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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ㅣ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평점 :
[본 게시글은 창비(@changbi_insta)의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개화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내막을 파헤쳐 보면 거대한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낸 한 여성의 묵직한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조선의 열여덟 가기(歌妓) 계손향과 보빙사절단으로 온 미국인 노월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노월은 두려운 '푸른 눈의 호랑이'였고, 손향 역시 양반들의 유흥을 위해 소비되는 대상화된 존재였습니다. 시대가 그들에게 부여한 위치는 철저히 이방인이자 소외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인종과 계급이라는 당대의 폭력적인 이분법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내 눈은 푸르고 그대의 눈은 검지만 우리는 같은 세계를 봅니다."라는 노월의 이 다정한 고백과, 손향이 서툰 발음으로 건넨 “Happy New Year, Mr. Tiger”라는 인사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로의 결핍을 껴안는 강력한 연대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완벽하지 않은 발음과 우스꽝스러운 말투는 오히려 가장 순도 높은 공감의 매개체가 되어, 만 리 너머 타국에서 온 노월의 외로움을 녹이고 손향의 마음속에 미지의 세계를 향한 씨앗을 심어줍니다. 청춘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두 남녀의 농담 섞인 추파는 매서운 삭풍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게 한 온기였습니다. 편도 기차표를 쥐고 시대의 심연을 향해 기꺼이 걸어 들어간 계손향의 뒷모습은, 오늘날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다정하고도 묵직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