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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휴머니즘 - 인류의 미래를 찾아서 (에리히 프롬 탄생 125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황선길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4월
평점 :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위기의 휴머니즘>은
이러한 오늘날의 세계를 반세기도 전에 놀랍도록 정확히 꿰뚫어 보며,
인류가 "하나의 세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휴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에게는 인간의 사회성과
무엇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과 통찰력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가 라는
두 가지 큰 관심사가 연구의 주제였다.
그는 사회가 인간에게 마치는 병리적인 영향과
자신과 사회를 위해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군중 속에 휩쓸릴 수 있는 존재 인지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안에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더 인간다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지배와 순종, 복종이 일반적인 모습이고
시장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성공이 개인의 인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프롬은 이렇게 사회가 만들어낸 결함이 "정상"으로 인정되는 모습을
"정상성의 병리 현상"이라고 지적하는 동시에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고자 했다.
희망은 있다.
변화를 위한 조건은 합리화에 빠지지 않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
사랑이 증오보다 우월하다는 것,
영적인 힘이 시장에서의 성공보다 우월하다는 것,
존재하는 것이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다. P 54
냉전시대에 반전활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프롬은
<위기의 휴머니즘>에서 위기에 빠진 인류와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익 포플리즘과 민족주의, 인종주의로 드러나는
집단 나르시시스트적인 활동을 인간의 심리적 욕구와 깊게 연결된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4부에 실려 있는
1962년 프롬의 <하나의 세계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새로운 휴머니즘>이라는 강연으로
"하나의 세계"가 갖춰야 할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하는 부분이었다.
만약 인간이 삶을 선택할 수 없다면,
즉 휴머니즘을 새롭게 경험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관리할 수 없으리라. P239
프롬은 하나의 세계가 도래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하나의 세계를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석기 시대 원시 부족의 모습처럼 같은 부족 구성원만을 신뢰하며
같은 음식, 같은 노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고
이방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이방인을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나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천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갈등과 분쟁,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념 논리이고
개인의 삶과 집단, 국가를 초월해 만연하고 있는 나르시시즘일 것이다.
인간의 목표는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극복하는 것이다. P240
프롬은 불교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깨어있는"자란 나르시시즘을 극복한 사람이며
성경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또한
이웃이 자신만큼 중요한 존재가 될 때 가능한 나르시시즘의 극복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였을 떄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음식, 즐겨보는 콘텐츠, 사용하는 말투,
정치 성향이나 세대 문화까지 비슷한 사람들과는 쉽게 공감하지만,
조금만 다른 취향이나 의견을 만나면
“왜 저걸 좋아하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가끔은 찍먹, 부먹 같은 사소한 취향 논쟁조차
장난처럼 시작됐다가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누는 놀이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결국 프롬이 말한 새로운 휴머니즘은
자신과 닮은 사람만 사랑하려는 인간의 오래된 본능을 넘어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나르시시즘과 집단 나르시시즘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기술적으로는 연결된 세계를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분열과 증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롬이 말한 “하나의 세계”란
국경을 넘어 서로의 인간다움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세계이고,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랑과 연대, 그리고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새로운 휴머니즘”이다.
인간이 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세계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이 민족주의는 인간 스스로를 파멸의 위험으로 이끌 조건과 상황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휴머니즘을 발전시키지 않는 한,
하나의 세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