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던 오월의 광주.아직 도청이 그대로 있던 때였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갔을 때 저지하던 남자는교육자료로 쓰겠다는 말에 촬영을 허락했다. 하얗고 말간 건물은 병원 같은 인상을 주었고그날 밤의 흔적은 군데군데 총탄 자국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5월 하순이었으니 제사같고 잔치같은 518 기념행사가 한바탕 지나가고 난 다음이었을 텐데 곳곳에 나부끼는 깃발이며 바닥에 떨어진 종이모자 같은 것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를 짐작할 만했다. 국립묘지에서는 초등학교 회장단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기사를 써서 세상에 알렸다는 청년과 영혼결혼식을 한 처녀의 무덤, 첫번째 희생자인 농아 청년의 무덤 앞에서 가이드는 오래 머물렀다. 무덤 주인들의 묘비에 쓰여진 글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묵념을 하는 내내 공기마저 무겁게 침묵했다. 그들은 이제 말이 없으니 누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겠는가. 그리고 다음날, 담양을 거쳐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부음을 들었다. 광주의 비현실적인 공기가 나를 계속 둘러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책 한 장 넘긴 것처럼 사람이 죽었다. 사람 목숨이 그리 가벼이 여겨져서는 안되는 건데. 이 나라는 아직도... 한강 작가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언제인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지만 잠이 오던 때가 있었다. 그녀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읽어주는 책 소리를 들으면 팽팽했던 신경의 끈이 느슨해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한강은 한승원 작가의 딸이잖아. 어쩌다가 아빠를 잘 만나서 그런 거 아닐까 하던 의혹은 그녀가 도둑글을 쓰며 직장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그러졌다. 그러나 애써 찾아 읽은 그녀의 단편은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모호하고 어렵고 지나치게 수줍음 많고 여성스러웠다. 학창시절 친해지고 싶은 아이가 너무 말수 적고 수줍음이 많아 말을 걸다 걸다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관심을 그만 거두는 것처럼 한강 작가로부터 나는 나가 떨어졌다. 한강이 오월의 광주 이야기를 썼다고 했을 땐 읽지 않아도 충분히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성실하고 속 깊고 공감능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이니. 그리고 광주에서 나고 열 살 남짓까지 살았다는 사실도. 기억은 희미할 테고 소속감도 흐릿하겠지만 외부인이되 외부인일 수 없는 시선을 갖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읽었다. 나는 절대 그들일 수 없고 그들의 동생이거나 친구일 수 없지만 그래서 한강 작가의 시선이 그들과 나를 이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너`라는 2인칭의 서술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첫머리를 읽으며 언젠가 마주친 적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듯 펼쳐지는 이야기가 거리감 없이 스며들었다. 결국은 내 동생의 일처럼 내가 아는 누군가의 비극인 것처럼 읽었다. 오월 광주를 찾았을 때 나는 세상이 살기 나은 곳이 되는 데 도움이 되고픈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었더랬다. 어린 치기였을 수도 있고 너무 세상을 몰랐던 것도 있지만오늘 나는 그때의 내가 좀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