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 그래픽 평전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3
넬슨 만델라 재단 글, 피노 옮김, 움란도 웨지톰비 그림 / 푸른지식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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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은퇴하기까지 만델라의 일생을 그려낸 책이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남아프리카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사실적이고 예술적인 그림들이 더욱 실감나게 내용의 이해를 도와준다.

 

1943년 8월의 버스요금 인하 시위에 참가한 경험은, 파업 9일 후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승리함으로써 투쟁으로 얻은 결과에 대한 보람과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일에 대한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시대였다. 운동장, 수영장, 카페, 기숙사도 사용할 수 없었고, 전차도 백인과 인도인들만 이용하는 전차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1950년 노동절 파업을 결의하지만 아프리카민족회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인도인들이 투쟁을 주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과 친구로도 지냈지만 인도인들과 공산주의자들과 공동 행동을 하는 데에 신중했던 것이다.

5월 1일 올란도에서 열린 평화 시위가 경찰에 의해 무력진압 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아프리카민족회의의 행동은 1952년 여섯 가지 불합리한 법을 거부하는 대규모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진다. 간디의 수동적 저항 전략에서 영감을 얻은 불복종 캠페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6개월 동안 8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체포되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프리카민족회의 회원 수가 5천명에서 10만 명으로 늘어난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났다는 것이다.

 

비폭력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1960년 ‘민족의 창’이라는 군사조직을 결성하게 되는 일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여겨진다. 비폭력 저항 시위가 무력진압 앞에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은 남아프리카에서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도 시위대를 진압하는 방식은 무섭기만 하다.

 

1990년 조건 없이 석방되기까지 30년 이상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정부와 협상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석방된 후에도 정부의 탄압은 계속 되었고,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흑인 거주구에서의 폭력 사태는 극에 달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남아프리카에서 1994년 첫 번째 민주 선서가 이루어진 것이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도 잊은 채 평생을 투쟁에 몰두한 그의 삶과, 과거의 적들에게도 손을 내밀며 진정으로 화해를 원했던 그의 평화 사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오랜 세월동안 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원했던 것은, <자유헌장>에도 나와 있듯이, 아프리카인들이 이끄는 아프리카를 보기를 원하는 것, 그리고 남아프리카에는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국가회의와 모두를 대변하는 헌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푸른지식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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