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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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 김은실엮음



강남 역 사건과 수없이 많은 미투 이후,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가 아는 단어가 되었다. 크리스천 스쿨에 다니는 나의 아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 만큼 대중화가 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너무도 안타깝지만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은 페미니즘이 단순하게 여성들의 권익만을 위한 것이고, 그 중심에는 자신처럼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한남 충으로 만들어 남성 혐오를 부추기는 집단이라는 부정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2년 만에 만난 삼십대 초반의 2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인 어린 후배도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 채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서 보고 느낀 극렬 페미니즘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여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학자 9인의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아홉 명의 여성학자들의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내가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페미니즘이 얼마나 단편적이며 수박 겉핥기식이었는지 여실이 깨닫게 해 주었다. 진도가 팍팍 나가주지 않는 것은 그저 건강이 좋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대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꾸만 멈칫멈칫 머뭇거렸다.  


얼마 전 뮤지컬 배우 강성욱은 대학동기와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업소 아가씨들을 데리고 나와 대학 동기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두 명 중 혼자 남은 여성을 둘이 함께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하자 강성욱은 이 여성이 ‘꽃뱀’이라고 주장했고 ‘누가 너 같은 여자의 말을 믿겠느냐!’등 심한 모욕감을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여 이 여성은 충격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피해자가 사건 뒤에 돈을 뜯어내려 한 정황이 없다고 판단하여 강간치사 혐의로 5년형을 선고했지만, 강성욱은 1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장을 제출하였다고 한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피해자다움은 일반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 따라가서 술을 마셨지? 한 명은 일찍 집에 갔는데 왜 한 명은 거기에 남았지?'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권김현영의 <1장 성폭력 폭로 이후 새로운 문제, 피해자화를 넘어>에서 바로 나의 그 모순된 생각에 쐬기를 박는 문장을 만났다. 


왜 거기에 갔어? 왜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어? 왜 좀 더 노력하지 않았어? 라는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라는 자기 참조적 동일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면 그 손에 돈을 쥐어주거나 그 손을 잡아주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비난이 내포된 말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p053. 


피해자의 편에 서서 그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이면에는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라는 참조적 동일시에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걱정하며 진심인냥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 또한 공감과 연대는 존중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깊이 새기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존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누구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 참혹한 땅에서 나의 권리를 행사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하고 애써야겠다. 그래야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며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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