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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평점 :
나오미 울프의 '아름다움의 신화'
- 우리들의 일그러진 여성성 -
저자: 나오미 울프
성/인종 차별을 비롯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진보적 사회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
저자는 페미니즘 역사의 '세 번 째 물결'을 선도했던 대표적인 이론가다. 1920년 미국 여성들이 참정권을 쟁취해낸 역사의 순간, 페미니즘의 첫 번째 큰 물결이 일고나서 1960년~1980년 무렵 여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남성 중심 가부장제 비판, 여성의 법률적 권리 신장 등)에 주력하는 두 번째 물결 페미니즘이 일어났다. 그리고 1990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은 백인 외 여성 문제에서부터 동성애 등등 현대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다양한 인권 문제들을 망라하는 넓은 활동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물결 페미니즘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저자 나오미 울프인 것이다.
소개에 의하면,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1991년에 초판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당시에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어 베스트셀러 작품이 되면서 페미니즘의 물결 한 가운데로 우뚝 자리매김을 하고, 지금까지도 명저로 소개되고 있다는 놀라운 책이다. 지난 20세기의 일이긴 하지만 그녀가 당시 여성들 삶의 실상을 무서울 정도로 낱낱이 파헤치며 전개한 개념, 아름다움에 관한 역설, '아름다움의 신화'는 유감스럽게도 2016년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미'에 관한 절대적이고 거대한 담론이 무너지고, 여성들에 관한 사회문화적 차별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개선되면서부터 여성도 공적 공간에서든 사적 공간에서든 자기 자신을 개성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나오미 울프는 아직 여성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아름다움의 양상'이 현대에 와서는 되려 진정한 아름다움에 관한 정체성을 왜곡시켜 개인 여성의 원초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을 제거하고 현 체제 권력과 시스템의 틀에 잘 들어 맞도록 여성을 가공하는 억압의 굴레로 진화했다고 역설한다. 훨씬 더 은근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우리를 억압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여성을 왜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으로 병이 들도록 내버려두고 끝내 그녀들이 아름다움의 신화 앞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인지, 그 신화는 대체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일, 문화, 종교, 섹스, 굶주림, 폭력 등 큰 몇 가지의 목차로 나누어 설명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친밀한 관계와 성과 삶에 관한 것이라고 여성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적 거리와 정치, 돈, 성적 억압으로 구성되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절대 여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남성의 제도와 그에 따른 권력에 관한 것이다. (P. 35)
나오미 울프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발은 치명적이다. 굉장히 무미건조한 말투를 유지하다가도 자기 자신도 여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직접 혹은 간접적인 피해 경험들을 나열할 때는 한없이 가련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읽는 독자들의 눈을 고문하여 제대로 충격을 줘보겠다는 듯이 끔찍한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기수술을 설명하면서 입장을 바꿔 남성의 음경을 수술로 훼손하는 것을 그려보는 부분에선 그녀도 스스로 섬뜩했는지 치를 떨었다.)
아주 공적인 영역인 직장에서부터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침실에서까지 여성들은 너무나도 빈번하게 외모와 옷매무새를 평가받고, 생애의 전반에 걸쳐서 자기 역할의 상당 부분을 가정 안에 쏟도록 학습 당한다. 다이어트, 성형수술, 값비싼 화장품 앞에서 사회가 고안한 '흠 없는 미인상'을 떠올리며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혐오'라는 구렁텅이로 추락한다. 그녀들은 지방을 새롭게 개념화하여 '군살'이라는 이름으로 병명을 붙이고 제거하고, 성감이 심히 감소되더라도 유방의 크기를 확대시키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실제로는 거의 무용지물의 액체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광고를 믿어보며 거액을 들인다. 기꺼이 그 '실체 없는 미인상'에 맞추기 위해 돈과 정신과 육신을 지불한다. 저자는 묻는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꿈꾸는 이상형을 위해 자유롭고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이 맞는지.
여성을 여성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내면에 있지 않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해 논하는 외부 환경에서 정작 여성은 소외된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그 사회의 기득권이 규정한 '건강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 필수템'들이 바로 광대한 시장 안에 있다고 집요하게 유혹하며, 본래 우리가 지닌 고유한 여성성을 '미완의 것', '부족한 것', 심하게는 '병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우리가 스스로 몸과 정신을 난도질하고 해체하도록 한 뒤, 부위 별로 꼼꼼하게 어서 뜯어 고치라고만 말한다. 권력은 여성이 스스로 '여성이라는 것'에 회의감을 갖고, 자신을 타자화하고, 끝내 자기의 자아상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둔다. 그것은 단지 이성애자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상이 딱 그렇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권력의 본심은 여성의 불안을 시장으로 삼아 그 불안을 증식시켜 이익을 창출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저자 나오미 울프는 말한다. 간절하게 말한다. '아름다움'이라는 허상 속에 갇혀 자학하는 것을 멈추고 여성이 지닌 건강한 본질을,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삶의 가치를 추구해야한다고.
뻔뻔해지자. 탐욕스러워지자.
쾌락을 추구하자. 고통을 피하자. 마음대로 입고 만지고 먹고 마시자.
우리가 원하는 섹스를 찾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섹스와 맹렬히 싸우자.
자신의 이상과 대의를 선택하자.
규칙을 깨부수고 우리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확고해지면,
그러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꾸미고 과시하고 한껏 즐기자.
감각의 정치학에서는 여성이 아름답다. (p. 458)
여성 혐오 범죄들이 판을 친다.
임신 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분류하겠다고 정부가 발벗고 나서자
처벌이 무슨 말이냐며 그것이 통과되면 모든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의사들이 항의한다.
범죄의 현장에는,
여성의 자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먹이는 정부와 의사들의 싸움에는 정작 여성이 없다.
여성이 여성을 위해,
여성의 생명권과 존엄한 삶을 위해 맹렬하게 소리를 내며 싸워야 할 장소에서
여성은 이미 피를 흘리고 있거나 죽어있는 상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 정도다.
그 저열함과 천박함이 비참하다 못해 웃기다.
슬플 정도로.
여성이 여성을 미워하는 것.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약한 이유다.
우리는 권력과 투쟁하기 이전에 거울을 보며 내 자신과 화해해야 할 것이다.
내 자신. 나. 나를 통해서, 세상과 연결된 둘도 없는 유일한 출구인 '나'를 통해
아름다움의 신화 너머로 당당하게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천진하게 웃어야 한다.
우린, '우리 욕망대로의 우리'인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우린, 우리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신들이 여성을 위한답시고 꾸며준 신화' 속 보다
훨씬 황홀하고 섹슈얼하고 도덕적이고 건강하며 유쾌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