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촉각, 그 소외된 감각의 반격
유려한 지음 / 혜화동 / 2019년 12월
평점 :

*촉각, 그 소외된 감각의 반격 | 유려한 지음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시각 예술이라고 과언이 아니다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숱한 실수와 상처를 통해 알게 되면서부터 자연이 주는 시각적 환희를 제외하곤 점점 더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청각에 유난히 예민한 편인데 이십 대 때는 이명으로 고생을 했고(그땐 그것이 이명인지도 모른 채) 특히 기계음에 유난히 예민해서 벽시계의 초침 소리나 폰 진동 소리에도 쉬이 잠들지 못하니 도시의 온갖 소음에 노출된 삶이란 불면증은 옵션일지도 모르겠다.
후각이나 미각이야 나이 들수록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몸에 좋다는 굴이나 추어탕 등의 비린 맛과 나쁜 냄새는 본능적으로 밀어낸다.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사랑하는 대상의 혀끝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담배 냄새나 쉰 술맛을 느낄 수 없었던 기묘한 현상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저자가 바라보고 경험했던 촉각에 대한 사유를 다채롭고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에게 익숙한 시각, 미각, 후각이 아닌 촉각이 실은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며 늘상 만지고 스치고 지나갔으나 무심했던 감각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문득 제대로 된 놀잇감이 없던 꼬꼬마 시절 정수리로 쏟아지는 봄볕을 맞으며 흙밥을 하고 빨간 벽돌을 빻아 풀 김치를 만들던 손끝에서 느껴지던 따사로운 권태가 떠올랐다. 그리고 봉숭아 꽃물들인 작은 손바닥 위로 떨어져 금세 사라져 버렸던 함박눈의 아릿한 감촉...
길을 걷다가 무심코 맞잡은 손에 나던 땀의 야릇한 끈적임과 그 새벽녘 느닷없이 처음 맞닿은 그대의 입술은 젤리나 초코렛을 처음 먹었을 때의 황홀한 달콤함보다 더 짜릿하고 설레였을까? 추운 겨울 뜨거웠던 포옹, 시린 눈물을 닦아주던 손길, 서로의 슬픔을 껴안던 몸과 몸의 온도와 살결의 미세한 떨림....그 모든 감촉들.
촉각이란 감각이 무뎌진 뒤 첫 아이를 안아 젖을 물렸던 날의 생경했던 아릿한 감촉은 눈물이 날 정도로 모든 감각이 곤두서며 생명 에너지를 세차게 일렁이게 했다. 작고 여린 아이의 몸에 난 솜털, 보드라운 엉덩이, 꼼지락거리던 작은 손가락, 발가락이 내 살에 닿았을 때의 감촉이 아이의 팔딱거리던 숨소리와 함께 마치 어제 일처럼 다가온다.
내가 지금 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건 그 아이가 너무 멀리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평상시 품고 살던 아인 아니었지만, 품에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고 손끝 하나 만질 수도 없는 멀고 먼 '물리적 거리'는 슬프기 그지없다.
허나 우리는 왜 서로를 깊이 안을 수 없었던 것일까? 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는 봄날 오후, 가까이 다가선 만큼 멀어져버린 타자와의 아득한 '심리적 거리'는 그저 아프고 아프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거나 더 멀어지거나 하는 순간은 어쩌면 서로의 촉각을 공유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참혹한 코로나 시대라 알흠다운 촉각이 더 많이 소외 당하고 있을 터이니... 참어로 슬프다. ㅠㅠ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