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지음 / 난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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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_감독이 보내온 영화라는 편지(p.46)

_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영화를 찍었다. 8분가량의 단편 영화였고 지역 단편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다. 약 두 달을 함께한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때 감독을 맡았던 친구는 여전히 영화를 찍고 있다. 책을 읽다 그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누군가 찍어온 작품을 아주 깊게 분석한 책을 읽으면 친구의 영화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_이 책은 봉준호의 영화를 단순히 소개하거나 그의 영화적 기법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봉준호의 연출 방식과 촬영 기법, 또 자주 등장하는 배우와 인물들의 특징, 봉준호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아주 세부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나오기도 하고 헤테로토피아,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과 같은 문제가 등장한다.

_가장 먼저 나온 개념은 ‘대타자’이다. 대타자는 ‘법, 윤리, 신처럼 어디서나 함께 있는 타자’다(p.43).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봉준호는 이러한 대타자를 관객으로 둔다. 그렇기에 <기생충>에서 기우의 편지는 아버지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러한 전달은 곧 환상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마음을 교환했다는 환상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비판의 영역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_봉준호의 영화는 ‘이데올로기’를 추격한다. 그렇기에 ‘추격의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현실이거나 현실이 담긴 심연이다.(p.62)’ 일관 되게 비극적인 정서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p.77) 봉준호는 그렇기에 이질적이고 중첩된 장소인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을 빌려온다. <괴물> 속 한강이 그렇고 슈퍼 돼지 옥자가 뛰어다니는 강남 지하철역이 그렇다. 불안을 야기하는 곳, 혹은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지 않는 곳(p.155) 말이다.

_봉준호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분석하며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가져온다. 저자는 ‘그들이 벌인 행위에 비해 인간 자체는 평범하다는 사실(p.93)’과 그것들을 둘러싸는 수많은 무지와 오인에 집중(p.94)한다. 결국 봉준호는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진정한 괴물, 즉 ‘말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맹목성(p.95)’을 지적한다.

_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깊게 탐독하는 일. 그 덕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얕게나마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띠지에도 나와 있고 글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저자의 집요한 추격이 읽는 이를 흥미롭게 만든다.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을 떠올리곤 하는데, 문득 히치콕의 방식과 봉준호의 방식을 비교하는 대목에서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것의 기본 혹은 시작. 물론 처음 시도한 그것이 마냥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일이나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혹은 그 방법을 알 수 없을 때,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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