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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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2월의 사회주의 승리,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개혁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소련이 1968년 무력 침공을 하였고 1969년부터 1987년까지 개혁을 폐지하고 공산정권 안정화를 진행했던 <정상화>의 시기를 거쳐 1989년 11월 냉전이 종식되면서 사회 질서가 바뀌는 등 잘 몰랐던 체코의 아픈 역사들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번역자의 주석이 없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독자들의 숨을 멈추게 하는 잔인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인공의 눈으로 보는 건축물 감상을 통해 체코의 문학들과 예술, 건축들을 알게 되는 재미와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프라하의 오래된 성당들을 무한히 가치 있고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호사가의 수집품이라 표현하고, 현대의 건축가들을 경멸하며 모더니즘을 세계적 재앙이라 할 만큼 주인공의 중세 건축에 대한 애정은 독자로 하여금 그 장소에 직접 가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사방에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 세상을 바꿀 힘이 없었다.

 

결손가정의 상처와 이름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었을 고독을 중세 시대의 역사와 건축 사랑으로 메꾸었다. 악하고 뒤틀리고 살인적이라고 생각하는 질서에 대항하여 어떻게든 저항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경찰이 되기로 한다. 최고의 희생을 하고 영웅적으로 죽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딱 들어맞는 일이라며. 경호중인 보호인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취한 사이 보호인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황당하고 그 일로 경찰에서 쫓겨나는 어이없는 상황들이 안쓰럽다.

주인공처럼 중세 건축물 매니아인 그뮌드의 경호를 맡으면서 더 이상 가지 않던 성당들을 다시 둘러보게 되는 상황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신시가지의 오래된 건물들을 재건축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엔 잘 몰랐지만, 주인공보다 더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양식에 집착하는 그뮌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역사의 모든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 하는 그의 욕망을 어느새 이해하게 되었다. 7성당 재건축이라는 계획이 정말 가능할까 하는 생각과 만약 이루어진다면 역사적으로도 굉장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을 향한 신앙 같은 애착을 보이는 주인공의 생생하게 과거의 장면을 보는 꿈들과 수많은 기병들이 대성당으로 몰려가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의 현실감을 더해준다.

 

사방에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는 말이 왠지 기억에 남는다. 공감이 가면서도 약간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 그뮌드와 '그들'의 방식을 지지할 수는 없어도 심정적으로는 그들을 탓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의 결말은 독자를 적잖이 당황과 충격을 느끼게 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국가체제에 휩쓸려야 했던 체코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라 짐작된다. 침입자에 대한 살벌한 응징은 그들의 마음 한 켠에 있는 역사의 응어리를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해 주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언젠가 체코 여행을 한다면 아름다운 성당들과 신시가지를 둘러보며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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