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서사를 만드는 일. . . //우먼카인드 8호//
임솔아 작가가 열아홉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숱하게 만났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지만 직함도 없이 그저 이모라고 불리는 여성들과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집(가부장)을 떠나 무모하게 세상에 발을 디뎠던 그 시절, 경희대 앞 호프집의 남몰래 간식을 챙겨주시던 욕쟁이 주방 이모와 봉천동 볼링장에서 여자 몸에 좋다며 미역국에 바지락을 듬뿍 넣어 주셨던 이모, 강남의 커다란 고깃집에서 일할 때, 고된 일을 처음 해서 그런지 밤마다 부었던 다리에 연신 찜질을 해 주셨던, 온종일 주방에서 나보다 더 힘든 설거지를 하던 연변 이모의 가녀린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연락을 먼저 하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귀신같이 읽고서 이모는 내게 말했다. 우리는 연락이 끊긴 적이 없다고.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한 사이라고. 그것은 영원한 거라고 했다. P.29 <열아홉 살 때 나는 다이미라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중에서
가족의 틀을 처음으로 벗어나 독립을 했지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연약했던 나를 엄마 대신 지켜 준 이들은 저 이모들이 아니었을까?
"제가 페미니즘을 알게 된 건 20대였지만, 막상 내가 엄마라는 사람에게 가해 온 억압을 알게 된 건 30대가 되어서였어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서도 엄마에게는 가부장제 안에서의 엄마의 역활,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헌신적인 모성을 기대하고 요구했던 것 같아요. P.41<삶이 계속되는 자리에서> 영화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과는 달리 20대나 30대에는 페미니즘의 '페'자도 모른 채 숨 가쁘게 살다가 뒤늦게 이혼을 하며 가부장을 뚫고 나와 늦은 나이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었다. 작년에 동화를 습작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페미니즘 책들을 탐독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의 끝에 다다를 때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을 아프게 바라 보게 되었다.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기에 나를 그리도 구박하고 차별했던 엄마를 더는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여성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것이 한쪽으로 치우친 언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그들 중에는 안타깝지만, 남성 권력의 가부장적 언어를 지닌 여성도 있었다. 마치 나의 어머니처럼. 그것은 그들이 나쁘거나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길고도 긴 시대에 걸쳐 새겨진 관습과 관념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주홍글씨처럼 남겨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는 전혀 인지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더 힘든 길을 선호했습니다. 산책하러 나가면 모두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늘 곧바로 산을 탔죠."P.159<인도 최초의 여성 수상 인디라 간디>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녀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이 땅에서 여전히 여성 서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누구도 차별받고 소외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익만을 위한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상이 아니라, 성을 떠나 (이 땅의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 뿐 아니라) 인간 모두가 함께 연대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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