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샘과 함께하는 시간을 걷는 인문학
조지욱 지음 / 사계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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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궁금한 우리가 과거의 길을 만나는 이유

 

한양의 중심이자 사람들에게 시각을 알려주던종로에서 태어난 작가는 길이 말해주고 보여주는 세상을 배우며 살아왔다. 약국이 즐비하게 늘어선 종로 5가에서는 집적이익을, 미로같은 종로 뒷골목길의 삶에서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사회 구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이 미래를 살아갈 세대에게 세상의 시각을 넓히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리의 재미와 의의를 알리고 싶어 지리교사가 된 작가는 교직의 오랜 경험에서 오랜 인류의 역사와 다양한 사회, 문화 속에 생겨났다가 사라진 길에 관한 이야기가 갖는 교육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우리가 매일 걷고 살고 있지만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사는 길은 사람과 사회와 연결하고 새로운 문화를 피어나게 한다. 발전과 상실의 딜레마를 제공하고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결과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 경제와 공존을 담고 있는 수많은 길을 독자에게 나열하면서 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인간이 길을 왜, 그리고 어떻게 냈는지 그리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아본다면 우리는 각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환경 등을 한발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쓴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청소년에게 세상을 보는 현명함을 길러 주고 싶은 교사이자 선배의 위치에서 인문학적 지리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흥미로운 안내문이자 입문서이다.

5장으로 되어 있는 책의 구성이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1장은 하늘, 바다, 땅 속까지 온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길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려준다. 2장과 3장은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해 갈등과 조화로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길의 특성을 보여준다. 4장과 5장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길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어 인간 문명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중 먼저 눈에 띄는 길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길이었다. 1100년 전, 견훤에게 쫓겨 막다른 곳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왕건은 때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가는 모습을 보고 비탈면을 파고 돌을 골라 길을 만들어 도망쳤다. 이때 생겨난토끼비리길은 고려와 후백제의 역사를 바꾸었다.

길을 만드는 것이 나라가 망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믿었던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수탈을 위해 신작로를 만들었다. 그 길을 통해 우리나라의 물자, 사람, 언어, 역사, 문화와 정신마저도 수탈당했던 힘들고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아픈 기억과 달리, 자랑스러운 신라시대 청해진을 중심으로 당나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삼각 무역을 개척하고 지배했던 장보고의 바닷길과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인도를 연결하는 무역의 바닷길을 이으려고 했던 콜럼버스의 용기와 지혜로움이 빛나는 길도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을 만큼 도로가 발달했던 로마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인공포장도로 아피아가도는 서양의 호기심와 성장, 번영을 보여주고, 중국 윈난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미얀마, 베트남, 인도까지 5천킬로미터를 잇는 차마고도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동양의 자연친화적 길이다. 오지였던 티베트의 모퉈현을 중국과 이어준 가룽라 터널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로 인한 변화는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지름길이면서 양방향적이고 개방적인 길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교역을 위한 비단길, 초원길, 바닷길이 교통기관의 발달로 철길, 고속화 도로로 변하고 있다. 좁은 비포장도로였던 미시령길은 4차선 포장도로가 되면서 통행시간을 단축시켜 주었고 속초 앞바다와 울산바위를 잃어버렸다. 원효터널의 건설은 습지와 도롱뇽을 사라지게 하고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용머리 해안 산책길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지질 공원 인증지이지만, 최근 해수면상승의 영향으로 바닷물에 잠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까운 것은 먼 것 보다 강하다. 그러나 정말 길은 꼭 빨라야만 하는 것일까?

 

운하와 다리, 고속도로와 하늘길로 연결되는 빠른 세계는 우리에게 편리함과 풍족함을 누리게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정말 지름길만이 옳은 것일까?’라고 작가는 의문을 던진다. 모든 길이 환경을 파괴하고 전통문화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문명의 빠른 성장 속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작가가 던지고 싶은 화두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답은 책에 나온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과거의 길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전문적인 지리학의 이론이나 학문적 연구를 하고 싶었던 독자에게는 다소 가볍고 단순한 길의 나열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이 아직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치로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어쩌다 생겨났을까?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날마다 눈을 뜨면 길로 나서게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니 말이다. ..
원래부터 있었던 길을 없다. 누군가각 가고 또 그 뒤는 누군가가 이으면 그것이 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곁에는 강길, 산길, 바닷길, 하늘깅에 이르는 수많은 길과 이어진 또 다른 길들이 있다. 기로가 인간은 늘 함께였다.

하나의 사회는 길을 통해 확대되고, 다른 사회로 확산된다. 따라서 길을 내다는 것은 내가 다른사람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간다는 뜻이며, 반대로 다른 사람과 다른 사회가 내게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길은 누군가에세는 기쁨이고 설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슬픔이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또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길을 빠르게 잇는 것만큼 따뜻하게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길은 폭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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