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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박서련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서평단은 자주 신청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동네에서 출판하는 책들의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가장 높기때문에,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랑을 주제로 하기에 나도 모르게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박서련작가는 채공주로 익히 들어오던 이름이지만 사극을 싫어하는 이유로 장바구니에서 탈출을 못한지 수년이 지나가던 도중 이런 만남은 또 신기했다.
1. 사랑이 '스펙'이 된 시대의 잔혹한 동화
이혁진의 《누운 배》 이후 약 1년 만에 만난, 별점 4.5점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다. 믿음에 대하여 이후 최고의 연작소설이었다. '사랑하면 능력이 생긴다'는 판타지적 설정(로로마)을 빌려왔지만, 그 속을 채우는 것은 지독하리만치 서늘한 인간 본성에 대한 해부다.
2. 요약
이 소설은 연작 소설 특유의 촘촘한 그물망을 통해 '사랑'의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1~3장: 제국주의의 발명품,사랑
자식의 능력을 스펙으로 여기는 '동탄맘'식 모성애로 시작해(1장), 사랑의 설렘조차 '역하게' 느끼는 20대의 감각을 지나(2장), 이 소설의 백미인 3장에 도달한다.
"사랑은 제국주의의 발명품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굴욕을 견디게 하기 때문에. 노예 되기를 망설이지 않게 하기 때문에."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날카로운 화살이다.
4~7장: 관념 확장 (여기만 없었어도 5점ㅜ)
사랑이 의무가 된 공동체에서 내뱉는 "Everything is gross but you(모든 것이 역겹지만 너만은 예외)"라는 고백은 강요된 관계 속에서 건져 올린 유일한 존엄이다.
이별의 순간, "우리가 변하지 못해서 헤어지는 것"이라는 역설은 관계의 정체에 대한 뼈아픈 통찰을 남긴다.
8장: 다시 돌아온 '점프력'
첫사랑의 그림자에 갇혀 AI와 대화하던 수호가 잃어버렸던 '점프력'을 다시 회복하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반가웠다. 결국 사랑은 낡은 방식(Old-fashioned)일지언정, 우리를 다시 뛰어오르게 만드는 유일한 기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그림자에는 당신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도사려 있으니까. 고백은 배타적인 말이다."
사랑을 달콤한 위로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이 책은 독이다. 하지만 사랑 뒤에 숨은 권력 관계, 이기심, 그리고 그 모든 역겨움을 통과해서라도 '너'를 지목하고야 마는 인간의 지독한 본질을 마주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완벽한 보약이 될 것이다.
나의 별점: ★★★★☆ (4.5/5.0)
사랑이라는 제국에 자발적으로 투항한 노예들의 찬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