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용PD > 솔직하게 말해다오, 미술이 이상하다고...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
박파랑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동화 얘기로 시작해보자. 벌거벗은 임금님 얘기가 있다. 모두들 벌거벗은 임금님이 입은 것으로 짐작하는 화려한 의상을 칭찬하고 있을 때 한 당돌한 아이가 외쳤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데요!'

이 책의 저자 박파랑은 바로 이 동화에 나오는 당돌한 아이이다. '솔직함', '발랄함', '신랄함'으로 무장한 이 책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에서 박파랑은 당돌하게 큐레이터의 일상을 까발리고, 한국 미술계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미술대학을 나오고 미술계에서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그림을 감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은 '솔직하다'. 이 솔직함은 이 책의 대중성으로 연결되어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들도 편하게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다. 철학과 미학의 난해한 용어를 남발하는 현학적인 인사들에 대해 '지적 사기'라고 공격한 뉴욕대의 앨런 소칼의 편에 선 작가는, 정반대로 한없이 쉽고 편안하게 큐레이터의 직업세계와 미술계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저자의 문화와 미술계에 대한 실례들은 '발랄하다'. 흥미를 돋우는 재미있는 인물과 사건들이 한달음에 책을 읽게 해주고 있다. '지적 사기'를 이용해 뉴욕 지성계를 발칵 뒤집은 장난스런 사건에서, 빌바오란 쓰러져 가는 도시가 구겐하임 박물관을 유치해 부흥한 일화, 큰손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유명 컬렉터에서 우리나라의 이름 없는 큰 손 컬렉터까지, 발랄하고 생생한 일화들이 이 책을 재밌게 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는 저자의 '신랄한' 공격에 당황했으리라. 특히 작품에 주력하기 보다 패거리를 만들고, 글질과 뒷말을 통해 자신의 불이익을 막으려 했던 화가들은 박파랑의 신랄한 공격에 낯빛이 변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녀의 신랄함은 독자들에게 후련한 대리만족을 줄 정도이다. 그러나, 그 후련함 끝에 한국 미술계 나아가서 우리 문화계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우리들의 책임을 따져 묻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급 자동차와 고급 시계, 명품 의상을 차려입는 우리의 졸부 근성, 그 화려한 차림새로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카페에나 고작 들르는 우리의 한심함에 대해서 냉정하게 꾸짖고 있다. 내가 보기 위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집안에 모셔두는 구매 행위에는 게으른 우리들이 바로 한국 문화를 어둡게 하는 범인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신랄함이 무서워지게 된다.

그림을 잘 모른다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은, 문화를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가르침은 그림을 보는 행위는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게 '좋아하는' 그림과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나눠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그림에 친해지게 된 시작이었고, 독자에게도 좋은 출발인 것 같다.

큐레이터 박파랑으로 인해 나도 그림을 좋아할 솔직한 용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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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심 > 일개 관객에게, 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까지는 아닐지라도 발상의 전환이 된.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
박파랑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건 도발적인 한 문장때문이었다.

 '나는 그림을 모른다.'

 큐레이터라는 사람이 (그게 뭔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 쪽 업계 종사자 아닌가?) '나는 그림을 모른다'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도 참 도발적이고, '나는 그림을 모른다? 그럼 나는 아나? 다른 누군가는 아나? 그림을 안다는 건 뭔가? 그림을 꼭 알아야 되나?' 등등 여러가지 가치론적인 물음들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또한 꽤 자극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을 모른다고 운을 띄웠겠다? 그러면 그림을 안다는 게 뭔지에 대해 말해주겠군' 이라는 속물스러운 기대가 있었다. 그림에 관심은 있지만 그림이 무한히 신비로운 대상으로만 느껴지는 일반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안다' 쪽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면 유익한 기회가 아닐 수 없으니까.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저자는 말한다.

 다음의 독자들은 읽지 말 것. 1. '그림을 알고자 하는 사람'.  2.…. 

 자, 나의 은근한 기대는 일언지하에 좌절되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뭔가 있겠지 겸연쩍게 웃으며 나는 책장을 넘겼다.

 

초반에 저자의 문제제기와 고백은 사뭇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매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뭐가 좋은 그림인가, 그림을 좋아한다는 건 뭔가, 그림을 왜 보나 등등 근본적인 물음들이 나온다.) 그 중 특히, 도대체 전시의 소개글은 왜 그렇게 현란한 철학적, 미학적 개념들로 가득차 있는가? 정말 그것들은 그 전시를 소개하는 최선의 장치인 걸까? 와 같은 저자의 물음은 개인적으로 열화와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통렬한 문체에 있어서는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뭇 고백적이고 근본적인 물음들에 이어서는 아마도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반대중에게는 생소할, 미술이라는 것을 둘러싼 매우 유익한 정보들이 소개되어 있다.  

 가령 전시를 본다고 하면 작품과 나, 작가와 나만을 생각하지만(나는 그렇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에 덧붙여 이 둘을 중개하는 그 공간과 중개자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것, 정확히 말하면 전업작가이겠는데, 아무튼 그것에 대한 나의 나이브함에 대해서도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전업작가, 특히 그린다는 것은 말도 못하게 순수하고 정신적이며 고행에 가까운 작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 '예술가'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가 부여한 일종의 환상에 가까운 지도 모르겠다. 그림이건 글이건 음악이건 번역이건,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인지도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나의 작업을 대중에게 알리고, 나의 작업에 적합한 금전적인 거래를 성사시키고, 보다 효과적인 거래를 도와줄 중개자와 접촉하고, 그 외 여러가지 '작가'로서의 생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교적인 '작업'이 또 필요하고. 그렇디는 것. 이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말하자면 '작가'의 현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상상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림을 어떻게 볼까, 그림을 왜 볼까, 작가들은 어떻게 먹고 살고, 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어떤 거고, 화랑들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작품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며, 미술비평이라는 게 어떤 거고, 현재 한국의 비평이라는 것의 돌아가는 상황이 어떠며 등등등. 저자가 큐레이터인만큼 그림의 '유통'에 대한 비중이 큰 편인데, 그 역시 일반 대중도 알아둘만한 유익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림을 보고, 또 (장차) 사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독자로서의 얻은 이득도 이득이지만, 이 책이 어쩌면 저자 자신에게는 아직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 같은 게 아닐까 라는 것이었다. 예술학과를 다니던 대학시절의 고민지점부터 시작해 그 이후 화랑의 큐레이터로 시작한 이 쪽 업계에서의 직장생활까지, 자신이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에 넌덜머리가 나는지, 또 어떠한 희망이나 전망을 갖고 이 시점이 있는지 등에 대한 반추. 어쩌면 책 한 권 자체가 치열한 자기반성의 과정으로도 보인다.

('나는 그림을 모른다'. 역시 무엇인가를 '모른다'라고 솔직히, 그리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자는 그만큼 자신이 있는 자다. 그림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그 현재까지 이르기까지 자신은 부끄럽지 않은, 적어도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보냈음에 자신이 있는 자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요 신뢰가는 점이다. )

 

한 사람의 인생에 그림이 무엇일 수 있을까? 가난한 일개 관객에게 그림을 본다는 것, 전시에 간다는 것, 어떤 그림을 '좋다'고 말한다는 건 뭘까? 글쎄 그건 그냥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까지 해 왔듯이 괜시리 눈길이 가는 그림들을 쳐다볼 것이고, 그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정보를 찾아 기웃거릴 것이다, 취미삼아. 그리고 여전히 그림을 안다는 게 뭔지, 이 책을 읽기 전과 마찬가지로 전혀, 전혀 모르겠다.

다만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객의 입장, 작가의 입장, 전시 기획자의 입장, 컬렉터의 입장…  미술이라는 것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한 명의 관객으로서, 발상의 전환이라고 불러도 좋은 만큼 새롭고 유익한 정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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