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글쓰기, 어떻게 할 것인가 - 사실을 재구성하는 역사 글쓰기의 모든 것
리처드 마리우스 & 멜빈 E. 페이지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리처드 마리우스, 멜빈 E. 페이지 지음, 남경태 옮김, 『역사 글쓰기, 어떻게 할 것인가』, 휴머니스트, 2010. 

학문을 업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두렵고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열에 여덟·아홉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단지 책읽기만 좋아했다면, 굳이 밥벌이로 학문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잘 써야 된다는 강박 아닌 강박 때문에, 진실된 글쓰기보다는 남들한테 잘 보이기 위한 겉치레 글쓰기를 추구하게 된다. 아직 기초도 닦지 않았는데, 고수의 글쓰기를 바라보니, 출발부터 삐끗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얇은 분량에 글쓰기에 대한 핵심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태껏 읽어온 글쓰기 관련 책들은 지루하다 못해, 책읽기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초반부터 수사학 내지 문법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술을 설명하고 있거나, 학술논문 관련 사항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글쓰기 과정을 4단계로 나눠 짤막하게 설명하고 있고, 무엇보다 글쓰기가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간단명료(simple & direct)하게 정리하고 있다. 

왜 역사 글쓰기를 하는가? 화려한 글솜씨를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길게 늘여놓기 위함도 아니다. 저자들의 말처럼, 역사에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서다. 결국 글쓰기는 2장의 제목처럼, 질문하고 추론하고 비판하며 사유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역사에 질문을 던지는 방법과 이를 글쓰기로 표현하기 위한 기술(skill)이다. 

우선 역사에 질문을 던지는 방법에 대해 정리해보자. 저자들은 글쓰기의 기초인 육하원칙(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에 입각해 질문을 던지라고 제시한다. 그리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써보라고 권장한다. 아무렇게나 시를 휘갈겨 쓴다 해도 글을 계속 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p.63). 그 답이 무엇이든 뭔가를 쓰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p.64). 

3장에서 6장은 글쓰기 4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중 메모와 초고 작성을 다룬 4장의 내용이 가장 유익했다. 항상 정보 수집과 책읽기에 지쳐, 정작 메모 내지 글쓰기로 나아가지 못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형식을 택하든 핵심은 탐구를 시작할 때부터 메모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p.146). 또한 저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주장과 함께, 메모의 원칙도 제시한다. 특히 메모할 때, 직접인용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p.148). 직접인용을 자신의 말로 요약하거나 변형시키는 습관을 길러두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p.148).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직접인용을 하다보면, 너무 많은 분량에 지치기도 하고, 나중에 글쓰기를 할 때 상당수의 내용을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만약 자신의 스타일로 정리된 메모들이 있다면, 큰 틀을 바꾸지 않고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들은 한 번에 완성되는 글쓰기란 없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한다. “어떤 저자든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좋은 글을 얻기” 때문에, “끊임없이 훈련하라”고 강조한다(p.157). 계속해서 초고를 쓰고, 읽고, 고치는 과정 속에서 생각이 더욱 발전하고, 글쓰기에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p.157).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들은 일단 글을 쓰라고 강조한다(p.158). 글(초고)이 완성되면, 과제를 완수했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고, 이제부터 차분하게 글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글을 읽고 고치다보면, 훌륭한 수정의 감각도 배양할 수 있다(p.160). 

이 글을 작성하면서, 어제(10.5.) 사망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문이 생각났다. 스티브 잡스는 20대 학생들에게 ‘초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했다. 결국 글쓰기도 ‘초심’이 아닐까. 날고 기는 글쓰기의 고수들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동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글쓰기에 감탄하기보다는, 내가 왜 이 글(논문)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초심’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글쓰기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글쓰기로 조직할 것이냐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을 인용해본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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