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중했던 것들 (볕뉘 에디션)
이기주 지음 / 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쉽게 읽히는 책을 좋아한다. 쉽게 읽히지만 마음이 가고 눈길이 오래 머무는 문장을 사랑한다. 이기주 작가님의 산문집에는 그런 문장이 많다. 작은 책 안에 작가님이 고심했어 썼을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님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고 책은 나중에 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읽었던 짧은 글에도 몇 번이나 감탄하고 공감했다. 어떤 글은 저장해두고 여러 날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 짧은 문장 하나가 자꾸 맴돌아서 손글씨로 남겨보기도 했다. 


작가님의 글에서는 일상을 보내며 놓치기 쉽고, 지나치고 깨닫지 못하는 감정에 머물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잘 다듬고 다듬어 내보내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놓친 감정이나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순간을 작가님은 깊게 잡아두고 있어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글을 읽고 좋아하는 게 아닐까?


책을 읽을 때는 호흡이란 게 있어서 그 호흡에 따라 어디서 읽을지 정하는 편인데, 짧은 글이 모여있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짬이 날 때마다 읽을 때도 좋았다. 물론,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중해서 책상에 앉아 읽을 때도 확실하게 하루가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나는 몇년 전만 해도 산문집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을 읽게 되면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아 꺼려졌다. 이제는 좋아하지만. 이기주 작가님의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은 가까이 다가가도 카페 테이블 하나 정도의 거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한때 소중하게 대했지만 지금은 없거나 의미가 달라졌거나, 상태가 현재도 바뀌고 있는 중이라서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제목을 보고 ‘첫사랑’이나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끝까지 썼던 다이어리’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그리움이나 인간관계, 고통, 슬픔 등 여러가지 감정이 이야기된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대인관계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특별했던 순간과 나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읽고 나서 ‘나’의 감정과 기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시간을 선물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아픔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꽤 짙고 어두운 슬픔을 견딜 수 있다. - P30

그리움은 무엇인가?
그리움은 손이 닿지 않는 것이 보고 싶어
한없이 애타는 마음이다 - P127

어느 한철 소중했던 대상을 시간이라는 강물에 띄워 다른 곳으로 놓아주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슬픔과 허전함의 농도를 조금 묽게 만드는 것 뿐이다. - P236

누군가는 그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맸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그 곳에서 겨울을 견뎠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후드득 지는 동백꽃 앞에서 시린 기억을 불러내 울음을 토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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