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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7번째 라라피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 나오키상 수상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작가의 재미있는 소설을 소개한다. 그렇다 ‘재미있는’ 소설이다. 대중문학에 대한-흔히 우리들이 연애소설과 동일 시 하는- 편견을-만약 당신이 순수문학에 어떤 숭고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면- 한쪽에 잠시 제쳐놓고 자 이제 책을 펼쳐보자.


   「라라피포」.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도무지 유추해 낼 수도 없다. 라라피포란 A lot of people이란다. 이 책의 한 주인공이 저 긴 영어를 빠르게 들었을 때 이 책의 제목은 태어났다. 라라피포, 정말 이 세상은 이제 라라피포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만약 스스로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동의할 것이다. 몰개성이란 말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별의별 인종들이 세계에는 넘쳐난다.


   그렇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모를, 망가져 가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린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이들을 멸시하길 주저치 않는 우리들이 또한 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세상에는 있다고 하는데, 나는 망가진 사람과 아직 망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두 부류를 상상해 본다. 

   「라라피포」에선 망가진 이들이 주인공이다. ‘적당히 이상한’ 아니라, 정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들이 나온다. 카프카는 벌레 같은 인간을 그려내는 대신 아예 벌레를 만들어 버렸다. 오쿠다 히데오는 어떤 계층이나 상징을 위해서 캐릭터를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그냥 철저히 망가진 개인을 그려낸다. 출발은 개인이다. 종착점 역시 개인이다. 그네들은 특별한 변화나 성장 없이 다시 살아간다. 되레 더 망가지기도 한다. 인생은 아마도 그 안에 들어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라라피포」엔 6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단편의 형식을 취하되 이야기들  사이에 연광성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라인」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물론 6명이 서로 친구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서로에게 약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스기야마(명문대 출신 대인공포증 환자)와 육체관계를 맺는 다마키(‘폭탄’이라 불리는 못생긴 뚱땡이)는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사이고지가 구술하는 포르노 소설을 대신 받아 적는 일을 한다. 사이고지(한때는 순수한 문학청년이었던 대머리 아저씨)의 인생에 큰 태클이 된 노래방 ‘미러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는 야오야나기(남의 말을 절대로 거절 못하는 소심남)라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는 사토(권태로운 일상에서 탈출해 에로 배우로 거듭난 아줌마)의 집에 불을 지른다. 사토 요시에는 또 어떤가. 그녀는 구리노(여자를 등쳐먹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달)가 매니저를 맡고 있는 중년 포르노 배우다. 구리노는 스기야마의 윗집에 살고 있다.

   한편의 영화를 보 듯 총 6편으로 나누어진 글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 된다. 얽히고설킨 스토리가 읽는 이의 뇌를 시각적으로 강하게 자극한다. 이 책은 다분히 시각적이다. 인물이라든가 장소, 상황, 성행위 등에 대한 묘사가 꽤나 자세하다. 아마 당신은 이 소설에서 마음에 담아두고자 하는 글귀를 발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뭐 약간은 외설적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겠다. 섹스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야한 묘사 때문에 라라피포를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또한 있을 법하지 않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간단히 말해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본 현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흔히들 일본 작품들을 보면 현실성 없는 캐릭터들이 판을 친다고 한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내가 일본에서 몇 년간 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현실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데로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리리․브런키라는 일본의 한 작가는 그런 점이 분해서, 세상에는 정말 이런저런 망가진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당신들이 보고 있는 세계는 극히 일부분이야. 나는 그래서 쉽게 판단하지 않아. 우리는 모르는 게 더 많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정말 특이한 사람들에 관한 글들을 많이 써내고 있다. 나는 그의 팬이다. <주온>으로 유명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한 영화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초기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어떤 광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설정할까했었다. 그런데 설득력이 없는 것 같아 바꿨다. 하지만 사실 일본에는 설득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그러니 그 생각도 아주 설득력이 없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 한국에서도 설득력이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순수문학-나는 이 정의를 잘 모르지만-을 읽는 이들은 점점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일본도 그런 사정은 매 한가지다. 그냥 온 국민이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순수문학은 극소수의 독자층을 향해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런 현실에서 이 책은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대의 석학이라 불리 우는 이들의 난해한 철학 책보다「라라피포」한권의 책이 더 많은 이들의 인생에 관여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악마적 성향, 변태적 욕망 혹은 이상기질, 두개의 자아와 당신의 무의식. 단어의 이런 변주는 결국 '인간이란 잘 알 수없는 존재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많게 든 적게 든 인간은 더럽고 이기적인 동물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만약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한번쯤 이 책의 독서를 고려해 봐도 좋을 것이다. 어렵고 난해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일품이다. 어려운 표현하나 없이 끝까지 소설을 풀어나간다는 것-게다가 무척 유쾌하게-은 커다란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글이 길어지지만 ‘시선’의 문제를 들어본다.

   잘나고 못나고 오타쿠고 아니고의 문제는 결국 시선의 문제라 생각된다. 당신이 높고 거대한 절대로 뚫기 불가능한 벽-사회의 시선 혹은 무엇이라 불려도 좋을 수많은 것들-을 한번  넘어보고 싶다면 당신과 다른 어쩌면 약간 다를 수 있는 이 유쾌한-안 유쾌할 수도 있다- 6명을 만나보아라. 무언가 굳이 깨닫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닫는 것 같지만 사실 한개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를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유쾌해지자! 그리고 많이 웃어라. 이 작품은 내게 그렇게 말한다.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솔직해지자.

   지드는 작품에 세 개의 몫이 있다고 했다.

   당신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건질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 시도해 본다 한들-아니 즐겨본다 한들- 당신의 소중한 시간이 크게 방해받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금방 읽힌다는 뜻이다.

   어디선가 이런 가벼운 소설은 읽은 후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흠, 가볍다라. 밀란 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하여 멋들어진 소설 한권을 써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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