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어 본 번역에 관련된 책은 네 권.
<번역의 미로>, <번역의 탄생>, <번역에 죽고 살고>, <번역의 즐거움>
네 권을 두 권씩 묶어서 생각해 보겠다.
이 두 권은 학술적인 면모가 강한 책이다. 특히 <번역의 미로>의 저자 김욱동은 현직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전문적인 '번역학'의 면모를 책을 통해 보여주었다. 유럽의 번역이론을 줄기 삼아 영어 문장이나 프랑스어,영어,독일어,일본어,중국어 단어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언어들의 실례를 보여주며 번역을 설명하고 있다. 전작 <번역인가 반역인가>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번이 처음 낸 책은 아닐텐데 퇴고의 문제점이 곳곳에 드러나는데, 서로 상대되는 어휘의 위치를 잘못 바꾸어 적은 초보적인 실수가 여럿 나타난다. 나의 머리가 부족한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한가지 '번역학 용어'에 대해서는 저자와 나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데, '축역'이란 말을 자주 쓰는 것이다. 이는 목표언어보다 원천언어에 충실히 번역하는 것을 뜻하는데, '축역'을 듣고서 逐譯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축소, 수축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縮譯을 먼저 떠올려서 완전히 반대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나 않을까? 여기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소한 문제점에도 몇몇 책들과 비교하면 '책다운 책'이란 느낌을 주는 책이다.
반면, <번역의 탄생>의 저자 이희재는 논문스럽게 쓰지 않고, 독자에게 '읽히는' 것에 중점을 두어 높임말 표현을 살리면서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누가 어떤 말을 했다는 번역이론에 관한 책은 아니고, 실제로 어떻게 자신이 번역하는지, 또 어떻게 번역해야하는지를 쓴 책이다. <번역의 미로>는 중립적으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당당히 자신의 지향점을 밝히고 그에 따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가의 번역 이력이 드러나는듯 예문이 책의 반이라고 할 만큼, 많이 할애하고 있다. 단어를 한국어로 적확하게 옮길 수 있게 사전에 없는 자신만의 풀이를 따로 실은 것은 이 책의 정수라 할 만하다.
다음은 번역에 관한 저자의 에피소드를 담은 두 권이다. <번역의 즐거움>은 작은 잡지책처럼 얇은 책이다. 그런만큼 내용도 빈약하다. 저자는 자기계발서를 주로 번역했는데, 우선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내 취향을 분명히 한다. 책에 대한 평은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일 것이다. 저자는 불안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듯 내용도 뜬 구름 잡는듯한 것이 많다. 번역회사를 통해 일을 잡는 그는 항상 안정되지 못하고 편집자가 자기 맘대로 편집해도 항의하지 못한다. 제목은 즐거움인데 내용은 비참함이다. 언제나 갖은 각도로 노력하는 저자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지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저자후기는 안 나오는 글을 쥐어짜는 듯한 인상이 진하다. 책을 읽고나서 드는 감상은 즐거움, 희망이기보다는 아쉬움, 연민일 것이다.
번역을 앞세우긴 했지만 <번역에 살고 죽고>는 번역에 그렇게 큰 중점을 두지 않는다. 자전적 이야기를 하며 번역이야기를 곁들인다. 더군다나 새내기 번역가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일 알아보시죠?' 그만큼 번역일은 간단히 뛰어들지 못할 만큼 어려운 길이라고 한다. 일본소설 번역가로 이름난 저자가 들려주는, 편하게 읽을만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