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 현토완역, 개정증보판 동양고전국역총서 1
성백효 역주 / 전통문화연구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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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한문학과에서 공부를 했었고 후에 역사를 전공하면서 조선왕조실록 등 한문 원문을 직접 읽으며 공부한 학생으로서 fussball님의 견해에 대해 이견을 제기합니다.

 

fussball님은 한문번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혹시 한문 번역을 직접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예로 드신

"上古의 聖人이 처음 八卦를 그으니 三才의 道가 구비되었고"

는 上古, 聖人, 八卦 등이 너무 쉬워서 한글로 바로 옮겨도 딱히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 원문과 마주하다보면 도저히 한글로 옮기기 애매한, 또한 굳이 한글로 옮기기보다는 한자 단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경우가 수도 없이 생깁니다. 억지로 직역을 하기보다는 원문의 한자 단어를 그대로 보존하고 그것의 의미를 강구하기 위해서 일부로 한자를 살려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실제로 원문 해석을 해보시면 억지로 한글로 바꾸기보다는 토 달아 해석하는 게 이해에 더 쉽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즉 사실 이 책은 한자를 충분히 알고 원문으로 읽으려는 사람을 위한 책이지 단순히 내용을 읽기 위한 사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토를 달아 해석하는 방식은 과거 수백 년간 선조들이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전통이 한학의 학문체계에 이어져 있는 것이지요. 성백효 씨는 한학자입니다. 이쪽 세계 사람들은 당연히 다 이렇게 합니다. 선조들이나 한학자들이 바보라서 이렇게 하고 있었을까요? 해보니까 다 좋고 유용해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어와 언어구조가 비슷한 일본도 이렇게 합니다(일본 한학자들을 말합니다. 일반인은 안 하겠죠 당연히..)

 

제 학문의 깊이는 매우 얕지만 그래도 제가 감히 한문번역에 대해 한 말씀 드리자면 토를 단 후에야 직역을 하고 의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를 달아 읽는 다는 것은 끊어 읽기를 제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뭔 소리냐 싶으실텐데 원래 선조들이, 즉 한학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방식은 다 소리내서 읽기(낭독)이었습니다. 한문 원문을 소리내어 읽을 때 제대로 읽으면 해석도 제대로 되고 제대로 못 끊어 읽으면 해석도 잘 안 됩니다(자꾸 이런 소리 해서 죄송하지만 이것도 직접 해보셔야 압니다..) 토를 두고 읽으면 보다 제대로 정밀하게 끊어 읽기를 할 수 있고 해석도 잘 되게 됩니다. 토도 제대로 못 달고 읽으면 당연히 해석도 산으로 가지요. 그래서 제 생각하기로는 원문->제대로 토 달기(현토)->직역->의역(완전한글번역) 순서를 거쳐야 비로소 좋은 한문 번역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 부분만 원하신다면 바로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면 되지요. 그러나 그럼 좀 아쉽잖아요? 원문도 보고 싶으신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앞 부분의 과정대로 이 책이 쓰여진 것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현토는 이 책의 방식이라기보다 수백 년 간의 전통 한문 독서법(해석법)이지요.

 

마지막으로 조선인이 식민의식, 사대의식이 넘쳐나는 나라라고 비판하시면서 프랑스, 일본 등 몇 가지 예시를 드셨는데 역사 전공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fussball님께서 잘못 생각하신 거라고 겸손히 지적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글쓴이께서 조선 폄하하시는 것 자체가 일제가 그렇게 주입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식민사관입니다. 조선이 사대의식이 넘쳤다면 조선의 왕실이나 정치가 과연 중국 황제나 환관 마음대로 놀아났을까요? 단 한 번도 조선의 왕은 중국에 입김에 영향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세조가 단종 폐위했을 때 중국이 하지 말라고 했나요? 연산군에 대해 중종, 광해군에 대해 인조가 즉위했을 때 중국에서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절대 못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사대에 대해 너무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대주의, 사대주의 하는 그 사대의 본질은 일명 以小事大 以大字小 입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字(사랑할 자)해주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 500년 간 중국에 가장 많이 사신을 보낸 왕이 세종이었습니다. 세종이 사대에 쩔어서 중국에 그렇게 했던 걸까요? 다 바로 以大字小라는 사대의 이익을 노리고 그랬던 것입니다. 전 fussball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조선을 병신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조선은 정말 좋은 나라였고 배울 게 많은 나라입니다. 차라리 현재의 대한민국이 미국에 대해 하는 것이 더 사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익을 명분으로 미국에 대한 '사대'를 정당화하지요. 왜 그런 우리가 조선을 우리 선조를 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다만 이득이 되서 그렇게 했을 뿐인걸요.. 그리고 현재 우리가 영어로 그렇게 돈 쳐바르고 하는 건 괜찮으면서 왜 조상들이 한문을 쓴 건 잘못됐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익을 위해 영어를 한 건 괜찮고 조선 사대부들이 문화적 이익을 위해 한문을 공부한 건 잘못된 겁니까? 조선 사람들이 글만 한문으로 쓴 거지 관동별곡이나 한글 가사도 당연히 있었지요. 당시 중요한 문서들이 다 한문이라 한문으로 바로바로 쓰고 그랬던 것 뿐이지요. 전 진짜 왜 그렇게 현재 한국사람들이 조선을 미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 압니다. 이게 바로 일제 강점기 때의 산물입니다. 식민사관은 아직까지도 우리 일상에 우리 머리속에 있습니다. 정말 슬프고 무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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