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 -서평





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

광해군을 읽고…

처음 5권의 책 중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광해군이란 인물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광해군은 폭군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배울 점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광해군이란 사람에 대해 접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목록을 받고 옛날에 신문에서 광해군은 폭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 것이 생각나서 이번 책읽기 활동을 기회삼아 광해군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광해군은 다른 25명의 왕들, 예를 들어 태조 정종 태종과는 달리 연산군과 함께 군으로 끝나는 임금 중 한명이다.
이런 이름에서부터 광해군은 우리에게 문제가 많은 임금으로 비추어 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들의 그러한 선입견을 깨게 해 줄수 있는 책이다.
그런 광해군의 삶을 여러 면에서 객관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왕이 되기 전 세자때의 광해군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1952년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묘사직과 민심 수습을 위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광해군이 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요인들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선조의 왕비인 의인왕후 박씨에게서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 형인 임해군을 제치고 세자가 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배다른 형제에 비해 총명하고 당시 명망 있던 하락이나 이기설들의 가르침과 교육을 받들어 학문에 힘썼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는 광해군이 왕세자가 되기에 정당한 이유가 되었다.

혼란한 시기에 세자가 된 광해군은 아버지인 선조에게 인사권과 상벌권을 위임받아 분조를 이끄는데 힘썼다.
그는 여러 고을을 옮겨 다니며 항전을 독려하고 전쟁을 수행하며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조정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려 민심을 수습하였다.
이러한 모습에서 광해군은 선조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쟁이 기울어갈 무렵 명에서는 광해군의 뛰어남을 견제하여 그와 선조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광해군의 왕세자 책봉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인목대비와 유명경도 광해군의 책봉을 끝까지 반대하였기에 광해군이 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광해군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왕으로서의 광해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로 그는 왕권의 안정을 위해 힘썼던 왕이다.
그는 당파에 휩쓸리지 않고 영의정에 이원익을 명하고 군사 업무에 밝은 이항복 일본 전문가인 이덕형등을 중용하였다.
이부분에서 북인들이 반대가 심하였지만 이들을 신임하며 힘을 키워줬고 적어도 광해군은 국가대사만큼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된다고 생각하여 북인들의 반발을 일축했다.

이러한 인사관리로 광해군은 당파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면서 정국을 안정시켰다.
당파싸움에 의해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이러한 광해군의 인사관리는 높이 평가 받을 만 하다.

둘째로 피폐해진 민생을 재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다.
전란이 끝나고 왕에 오르자 그는 이원익의 건의를 받아 대동법을 시행했다.
대동법은 공물을 현물로 걷는 대신 봄과 가을에 쌀 16말만을 내도록 하고 여타 비용은 모두 없앤다는 제도였다.
비록 이 제도는 상류계층에게는 반발을 많이 받았지만 전란의 참상을 몸소 느낀 광해군은 백성에 대한 구제와 배려 차원에서 이러한 정책을 펼쳤던 것 같다.

또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와 동의보감의 편찬을 예로 들 수 있다.
임진왜란은 물질적으로는 여러 서적의 분실. 농경지와 건물들의 상실을 가져왔지만 정신적인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성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본 사람도 있고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 백성들에게는 생존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해지고 기존의 도덕과 윤리 관습 제도는 걸림돌로만 의식되었다.
또한 많은 서적의 유실로 백성들의 정신적 교감이 없던 때에 흐트러진 민심과 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편찬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충효의식을 내세워 기강이 흐트러진 사회에 충신 효자 열녀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광해군은 선조임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귀양을 간 허준을 불러 동의보감을 편찬토록 하였다.
동의보감은 전란 말에 빈발하는 질병 때문에 의약 전반에 대한 수요는 높아졌지만 그에 대한 공급도 부족하고 비싼 중국산 약재는 구하기도 힘들어 힘들어 하는 백성들을 위해 지은 책이다.
동의보감에서는 토산약재를 이용하여 의료비를 낮추는 얘기도 나와있었다.
광해군은 이 두 권의 책으로 인해 백성들이 보다 좀더 나은 세상에 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셋째로 그의 업적중 가장 크게 평가되는 외교술에 관한 것이다.
그는 명( )청(淸)이 교체되는 시기에 후금에게 유연하게 대처하여 또다른 전쟁을 막는 한편 머지않아 후금이 조선도 쳐들어 올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후금의 정보를 얻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최악의 사태인 군사적 충돌까지 대비하여 군력 증강에 힘을 썼다.
얼마 안있어 후금은 명나라를 공격하였고 명나라는 조선에게 은혜를 갚으란 이유로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조선의 상황이 안좋고 군대의 허약함을 핑계로 하여 출병을 계속 기피하였다.
하지만 명나라 내부에서 조선에 대해 계속 압박을 가해오자 중국어에 능통한 강홍립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군대를 파병했다.
하지만 그는 이길 수 있는 전투에만 나갔고 결국 후금에 항복하여 이번 출병은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고 후금에게 알리고 광해군에게 계속 후금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광해군이 보낸 강홍립의 대처는 명이나 후금 둘 나라 모두 조선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광해군은 이덕형의 건의를 받아들여 일본과 교역을 재개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광해군의 문제점을 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외교에서 보여주었던 냉정한 모습을 내정에는 반영하지 못하였다.
그로인하여 임해군과 영창군.. -서평



..... (중략:첨부파일 클릭 바랍니다)




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_hwp_01_.gif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_hwp_02_.gif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_hwp_03_.gif

제목 : 위인전기 - 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 -서평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3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위인전기 - 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
파일이름 : 광해군을 읽고 광해군을 읽고나서.hwp
키워드 : 위인전기,광해군을읽고광해군을읽고나서,광해군,읽고,광해군,읽고나서



[추천자료]

- 위인전기 - 영조를 읽고나서영조에대해 영조에 대해
- 위인전기 - 백범김구를 읽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거룩한 희생
- 위인전기 - 장영실을 읽고나서 장영실을 읽고
- 위인전기 - 뉴턴을 읽고 뉴턴을 읽고!
- 위인전기 - 도산 안창호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전체선택 장바구니에 담기

전체선택 장바구니에 담기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