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나 비룡소 창작그림책 59
정진호 / 비룡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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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언제나 있었는데 나는 몰랐네요.

깜깜한 밤엔 모두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안 보일 줄 알았어요.

까만 밤길 어두워 자전거 불빛을 켜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요.

수십, 수백, 수천... 수수수억 광년을 지나 달려왔을 텐데

아무 배려 없이

내 앞길 밝히자고 딸깍라이트를 켰었지요.

 

그럼 그 순간 하고 밝아지는 앞길이랑

그 친구들이랑을

나는 바꿔버렸던 거죠.

그 친구들은 든든하고 은은하게 내 곁에 함께 있어주었는데 말이죠.

내 갈 길 바빠 눈길 돌릴 새도 없었네요.

별무리들이 저렇게 총총히 꽉 차 있었다니요.

은빛깔 별무리들 쏟아져요.

같은 모양, 같은 크기가 하나도 없어요.

모두 제각각.

곁에 있었는데 내가 만든 인공 빛으로 저들이 안 보였던 것이군요.

분명 있었는데 말이죠.

내 자전거 라이트가 틱틱.. -’하고 쉬는 사이

저들은 나에게 살그시 다가와 와글와글 말을 겁니다.

나는 그것도 첨엔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풀숲 같은 게 있는 것도 같고, 뭔가 날아다니는 것도 같고.

, 개똥벌레들이네요.

개똥벌레를 보게 되다니요. 신기해요.

자전거의 등이 고장 난 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닌걸요.

개똥벌레들이 별무리들이랑 자전거 바퀴도 만들고,

안경도 만들고, 눈사람도 만들고, ‘8’자도 만드는 것 같아요.

별들은 가로등이 줄지어 나타나니 알강달강 건너뛰기도 합니다.

 

뿌아아앙!’ 앗 눈부셔!

고속철은 속도처럼 불빛도 강렬하군요. 아이쿠, 깜짝야.

사람이 만든 빛은 나를 불쾌하게 때립니다.

이상해요. 너무 밝아도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나 봐요. 질끈 눈이 감겨지네요.

우리 인공 빛들이 너무 밝아서 별들도 눈을 감아버렸던 건가요?

그래서 숨어버렸던 건 아닌지...

 

개똥벌레들이 떼지어 있나? 저 노란 불빛은 뭐지?

~ 불꽃놀이군요. 별들도 같이 따라하네요.

은빛쇼, 금빛쇼, 찬란합니다.

 

뭐가 떨어져요. 묵직한 구름이 보여요.

별우산이 흰 빗방울들로부터 나를 지켜줍니다.

, 내리막길인데 아무것도 안 보여요. 어떡해, 나 내려간다!

, 내 뒤에 있던 녀석들이 앞다퉈 내 앞을 밝혀줬어요.

다시 오르막길이에요. 에구, 발 구르기 힘드네.

근데, 조금씩 힘이 덜 드네? 누가 밀어주나 봐요.

 

, 이것은 절벽?...인줄 알았는데 별빛다리가 있었군요.

자전거를 타는 건지, 비행기를 타는 건지, 붕 떠있는 느낌이에요.

페달을 밟는데 날고 있어요.

 

틱틱?! 이제 라이트가 다 쉬었나 봐요. 희미하게 불이 들어와요.

! 깜짝야. 앞길이 밝아졌어요.

그런데 이 낯선 느낌은 무언가요?

주위가 갑자기 허전해졌어요.

얘들아, 어딨니? 어디 갔어?

그 친구들이 안 보여요.

그냥 꺼버릴래요.

딸깍

 

! 다시 와줬구나.

고마워.

같이 가자.

 

까만 밤과, 눈만 퀭한 더 까만 내 그림자에 은빛 별들과, 노랑 개똥벌레들의 색 대비가 진하게 다가옵니다. 까만 길, 까만 언덕, 까만 구름, 까만 자전거, 까만 가로등, 까만 풀과 하얀 고속철 불빛, 하얀 가로등 불빛, 하얀 빗방울, 하얀 글씨들. 무채색과 노란색으로 최소한의 색깔을 사용하고, 화면 구성도 단순화했어요. , , 무리, 여백, 글자 몇 개, 단순 구도, 실루엣, 눈동자, 시선 처리, 등장인물 단 한 명.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 없이도 가장 단순함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문득 존 클라센 작품 속 익숙하게 보았던 입이 없는 주인공의 눈동자와 그 시선처리도 떠오릅니다. 자연과 인공의 어우러짐도 얘기하는 듯합니다. 별과 나, 한바탕 놀았습니다. 우린 친구가 됩니다. 과연 이제 나는 불빛 하나 없이도 별들을 친구 삼아 자전거 탈 용기를 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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