 쓰게 만들어 준 사람이라니, 그 감정을 제공해준 사람이라니,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로맨틱하다. 동시에 산문집의 한 구절에서 나왔듯 '슬픔'이 글을 쓰게 했기에 슬프고 아련한 느낌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짝사랑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지만 멈출 수 없는 감정이다. 결국 그 사실을혼자 깨닫고 혼자 남은 마음을 잘 갈무리하는 과정이었다.'혼자' 해낸 과정이었기에 더 가치있고 나에게 있어 의미가 있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님의 짝사랑은 자신의 시간 한 조각을 찬란히 빛나게 해주는 그 사람 자체였던 것 같다. 나보다 더 아름다워서, 내가 가치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여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고 찬란한, 그런 사람.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것저것 따지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가 너무 커서 어쩔 줄 모르겠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 마저도 아깝지 않고 가치가 있을 테니까.

짝사랑을 하던 마음이 고백을 결심할 때 그 많은 시간과 고민을 담은 매개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사람은 과연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는가.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노력을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작가님이 그 사람을 사랑했던 공간인 제주에서 멀어져 머무른 부다페스트는 어떤 곳이었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나 대비해둔 거 없어요. 나 대신 대비해줄 사람도 없어요.

말해서 꿈처럼 된다면야, 나 당장이라도 고백하죠.
- P21

당신이 꽃으로 글을 쓸 때 나는 당신으로 시를 쓰지요.

그를 만나도 나는 마냥 행복할 수도 없어요. 만나러 가는 길에 잠깐 행복감이 느껴질 뿐이지 만난다고 얻어지지 않는 게 행복이라면, 행복이에요.
- P32

그의 날숨에 나는 얼른 들숨을 쉬었는데 따뜻한 봄냄새가 났어요. 상대방의 체취가 좋게 느껴진다면 그들은 천생연분이라는 연구 결과도 본 적이 있어요.

당신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요. 잘 살던 내가 당신을 만난 것처럼 당신도 잘 살다가 나를 만났을 거예요. 잘만 살던 내가 이제는 잘 버티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당신 또한 어떤 식으로든 한없이 무료한 시간을 나무가 바람 버티듯 나를 버티고 있을 거예요.

당신에게 놀아나는 내 인생이 나는 좋아요. 당신으로 탕진하는 내 삶이 좋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포기하면 좋겠어요. 나만 당신을 잡게요.
- P42

시는 늘 내게 아픔을 요구합니다. 살짝 젖은 채로 살아가게 합니다. 슬픔을 주면 슬픔을 더 달라고 합니다. 나의 시는 아픔에서 오고, 결핍에서 오고, 슬픔에서 옵니다. 이 세가지 감정은 전부 그에게서 받습니다. - P77

영화 주인공의 대사보다 더 로맨틱한 대사를 내게 읊어주고 사랑의 세포가 풍부해질 만한 손짓으로 배경음악을 연주해줘요. 아름다운 그의 곁에서 나 또한 아름다워지는 기분을 매번 느껴요.

아름다움은 옮는 병이에요.
- P147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을 주체못하고 펄럭이는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기로 해요. 달은 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해도 마찬가지로 아침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아침마다 뜨는 건 아닐테니까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뒤늦게 뜨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늦어도 좋으니 일단 뜨기만 하면 세상은 밝아지는 일이니까요.
- P201

천천히 읽어야 좋은 책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5월은 정신없이 바빴는데 그래도 꼭 일주일에 1-2번 30분씩은 집이든 작업실이든 근처를 산책하려고 노력했다. 올초부터 이어지고 있으나 쉬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작업실과 생활을 유지하려면 쉬지 않고 이것저것 일을 끌어와 해야해서 정신차려보면 하루가 끝나있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 기분이 많이 처지고 우울했는데 SNS에 들어가보니 아는 언니가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라며 올려놓은 사진에 마음이 덜컹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날이 너무 좋아서 그랬고, 출퇴근길이나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충분히 한숨 돌릴 수 있는 예쁜 길이 있다는 걸 전혀 생각도 못했던 날 깨달아서. 결국 한 달을 어떻게든 버텨내느라 제대로 산책을 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 책을 읽을 때는 온갖 걱정과 생각들을 미뤄두고 책의 내용만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이 조급할 때 읽어서 그런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빨리 읽었다. 다 읽고보니 더 천천히 산책하듯이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글 한 꼭지 읽고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는데’ 이렇게 한참 생각하고 또 다음 글을 읽고..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다. 바쁘게 지내다가도 박연준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작가님이 담은 생각과 그 표현에 집중하게 된다.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담긴 생각은 구체적이고 깊어서 금방 읽히는 게 아쉬웠다. 마음이 조금만 더 여유로워진다면 다시 꺼내 읽을 게 분명하다. 

내가 느끼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을 대신 말해주는 글이 꽤 있었다. 대학생 때 만났지만 서로 연애나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 가족 이야기 등등 생각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또 의지가 많이 되었던 친구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아직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느라 애를 쓰고 있는데, 친구의 생활은 조금 다른 형태로 잘 단단해진 것처럼 보인다. 작가님과 윤 사이에 생겼던 ‘웅덩이’가 나에게도 느껴졌었다. 여러가지 핑계로 연락을 안한지 꽤 되었지만 그래도 난 그 친구가 소중하고 애틋하며, 우리가 언젠가 다시 연이 닿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한없이 기쁠 것 같다. 

작가님이 프라하에서 장이 선 아침에 꽃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가장 좋은 아침’을 발견한 것을 보고 나도 작년 가을에 갔던 속초 여행을 생각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하다가도 여행만 가면 아침에 눈을 뜨는 나는 처음으로 혼자 간 여행에서도 아침에 눈을 떴다.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서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들었던 파도소리나 혼자 여행에 와있음을 실감했던 그 시간이 다시금 떠올랐다. 

누군가의 글을 보고 내 경험을 떠올린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평소에 잊고 지내던 기억을 끌어올려 한숨 돌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이든, 슬픔이든.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도 소중하다. 어떨 때는 투덜대는 목소리로, 어떨 때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좋은 어른과 산책을 다녀온 것 같은 책이었다. 

가장 좋은 아침은 내가 발견하기 전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 P99

나와 윤 사이에 조그만 웅덩이가 생긴 것 같았다. 웅덩이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둘 사이에 서로 모르는 고단한 일들이 생겨, 웅덩이로 빠져버리는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 P59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내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 P82

절제하다 사라져버린 능력.
하지 않으면 지워지는 언어.
아끼면 사랑은 불능이 된다. - P164

그늘에서 번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그랬을지도 모르지. - P216

내가 스치듯 했던 고민을 깊게 한 사람들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임재훈.전진우 지음 / 달 / 2015년 3월

지금 20대와 30대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조금 넓게 본다면 10대까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을 스치듯이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정말 순간적인 생각이었을지라도, 한 번쯤은 누구나 생각해봤음직한 것들. 하지만 그 작은 생각들을 붙잡고 깊게 고민하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정리해나갔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부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를 말로, 혹은 글로 정리하여 명확하게 표현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떠한 형태든 제3자에게 공유할 수 있게 만든다는 건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고 나만의 해석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책에서 내가 했었던 고민과 생각들에 대한 저자들의 해석을 들을 수 있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값지게 느껴졌다.

‘왜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휴학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앞두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중 하나였다. 두어번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고 친구들과 나의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취업 말고도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그게 정말 나한테 맞는 걸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거 먼저 해보고 취업도 생각해보면 안될까’ 와 같이 취업 자체를 내 선택지에 두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게 나한테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이 이유가 제일 컸다. 입시미술을 배운 적도 없고 포토샵의 ㅍ도 모르면서 시각디자인 복수전공을 하겠다고 달려들 때도 비슷했다. 비실기 전형이 있기에 복수전공을 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성적을 잘 못 받는다던가 졸업전시를 해야한다던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었고, 일단 내가 하고 싶으니까.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먼저 였다. 저자들도 비슷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갖게 되었다. 어딘가에 속한 안정감이 좋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나’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다만 내가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생각은 했으나 명료하게 정리해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해냈다는 점에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게 되었다. 말이 오고가는 실제 대화 형식이나 한 가지 주제로 각자의 생각을 적어 나눈 메일의 형태라 생각의 흐름을 더 쉽게 따라갈 수 있었던 것도 있다. 

나는 나의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상대방의 철학에 대해 질문할 수 있을까.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해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철학은 있는 것 같으나 단단하게 구체화시키지 못한 것 같고, 생각을 물어보고 나누는 대화를 어려서는 잘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요새는 소비적인 대화만 나눴던 것 같다. 자신만의 구체화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눈빛이 좋고 표정이 단단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님들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만약 대화를 나눠본다면 그들이 가졌던 고민과 생각의 깊이가 고스란히 느껴질 거라고 확신했다. 한 번 읽으며 그들만의 철학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니 두번째 읽으면서는 나의 ‘철학’을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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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철학이 별다른 게 아닌 거죠. 대단한 발견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사상적 토대, 기본 밑바탕을 알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 P14

문제에 조금 더 본질적으로 다가가다보면 포기할 것과 포기 못할 것들이 가려질 거야. 그렇게 자신만의 시계를 찾고, 자신만의 사이클을 찾아서 나름의 행복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 P29

결국 외롭지 않으려면 같은 색깔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색깔을 인정해야 할 거야. 애초에 색깔이 달랐음을, 같은 색깔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돼. - P141

각각의 개인에게 ‘나다움‘이 필요하다면, 연인에게는 ‘우리다움‘이 필요하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일반적인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거나 비교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두 사람밖에 모르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 P205

그 열정과 자부심이 담긴 커피를 마시러 가야겠다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 가고 싶은 카페에는 좋은 커피가 있다
구대회 지음 / 달 / 2016년 4월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_ 구대회 

작업실을 마련하기 전까지 주로 일하던 곳은 카페였다. 학교도, 잠깐 다녔던 토익학원이나 복수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들었던 컴퓨터학원 수업도, 후에 수업을 하러 노트북을 등에 지고 다녔던 곳들이 모두 집과는 멀었던 까닭이다.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진하고 고소한 향이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넛츠류의 향이 나는 것도 좋고 산미가 있는 것도 좋지만 강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에 대한 취향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잔을 마셨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더니 원두를 선택해야 하면 산미가 적은 것을 달라고 하거나, 메뉴에 있는 원두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며 식사를 주문하듯 커피를 고르게 되었다. 

커피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게 너무 당연해서 카페 역시도 내가 머물기 편하고 쉽게 녹아들 수 있는 곳을 자주 가게 된다. 

책을 읽으면 ‘나는 커피가 좋아서 그 카페를 자주 갔던가? 아니면 그 공간이 좋아서 그 집 커피가 좋아진건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카페의 본질은 커피’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책을 읽던 나에게는 생각의 여지를 주었다면, 

나는 커피의 맛도 중요하지만 공간 역시 적지 않게 보고 카페를 선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넘쳐나는 글이었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지내고 있고 

이 분야가 끊임없이 공부해야하며 내가 가진 애정이 식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님이 가진 것에 비하면 아직 멀었구나 싶다. 커피 산지를 직접 여행하며 커피 농장과 그 나라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맛보고, 

일본에 핸드드립 도구와 직접 블렌딩한 원두를 가지고 가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그 발상과 실천력이 놀라웠다. 

나로서는 잉크와 종이를 살피러 유럽, 일본으로 향하고, 펜샵에 방문하거나 작업을 활발히 하는 그 나라의 작가와 컨택하여 

만년필 필사, 혹은 내 캘리그라피를 선물하고 직접 눈 앞에서 글씨를 쓰는 경험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흥미진진하고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확고한 믿음과 실천력이 필요하지 싶다. 물론 실행한다면 내게 있어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커피의 맛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그 자부심이 고객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혼자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집중해서 읽게 된다. 나의 일에 있어 아직 초보자에 불과한 나라서 다른 분야라 할지라도,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이번 책 역시 많이 배웠다. 내 분야와 작가님의 분야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생각해보게 되고, 

내가 했던 고민과 유사한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는 과정을 보며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커피와 카페에도 유행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지금도 작가님이 책에서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으신지 궁금하다. 

1000원이지만 원두에 있어서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은 커피, 그 자부심과 열정을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에 

작가님의 카페가 굳건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 커피가 궁금해졌다. 

위치를 검색해봤더니 나의 작업실과도 그다지 멀지 않다. 날이 따뜻해진만큼 글씨를 쓰다가 고민이 생기는 날이면 작가님의 1000원 커피를 맛보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