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알던 밀실 살인 사건,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의 우타노 쇼고가 아니다. 쇼고의 비상한 트릭도 문장의 결도 그대로인데 스토리에서 묻어나오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음울한 짐승의 환희>에서 작가가 먼저 그 단어들을 언급해주었다. "그로테스크함과 외설스러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대표하는 단어들이라고 한다.

요약하자면, 그로테스크하고 외설스러우면서 비상하고 tech savvy하다. 2019년의 에도가와 란포라고 해야하겠지만 에도가와 란포는 사실 읽어보지 않으니 셜록 홈즈로 바꿔 말해보자. 셜록 홈즈의 바스커빌의 개를 모티프로 했는데 셜록이 유튜브와 AI 스피커를 활용해서 추리를 하는 느낌이 이런걸까.

가벼운 킬링타임 소설이라고 얕보면 안된다. 묵직하면서도 다소 기괴한 감이 있다. 스토킹, 살인, 감금, 반전은 기본인데 읽다보면 무섭게 소름이 끼친다. 불편한 짜릿함 이라고 해야하나. 읽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는데, 다 읽고 나서 '더 없나?'하는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면 이해가 될까. 임신한 여자는 읽지 말았으면 하는, 19세 미만 청소년도 읽으면 안되는 소설이다. 소설을 색상으로 전환한다면, 이 소설은 검붉은 색이다. 아, 근데 이 소설집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현대 추리소설가가 일본의 원조 미스터리의 아버지 격인 추리소설가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이런 콜라보레이션은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들을 콜라보하는 이런 시도가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응원하기 위해서, 독자가 할 일은 읽고 즐기는 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 호크니, 프로이트, 베이컨 그리고 런던의 화가들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세잔, 고흐, 고갱 말고. 조금 더 동시대에 가까운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현대미술의이단자들 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루어진 영국 회화의 흐름을 데이비드 호크니, 루시안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과 같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책의 특징적인 점은, 한 챕터에 화가 하나씩 다루는 백과사전식 서술이 아니라 주요 인물들을 책 전반에 걸쳐 한 편의 스토리로 엮어내었다는 것이다. 각 챕터를 관통하는 주제를 둘러싸고 호크니, 프로이트, 베이컨과 같은 화가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주변인이 되기도 한다. 개별 화가들에 집중하여 그들의 작품 스타일과 대표 작들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되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려내기도 한다. 때문에 464 페이지의 분량을 끊김 없이, 연결된 한 흐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
무척 마음에 들었던 책의 두 번째 특징은 충분한 도록인데, 물론 책에서 언급된 작품들이 모두 실려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하게 다뤄서 '어 이 작품은 좀 궁금하다' 싶은 건 왠만하면 다 그 다음 페이지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실어 연관지은 부분들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문지 에크리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흔한 주제인 "사랑"에 대한 짧은 글들로 구성된 책이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말을 "설렘, 두근거림, 반함' 같은 말로 곧바로 번역하는 사람들을 그녀는 싫어했다. 사랑이 주는 달콤함만을 취한 채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을 사람들로 보였다."
라는 문장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이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 아닐까 추측한다. 작가는 남녀의 달콤한 사랑의 시작만을 다루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부터 사랑의 소멸, 결혼, 그리움 그리고 사람이 아닌 관심사에 대한 사랑까지.

그렇기에 이 책은 당장 누군가와 사랑의 주기 중 어느 한 단계에 걸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니다. 지금 혼자로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앞으로도 괜찮을까, 고민해본 사람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간지럽고 낭만적인 옛이야기라고 느껴지는 사람(어쩌면 사랑이 그들에게 너무 당연해졌기 때문일수도)이 모두 이 글들을 통해 다시 '사랑'을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주 518 항쟁은 대한민국에 있어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비극이며, 무엇보다 당시의 가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고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비극이다. 녹두 서점의 오월은 권력자들을 통해 왜곡되지도, 쓸데없이 각색되지도 않은, 그 항쟁 속에 실재했던 한 가족의 솔직한 고백을 담았다. 518을 다룬 영화도 소설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책은 여느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다.

1. 독립 서점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녹두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평범한 서점 그 이상이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고, 사회적으로 판매 금지가 되어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을 구비해둔 곳이다. 학생들에게 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들불야학이라는 학습 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책을 중심으로 뭉치는 마음은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가.
⠀⠀⠀
2. 여태껏 많이 봐왔던 항쟁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서점에서의, 여성의 항쟁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영화에서 다룬 518은 무장한 군인들과 맨몸으로 부딪친 거리의 시민들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녹두서점의 안주인 정현애가 남편이 먼저 잡혀간 상황에서도 시위 내내 전화를 돌리며 시외의 주요 인물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수시로 일어나는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사람들을 리드하는 모습은 먹먹하면서도 감동이었다.
⠀⠀⠀
3. 지극히 인간적인 용기를 다루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목숨따위 조금도 아깝지 않아 라든가, 너네가 아무리 나를 고문해봤자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거야 와 같은 용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순간 순간 최선을 다했으나 동시에 옆방에서 고문당하는 동료들의 비명에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뜻하는 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으리.
⠀⠀⠀
광주 518의 비극은 날짜 그대로 1980년 5월 18일 단 하루의 비극이 아니었다. 5월 17일 하루 일찍 잡혀들러간 김상윤을 제외한 정현애의 가족들은 5월 27일까지 싸우다가 구속되었다. 영창 안에서의 고문을 견뎌내고, 재판, 선고를 기다리고 마침내 모두 석방이 될 때까지 그들의 투쟁은 이어졌다. 김상윤이 감옥에서 나온 건 1981년 12월의 겨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애서가를 위한 선물 같았다. 에드워드호퍼 의 그림이 책 표지부터 책등, 뒷표지 일부까지 가로지르고, 커버의 종이 질은 맨들맨들하다. 책의 위 아래의 모서리는 둥그렇게 다듬어져 있어 불끈 방 북스탠드만 켜고 졸면서 읽다가 깜박 잠들어도 종이에 손 베일 걱정 없다. 책이 등장하는 17편의 그림을 바탕으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고, 저자는 피츠제럴드, 마담드퐁푸아르, 고흐, 스피노자, 장자, 카사노바, 기형도, 버지니아 울프, 뉴턴, 나혜석, 보들레르 등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그림 속 책의 정체를 사실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추리해 나간다. 보들레르의 시 한편 읽어본 적 없지만 그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궁금한 나같은 사람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애독가가 있고 애서가가 있다. 책을 읽는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책 자체를 애정하고 소장하는 사람들을 애서가, 애서광이라고 부른다. (물론 보통의 애서가는 대부분 애독가이겠지만.) 혹은 혼자남은밤당신곁의책 의 저자 표정훈 평론가가 스스로 일컫는 것처럼 탐서주의자 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바쁜 일상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더라도, 서점에 돌아다니면서 책 표지 구경하는 걸 즐기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알라딘 굿즈와 함께 구매하는 것, 혹은 제목만 쳐다봐도 지성이 차오르는듯한 고전문학들로 거실 책장을 채우는 것 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면 충분히 탐서주의자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을 읽고 책을 보는 걸 좋아하는" 모든 탐서주의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 좋아하여 잔뜩 쌓아놓기는 해도 좀처럼 읽지는 않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조롱 받아야 할까? 아니다. 그런 사람도 책 표지만은 읽지 않겠는가. 표지에 실린 제목과 저자, 출판사 정보만 접하더라도, 표지 디자인과 장정을 감상만 하더라도 그 사람은 충분한 독서인이다.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