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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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사람은 많이 가지거나 많이 배울수록 자기 성찰은커녕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오만을 부린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소위 지식인이나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제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열등감도 한몫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만의 견고한 지식의 성에서 벽을 높게 세운 채로 보통의 사람들은 물론 이 땅의 모든 소수자들과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지식은 종이 쪼가리보다 못 하다는 건 변함없는 생각이다. 


'무리 짓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 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읽던 책을 미루고 읽기 시작한 책. 출판인이자 작가인 박지원이 묻고 칠십 평생을 고독한 독서인으로 살아 온 박홍규가 답을 하고 그 답을 다시 명쾌하게 박지원이 정리하며 다음 질문을 이어가는 형식이 꽤나 흥미로웠다. 

나도 따라 내내 읽다가 은빛 머리카락 흩날리며 늙는 상상을 하면서 책을 덮을 때까지 몇 날 며칠 숨을 죽이며 가만가만 조용히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방향성을 잃지 않은 질문과 사려 깊은 답 속에 들어 있는 (방대한 독서를 통한 )지식이 자기만의 틀에 갇힌 것이 아니어서 놀라웠다. 


더욱 나를 들뜨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진 것을 내세우지 않고 글과 말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 고독한 독서가이지만 세상의 부조리함과 불의를 모른 척 하지 않으며 가장 열악한 곳에 있는 소수자를 향해 따스한 시선을 가진 사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참혹한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닮고 싶은 든든한 어른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외롭고 쓸쓸한 그대들이여,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를 얻고 싶다면 내내 읽다가 늙어버린 고독한 독서인 박홍규를 만나보시라. 책을 통해 지혜를 건지는 건 오롯이 그대들의 몫이지만,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해 어머니가 땅속 깊이 묻어 둔 김장독처럼 따스하고 든든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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