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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올드보이 : 딜럭스 박스 스틸북 한정판 (3disc) - 에세이북+각본집+스토리보드+미공개 현장스틸 화보집+포스터 화보집+메탈 북마크
박찬욱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플레인아카이브(Plain Archive)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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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블루레이 박스 세트이다. 양덕이 한국인이 되고 싶게끔 만들었으면 말 다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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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부산행
연상호 감독, 김의성 외 출연 / 에프엔씨애드컬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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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을 결산하면서 씨네21에서 <부산행>을 기피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하지만 해외에서 먹히는 장르를 한국적으로 번안하여 이식하는 것 역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씬만 영화라도 좋다.' 장철은 대강 그렇게 얘기했다. '영화답다'는 건 뭘까? 

  한 가지 예는 이렇다. <분노의 주먹>의 한 장면에서 남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카메라는 침대를 훨씬 크게 잡는다. 마틴 스콜세지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과 자고 싶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때 한 가지의 형태의 '영화적임'이 완성된다. 별 다른 부가설명없이 생각을 이미지로 전달한다는 것. 카메라는 표피적으로 사람을 담았을 뿐인데, 사실은 정서를 찍어내고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은 한 컷 만으로도 전달되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좀 더 긴 호흡을 통해 발생한다. <부산행>의 극 초반, 공유는 인간의 이기심을 체화한 캐릭터였다. 개미들의 주식을 휴지조가리로 만들고서라도 투자자들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사람인지라, 마동석은 그의 딸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개미핥기'라며 아버지 공유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이야기도 그의 이기심에 죄를 묻는다. <부산행>의 세계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것은 공유의 이기심이었다. 그 역시 상부의 결정으로 그러한 선택을 내린 것 뿐이겠지만. 그 세계의 개인은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기적 선택'이라는 것에 주식, 회사의 금전적 이익 등이 매개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 세계를 자본주의적 세계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런 공유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험을 다룬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져버리게 되는 동기는 딸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다(사실, 그가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본주의적 체계 내의 지위를 지키려고 했던 동기에도 역시 딸의 행복이 관여했었다). 하지만 좀비들이 없던 세계와는 달리,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계에서의 그는 타인을 조금은 신경쓴다. 딸을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공유는 타인들을 희생시켜가며 자신과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들을 뚫고 딸을 살리는 과정에서 그는 그저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타적인 인간이 된다. 그는 얼이 빠진 채 계단에 웅크리고 있는 고교생을 챙길 줄도 알고, 딸 더러는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노파의 안위를 신경쓸 줄도 알며, 자신을 잡아다가 좀비가 득시글 거리는 칸으로 쳐 넣어버리려고 했던 험상궂은 마동석의 죽음에 '미안해'라고 말하며 슬퍼할 줄도 안다. 물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일정 부분 자신과 딸의 생존률을 높이는 선택이기에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관차 칸의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딸의 목숨을 위해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의미심장하게도 그가 살리는 목숨은 한 여인과 그 뱃속에 있는 새 생명이다). 남의 생명을 극단적으로 희생시켜가며 자신만을 생각하던 모습은 천리마 고속의 상무가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부산행>의 15호칸은 그러한 이기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대가, 그리고 이타심이 충돌하는 장소이다. 공유는 자신의 이기심이 -그 역시 '을'의 입장에서 행사한 선택이었겠지만- 만들어낸 악몽(좀비들) 덕택에 자신과 딸의 목숨을 시험받으면서, 동시에 그의 내면에도 자리잡고 있었을 그러한 이기심이 극단화 된 형태의 인간들, 즉 15호칸의 승객들과도 싸워야 한다. 15호 칸의 진퇴양난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쌓아왔던 내적 서사의 여러 층위들이 복잡성을 이루며 한 데 어우러지는 장소인 동시에, 바로 그 서사가 한국 사회에 대한 촘촘한 비유를 만들어왔단 점에서 한국 사회의 복잡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판의 미로>나 <기묘한 이야기>에서 한 공간이 여러 차원의 시/공간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부산행>의 15호칸도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이중의 복잡성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한국) 상업영화가 그것의 영화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한 방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부산행>이 좋다.


 상품은 한정판에 비해 시나리오 북 등이 없긴 하지만, 나로서는 1disc 가 더 좋았다. 2disc 한 정판은 서플에 있어서 차이가 없는데, 왜 2 disc 로 나누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씬만 영화라도 좋다.' 장철은 대강 그렇게 얘기했다. '영화답다'는 건 뭘까? 

  한 가지 예는 이렇다. <분노의 주먹>의 한 장면에서 남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카메라는 침대를 훨씬 크게 잡는다. 마틴 스콜세지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과 자고 싶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때 한 가지의 형태의 '영화적임'이 완성된다. 별 다른 부가설명없이 생각을 이미지로 전달한다는 것. 카메라는 표피적으로 사람을 담았을 뿐인데, 사실은 정서를 찍어내고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은 한 컷 만으로도 전달되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좀 더 긴 호흡을 통해 발생한다. <부산행>의 극 초반, 공유는 인간의 이기심을 체화한 캐릭터였다. 개미들의 주식을 휴지조가리로 만들고서라도 투자자들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사람인지라, 마동석은 그의 딸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개미핥기'라며 아버지 공유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이야기도 그의 이기심에 죄를 묻는다. <부산행>의 세계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것은 공유의 이기심이었다. 그 역시 상부의 결정으로 그러한 선택을 내린 것 뿐이겠지만. 그 세계의 개인은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기적 선택'이라는 것에 주식, 회사의 금전적 이익 등이 매개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 세계를 자본주의적 세계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런 공유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험을 다룬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져버리게 되는 동기는 딸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다(사실, 그가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본주의적 체계 내의 지위를 지키려고 했던 동기에도 역시 딸의 행복이 관여했었다). 하지만 좀비들이 없던 세계와는 달리,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계에서의 그는 타인을 조금은 신경쓴다. 딸을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공유는 타인들을 희생시켜가며 자신과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들을 뚫고 딸을 살리는 과정에서 그는 그저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타적인 인간이 된다. 그는 얼이 빠진 채 계단에 웅크리고 있는 고교생을 챙길 줄도 알고, 딸 더러는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노파의 안위를 신경쓸 줄도 알며, 자신을 잡아다가 좀비가 득시글 거리는 칸으로 쳐 넣어버리려고 했던 험상궂은 마동석의 죽음에 '미안해'라고 말하며 슬퍼할 줄도 안다. 물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일정 부분 자신과 딸의 생존률을 높이는 선택이기에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관차 칸의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딸의 목숨을 위해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의미심장하게도 그가 살리는 목숨은 한 여인과 그 뱃속에 있는 새 생명이다). 남의 생명을 극단적으로 희생시켜가며 자신만을 생각하던 모습은 천리마 고속의 상무가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부산행>의 15호칸은 그러한 이기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대가, 그리고 이타심이 충돌하는 장소이다. 공유는 자신의 이기심이 -그 역시 '을'의 입장에서 행사한 선택이었겠지만- 만들어낸 악몽(좀비들) 덕택에 자신과 딸의 목숨을 시험받으면서, 동시에 그의 내면에도 자리잡고 있었을 그러한 이기심이 극단화 된 형태의 인간들, 즉 15호칸의 승객들과도 싸워야 한다. 15호 칸의 진퇴양난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쌓아왔던 내적 서사의 여러 층위들이 복잡성을 이루며 한 데 어우러지는 장소인 동시에, 바로 그 서사가 한국 사회에 대한 촘촘한 비유를 만들어왔단 점에서 한국 사회의 복잡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판의 미로>나 <기묘한 이야기>에서 한 공간이 여러 차원의 시/공간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부산행>의 15호칸도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이중의 복잡성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한국) 상업영화가 그것의 영화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한 방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부산행>이 좋다.



출처: http://kimtakgu.tistory.com/328 [a mojo projections]

'한 씬만 영화라도 좋다.' 장철은 대강 그렇게 얘기했다. '영화답다'는 건 뭘까? 

  한 가지 예는 이렇다. <분노의 주먹>의 한 장면에서 남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카메라는 침대를 훨씬 크게 잡는다. 마틴 스콜세지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과 자고 싶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때 한 가지의 형태의 '영화적임'이 완성된다. 별 다른 부가설명없이 생각을 이미지로 전달한다는 것. 카메라는 표피적으로 사람을 담았을 뿐인데, 사실은 정서를 찍어내고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은 한 컷 만으로도 전달되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좀 더 긴 호흡을 통해 발생한다. <부산행>의 극 초반, 공유는 인간의 이기심을 체화한 캐릭터였다. 개미들의 주식을 휴지조가리로 만들고서라도 투자자들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사람인지라, 마동석은 그의 딸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개미핥기'라며 아버지 공유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이야기도 그의 이기심에 죄를 묻는다. <부산행>의 세계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것은 공유의 이기심이었다. 그 역시 상부의 결정으로 그러한 선택을 내린 것 뿐이겠지만. 그 세계의 개인은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기적 선택'이라는 것에 주식, 회사의 금전적 이익 등이 매개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 세계를 자본주의적 세계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런 공유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험을 다룬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져버리게 되는 동기는 딸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다(사실, 그가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본주의적 체계 내의 지위를 지키려고 했던 동기에도 역시 딸의 행복이 관여했었다). 하지만 좀비들이 없던 세계와는 달리,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계에서의 그는 타인을 조금은 신경쓴다. 딸을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공유는 타인들을 희생시켜가며 자신과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들을 뚫고 딸을 살리는 과정에서 그는 그저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타적인 인간이 된다. 그는 얼이 빠진 채 계단에 웅크리고 있는 고교생을 챙길 줄도 알고, 딸 더러는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노파의 안위를 신경쓸 줄도 알며, 자신을 잡아다가 좀비가 득시글 거리는 칸으로 쳐 넣어버리려고 했던 험상궂은 마동석의 죽음에 '미안해'라고 말하며 슬퍼할 줄도 안다. 물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일정 부분 자신과 딸의 생존률을 높이는 선택이기에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관차 칸의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딸의 목숨을 위해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의미심장하게도 그가 살리는 목숨은 한 여인과 그 뱃속에 있는 새 생명이다). 남의 생명을 극단적으로 희생시켜가며 자신만을 생각하던 모습은 천리마 고속의 상무가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부산행>의 15호칸은 그러한 이기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대가, 그리고 이타심이 충돌하는 장소이다. 공유는 자신의 이기심이 -그 역시 '을'의 입장에서 행사한 선택이었겠지만- 만들어낸 악몽(좀비들) 덕택에 자신과 딸의 목숨을 시험받으면서, 동시에 그의 내면에도 자리잡고 있었을 그러한 이기심이 극단화 된 형태의 인간들, 즉 15호칸의 승객들과도 싸워야 한다. 15호 칸의 진퇴양난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쌓아왔던 내적 서사의 여러 층위들이 복잡성을 이루며 한 데 어우러지는 장소인 동시에, 바로 그 서사가 한국 사회에 대한 촘촘한 비유를 만들어왔단 점에서 한국 사회의 복잡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판의 미로>나 <기묘한 이야기>에서 한 공간이 여러 차원의 시/공간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부산행>의 15호칸도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이중의 복잡성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한국) 상업영화가 그것의 영화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한 방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부산행>이 좋다.



출처: http://kimtakgu.tistory.com/328 [a mojo projections]

'한 씬만 영화라도 좋다.' 장철은 대강 그렇게 얘기했다. '영화답다'는 건 뭘까? 

  한 가지 예는 이렇다. <분노의 주먹>의 한 장면에서 남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카메라는 침대를 훨씬 크게 잡는다. 마틴 스콜세지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과 자고 싶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때 한 가지의 형태의 '영화적임'이 완성된다. 별 다른 부가설명없이 생각을 이미지로 전달한다는 것. 카메라는 표피적으로 사람을 담았을 뿐인데, 사실은 정서를 찍어내고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은 한 컷 만으로도 전달되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좀 더 긴 호흡을 통해 발생한다. <부산행>의 극 초반, 공유는 인간의 이기심을 체화한 캐릭터였다. 개미들의 주식을 휴지조가리로 만들고서라도 투자자들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사람인지라, 마동석은 그의 딸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개미핥기'라며 아버지 공유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이야기도 그의 이기심에 죄를 묻는다. <부산행>의 세계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것은 공유의 이기심이었다. 그 역시 상부의 결정으로 그러한 선택을 내린 것 뿐이겠지만. 그 세계의 개인은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기적 선택'이라는 것에 주식, 회사의 금전적 이익 등이 매개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 세계를 자본주의적 세계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런 공유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험을 다룬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져버리게 되는 동기는 딸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다(사실, 그가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본주의적 체계 내의 지위를 지키려고 했던 동기에도 역시 딸의 행복이 관여했었다). 하지만 좀비들이 없던 세계와는 달리,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계에서의 그는 타인을 조금은 신경쓴다. 딸을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공유는 타인들을 희생시켜가며 자신과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들을 뚫고 딸을 살리는 과정에서 그는 그저 딸의 목숨 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타적인 인간이 된다. 그는 얼이 빠진 채 계단에 웅크리고 있는 고교생을 챙길 줄도 알고, 딸 더러는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노파의 안위를 신경쓸 줄도 알며, 자신을 잡아다가 좀비가 득시글 거리는 칸으로 쳐 넣어버리려고 했던 험상궂은 마동석의 죽음에 '미안해'라고 말하며 슬퍼할 줄도 안다. 물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일정 부분 자신과 딸의 생존률을 높이는 선택이기에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관차 칸의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딸의 목숨을 위해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의미심장하게도 그가 살리는 목숨은 한 여인과 그 뱃속에 있는 새 생명이다). 남의 생명을 극단적으로 희생시켜가며 자신만을 생각하던 모습은 천리마 고속의 상무가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부산행>의 15호칸은 그러한 이기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대가, 그리고 이타심이 충돌하는 장소이다. 공유는 자신의 이기심이 -그 역시 '을'의 입장에서 행사한 선택이었겠지만- 만들어낸 악몽(좀비들) 덕택에 자신과 딸의 목숨을 시험받으면서, 동시에 그의 내면에도 자리잡고 있었을 그러한 이기심이 극단화 된 형태의 인간들, 즉 15호칸의 승객들과도 싸워야 한다. 15호 칸의 진퇴양난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쌓아왔던 내적 서사의 여러 층위들이 복잡성을 이루며 한 데 어우러지는 장소인 동시에, 바로 그 서사가 한국 사회에 대한 촘촘한 비유를 만들어왔단 점에서 한국 사회의 복잡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판의 미로>나 <기묘한 이야기>에서 한 공간이 여러 차원의 시/공간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부산행>의 15호칸도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이중의 복잡성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한국) 상업영화가 그것의 영화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한 방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부산행>이 좋다.



출처: http://kimtakgu.tistory.com/328 [a mojo proj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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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론 기파랑 고전 명저 시리즈 1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지음, 김보경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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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에는 ˝만투바의 로도비코 곤자가가 의뢰한 세바스티아노의 그리스 십자가 교회에 대한 계획conception.˝이라는 문장(?)으로 번역한 곳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구글검색을 했더니, `알베르티가 세바스티아노 교회를 그리스 십자가의 형상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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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라 폴리아 2집(1500-1750)
Alia Vox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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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으면 지중해가 펼쳐지면서도, 눈물이 나는 최고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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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 2집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검정치마 (The Black Skirt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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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집보다 훨씬 숙성된, 조금은, 아니 많이 슬픈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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