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 갈 곳 없는 마음의 편지
오지은 지음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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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하나 하나를 읽을 때마다 답장을 하고싶어 마음이 법석이는 책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쌓아온 이 편지 꾸러미를 이렇게 한달음에 읽어버려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하고싶은 말이 많아 멈추지 않고 읽었다. 물론 재미있고 잘 읽혀서 멈출 수 없던 것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지만, 정말로 좋은 작품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하고싶어진다고 느꼈다. 책도 마찬가지.

책장을 덮고나서 '아 재밌었다' 하는 작품도 물론 반갑지만, 그 책을 빌미로 내 이야기를 하고싶어지는 작품은 더 오래 책장에, 그리고 마음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께는 머리 맡에 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한 편씩 꺼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 귀해진 시대에, 누군가 나를 떠올리고 상상하며 차곡 차곡 쌓아둔 이야기를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뻐 마음이 가득차는 듯 했다.

작가님은 자주 '작은 마음'과 '생략되는 시간'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에게 굳이 말하지 않고 어딘가에 전시하지 않는 마음, 결과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별로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간들 같은 것. 삭제되는 것과 남겨지는 것, 흘려보낼 것과 붙잡을 것. 그것들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만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적지근한 마음도 마음이라는 것. 차가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시간도 시간이라는 것. 흐린 눈에 보이는 뿌연 풍경도 풍경이라는 것.'(p.18) 이라고, '그렇다면 괜찮을지도 모른다'(p.19) 고 말해준다.

'잘 정돈된 정원'을 자랑하기보단, '머릿속의 미로'를 꺼내보이며 '헤매이는 사람'을 반가이 맞아주는 이 책을, 나는 반가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저도요', '맞아요!' 하며 맞장구 치느라 바쁜 헤맴러 여기에 있어요⋯

그런 갈 곳없는 작은 마음들을 기꺼이 나누어주며, '당신'이 가진 그런 마음들도 썩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책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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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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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앤일이 작가님 그림보고 혹해서 바로 신청한 <모락모락> 블라인드북.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며 전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나도 읽으면서 다른 분들 후기처럼 <100 인생 그림책> 생각이 났는데 머리카락의 시선이라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모락모락'의 원래의 의미처럼 조금씩 자라고 피어나기도 하고, 털 모에 떨어질 락 이라고 해석한다면 머리카락이 빠져 떨어지기도 하니까⋯ 제목도 너무 잘 지은 것 같은!

그림도 역시 아름다워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읽으면서도, 작가님이 누구일지 너무 궁금한 마음에 절반은 추리하듯 읽었다. 허나 누구신지 전혀 모르겠고, 단지 모발을 염색하고 탈색하고 자르고 관리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니까⋯ 차홍 선생님⋯?! 하고 생각하다 말았는데, 아니 이게 진짜일 줄이야.

작가님을 알게되고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힌트가 조금 조금 보인다. 동그란 얼굴이라는 설명, 짧은 머리 여성의 일러스트. 그런 힌트가 아니더라도 말씀을 세심하고 다정하게 하시기로 유명한 작가님이신 만큼, 책 속 문장 전부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100살까지를 머리카락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많은 감정을 한 발 떨어져서, 하지만 꽤 가까이서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작가님 100살까지 살아보신 분처럼 그렇게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담아내실 수 있나요⋯? 아마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 쏟은 관심과 정성만큼이나, 세심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나누어본 사람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문학동네 덕분에 따뜻하고도 신선한 작품을 만나,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되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다음 나이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궁금해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모락모락블라인드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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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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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끔 미칠 때가 있지>

정지음 작가님은 트위터에서 반성문 짤(?)로 먼저 알게 되었는데 그 만취 반성문이 너무 귀엽고 재밌어 팔로우를 했더니 브런치가 있으시다고. 그래서 구독하고 매일 읽다보니 금세 팬이 되었다.

작가님 글을 읽다보면 (좀 납작한 판단이지만) '이분은 mbti가 분명⋯ n중에서도 극단에 치우친 사람인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좋은 의미로. 작가적인 상상력을 마구 뽐내고 드러낼 수 있는 장르가 아닌데도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아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이런 감탄을 하게 된다. 물론 작가님 본인은 그렇게 이리저리 제어하지 못하게 튀는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하시기도 하셨지만, 내 머리통은 순도 백퍼센트의 쓸모없는 쌉생각과 후회와 걱정들로 가득 차 희뿌연 안개 속 같다면 작가님 머릿속은 총천연색 불꽃이 터지는 밤하늘같지 않을까..?

아무튼 이 책에서는 Adhd와 우울증을 진단받은 작가님께서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나아가 본인과의 관계 속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 관계의 면면이 마치 고군분투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관계에서 조금 더 나아져보고자 본인에게서 문제점을 찾고 정반대로 바꾸어보기도 하고, 상담을 통해 얻은 것들을 관계에 적응시켜보기도 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고. 그 과정들이 길지 않게, 위트있는 언어로 담겨 있어 재밌게 슥 훑어 읽을 수 있었지만, 속에서 벌어지는 고군분투를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으니 지난하고 괴롭고도 외로운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나인게 나를 힘들게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이 처음 보는 표현으로 담겨있어 숨가쁘게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작가님 본인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 본인의 모습일지라도 그게 꽤나 솔직해보이기도, 재밌기도 했고 그 생각의 알고리즘과 표현력이 입만 열면(?), 아니 자판만 뚜드리면(?) 화수분처럼 나오는게 너무 신기해서, 작가님과 친해지고 싶단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 곁에서 지내는 것은 별개의 일일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사람이란건 분명하다. 그런 매력적인 친구의 재잘거림을 슬며시 웃으며 듣는 기분으로 읽기 좋은 글이었다. 내가 싫어질때면, 관계가 잘못되는 것은 모두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가볍게 꺼내들어 읽고나면, 가지런하고 차분히는 아니더라도, 이런 나도 괜찮을 것만 같고 조금 얼렁뚱땅인 채로 잘 살고싶을 것이다.

• 미움을 지속하기 위해, 오로지 미움으로 끝장을 내자고 싸우는 일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타인을 너무 미워하다 보면 제일 싫어지는 것은 나였다. (29p)

• 영원한 혼잣말 같아도 쓴다는 행위는 결국 나와 나의 대화였다. 나의 실수는 너무 많은 남과 나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작 내게 할 말을 잊었다는 것이었다. (101p)

• 잊으려는 노력은 기억하려는 노력보다 힘들었다. 무엇을 먼저 잊어야 할지 분류하는 일 자체가 오히려 각인이 되기도 했다. ⋯ 떠나간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쑥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106p)

* 빅피시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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