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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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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세요. 주석 잘 안읽는 타입인데, 이 책에서는 주석을 읽으면서도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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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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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보통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건 쉽고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니 치밀한 논증이 없더라도, 뛰어난 학자를 인용하지 않아도 괜찮다. 1)알고 있지만 무시하던 사실을 마주하게하고 2)전혀 다른 입장을 던져주는걸로 충분하다. 팩트폭력없이 따뜻함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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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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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살을 결심할만하다. 주인공은 뚱뚱하고, 파견직 사원에, 남자친구도 없고, 돈도 없어 좁디좁은 방 한 칸에 산다. 잉여인간이었다. 현재도 미래도 없는 사람이 자살을 결심하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주인공만의 결심은 아니다. 매일 36분마다 1명씩, 그렇게 1년에 13,836명이 여기 대한민국에서 자살했다.(2014년 기준)

삶은 공허하다.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느라, 집에 돌아오는 길 하늘이 보랏빛인지 희뿌연지 관심 갖고 싶지도 않다. 어제 지났던 이 길이 오늘은 조금 다른 사람들과 다른 풍경들로 채워진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내일도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막막한 한숨을 내쉴 뿐.


불행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발가락부터 움직여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라는 목표를 삼고 인생의 변화를 이루어낸 주인공을 그려냈다. 주인공은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자신이 살던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조깅으로 치면 이런 거다. 매일 같은 공원만 같은 시간에 걷던 사람이, 깨달음을 얻고 다른 루트도 개척해보고,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걸 ‘터닝포인트’라고 부른다.

내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스무 살 때 나는 스스로가 싫었다. 앞으로 남은 나날들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고민했다. 다른 누구를 시기했고, 나는 왜 이렇게 거지 같냐며 자책했다. 그래서 아침이 될 때까지 정성껏 나는 왜 이모양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일기를 끄적였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닥치는 대로 살자’였다. 원대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지 않던 일들을 해나갔고, 만나지 않던 사람을 만났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그 말이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경험을 통해 배웠고 나는 점점 좋아졌다. 목표를 세우고 일상을 벗어나라는 저자의 말처럼 살았고, 지금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주인공도 나도 ‘미달’되는 사람이었다. 우리뿐인가. 뚱뚱하다, 비정규직이다, 시험에 실패했다, 그 외 수많은 이유로 사람이 될 수 없는 ‘기준 미달’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우울은 약한 멘탈과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쉽게 설명된다. 하지만 기준 미달이라 우울함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다면, 그 기준이 옳은 것인지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뚱뚱한 비정규직이 잘못일 수 없다. 아니. 뚱뚱하면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외모지상주의가 문제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도, 복지도, 인간적인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시험에 실패한 게 네 탓인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게 하는 청년실업. 그러면서도 일하는 사람들은 과중한 업무와 야근으로 아우성치는 현실이 문제다.

개인에게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투영된다. “유리멘탈에 자존감 바닥인 ‘나약한’ 너는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많은 실패와 좌절이 개인의 나약함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내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스무 살의 나에겐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물론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래시가드를 입겠다’는 구체적 목표와 결심을 응원한다. 그 목표가 삶의 동력이 된다면 그래서 나아질 수 있다면, 나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해보았으면 좋겠다. 사회는 바뀌지 않더라도, 개인의 삶은 달라져야 하니까. 목표가 당장이야 어떻든, 그 과정을 통해 개인은 성장할 테니까. 다만 뚱뚱한 사람들을 노력 부족이라 경멸하지 않는, 정규직이 되었더라도 여전히 파견사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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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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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고 섣불리 글을 쓸 수 없었다.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대학에서 오랫동안 외면하던 이야기였다.

내가 다니는 대학 광장에는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말하는 플래카드와 그 밑에 텐트 하나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텐트는 걷힌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안에 사람이 있긴 있는지, 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아직 알지 못한다. 몇 년동안이나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던 건 시간 강사라는 이슈가 나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간강사계에 이슈가 생긴듯했다. 무슨 법안 같은 게 도입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아니 강사님은 지나가듯 강의실 내의 인권을 말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 내용을 지웠다. 시간강사는 나와 관련 있는 사람이지만, 이 모든 것은 대학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대학원생 이슈는 그래도 더 피부에 와 닿았다. 대학원생 선배나 친구들은 대학원의 부조리를 개그 소재로 썼다. 그리고 나중에 졸업하고 터뜨리겠다고, 그래도 우리 교수님은 좋은 편이라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내 친구는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가끔은 새벽까지 일하곤 했다. 최저시급을 받지 않는 노동자가 조금 이상했지만,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니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가끔 뉴스에는 교수가 본인 편하겠다고 대학원생에게 스캔 팔 만장을 시켰다는 기사가 뜨곤 했다.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함에 분노했다. 하지만 나는 일상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시간강사의 처우를 흘리듯 언급했던 수업에서 나는 행복에 관한 레포트를 제출했다. 타인이 불행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당신 옆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관심 갖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타인이 불행한 행복을 비판하면서, 레포트를 제출받을 강사님의 불행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식도 없었다.


변명하자면 일개 대학생인 내가 타인의 삶을 낱낱이 알기는 어렵다. 이렇게 지방 강사의 삶을 풀어낸 글을 보면, 나는 이게 소설 같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에, 단 한 번도 공감하려 애쓰지 않았다고 변명해본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기가 벅찼다. 타인의 고통을 떠안자고 주장할 여유는 있었지만, 막상 고통을 떠안고 상처받을 여유는 없었다. 


내가 여전히 글을 쓰기 어려웠던 건, 내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동안, 나는 치열하게 내게 맡겨진 삶을 살아갈 테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찾고 있지만, 그 방향이 대학원생과 시간강사 처우개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있다. 일시적인 공감이 그들에게 무슨 힘이 될지 무력해졌다.


소설 <쇼코의 미소> 작품 해설에서 이런 말을 읽었다. '지적인 것이 아닌, 정서적 공감이 지금 이 시대에 유효한 계몽 양식일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그러나 현실로 다시 돌아오면 나의 공감은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무슨 쓸모가 있으랴.  


다만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앞으로 더 힘든 사람 편에 설 수 있겠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내가 사장이라도, 교수라도, 선배라도 그랬겠다’라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널렸다. 행동하지 못하는 나는, 어딘가에 있을 그들의 고통을 인지하고 있다고 부끄러운 위로를 건넨다. 그래도 나는 다른 순간 다른 장소에서,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 편을 들겠다고 다짐한다. 이 정도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답을 찾은 것 같아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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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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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구조 개편이 주목받고 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한다. 혹자는 분산된 권력구조보다 집중된 권력구조가 효율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우리가 훌륭한 대통령을 뽑는다는 전제가 숨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훌륭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훌륭한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대한 합의조차 어렵다. 일례로 누군가는 도널드 트럼프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여기지만, 누군가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며 분노한다. 의견이 갈리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자격없는 사람도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했다.

행정부 뿐이랴. 일상에서도 집중화된 권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간단히 권위주의적 구조라 부르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가 곳곳에 있고, 엄석대에 복종하는 우리들도 어디에나 있다. 가정에서 부모님과 당신의 의견은 동등한 무게를 가지는가? 부모님의 견해는 명확한 근거가 없더라도 설득의 과정없이 정답이 된다. 장유유서를 존중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연장자가 더 큰 권위을 갖는다.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고, 합의하여 결정하는 조직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울산 예비군 훈련장의 참사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대대장이 폭음통의 소진을 지시하자 탄약반 소대장과 사병들이 화약을 길바닥에 뿌렸고, 이를 모르고 지나가던 병사들이 들고 있던 삽과 갈퀴로 바닥을 긁어 마찰을 일으키자 폭발했다. 장병 10명이 발가락 절단, 고막 파열 같은 부상을 입어야 했다. 따르지 않아야 할 주장까지 따르게 하는 것이 지금 권위주의의 모습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 떠오른다. 문제를 푸는 연기자 A, 실험 주최자 B, 실험 대상자 C가 있다. A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실험 대상자 CA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한다.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의 강도는 점점 세진다. 그리고 곧 A는 고통스럽다며 실험을 중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C는 실험을 멈추지 못했다. B가 괜찮다고 계속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전기 충격이 정도를 넘어섬을 알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실험 주최자 B의 권위에 저항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권위에 철저히 복종한다. 그래서 부당한 지시에 거역하지 못했고, 국정농단 사태는 감추어진 채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곳이 권위주의적 구조를 가지더라도 국가는 달라야 했다. 하지만 행정부까지 침투한 권위주의적 구조가 우리나라의 현 주소다. 우리는 국정농단에 가담한 자들의 도덕성을 비난한다. 여기서 나아가 제도적으로 철저히 권위를 무너뜨려야 재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로버트 달은 비민주적 구조가 다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둘째, 시민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정부는 때때로 재난에 가까운 오류를 범하기 쉽다. 셋째, 지배적인 특권층은 노동계급, 여성, 소수자 등 배제된 계급의 이익을 고려하고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국민 나고 국가 났지, 국가 나고 국민 나지 않았다. 국민 없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국민 한 사람과의 소통을 국가가 겨우효율이라는 이유로 차단할 수 없다. 효율을 말하며 소통을 배제하는 국가는 효율을 잘못 말하는 국가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주인은 엘리트가 아니라 국민이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효율을 논하는 자에게 효율도 때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국가주도적 성장을 이룬 칠십년대 향수에 젖어 있는 것까지는 자유다. 하지만 미래의 세대에게까지 과거의 영광을 주입시켜야 할까? 시대는 변했다. 2017년을 1970년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희망이 있다면, 한국은 더 민주적인 국가가 될 부분이 충분히 많다는 점이다. 더 나은 국가가 될 기회 역시 충분히 많다. 모든 상황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이때, 지금까지의 구시대적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개척할 때다. 더욱 정치적으로 평등한 국가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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