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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정치학
아브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S. 허먼 & 데이비드 페터슨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8월
평점 :
<학살의 정치학(The politics of Genocide)>이라고 말할 때, 누구의 정치학이냐라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학살의 정치학>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학살의 정치학>에 대해 다룬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 입장을 중심으로, <학살의 정치학>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건설적인 학살이다. 미국 자신을 위해 저질러진 학살은 건설적인 것이고, 이에 발생하는 희생자들은 우리가 분노하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는 대상이며, 그래서 미국인들은 학살과 무관하게 된다. 이 분류의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건설적인) 이라크 학살이다.
둘째, 자비로운 학살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저지른 학살은 자비로운 학살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60년이상 진행되어온 이스라엘인에 의한 팔레스타인 학살이다.
셋째, 사악한 학살이다. 대규모 잔혹학살이 미국의 적대국에 의해 행해졌다면, 사악한 학살이 된다. 여기서 발생한 희생자는 우기가 주목하고 동정하며 대중적 연대감을 보여줄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된다. 사악한 학살에는 미국의 건설적인 학살과 달리, 국제적 기구들(ex. 국제형사볍정)의 협조가 들어간다.
넷째, 가공의 학살이다. 학살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의심스러운 소수의 죽음을 잔혹한 학살로 포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르비아 군에 의한 코소보 마을 주민 45명의 죽음이다. 이 죽음의 진실보다는 이 죽음을 통해 얻는 이익을 위해, 미국과 나토는 세르비아에 대한 폭격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국제형사법정은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국 국제 현실정치에서 정의와 법은 미국의 입장에 따라 좌지우지될 뿐이다.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은 월러스틴이 말하는 '보편적 보편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학살의 정치학'은 미국적 보편주의일 뿐, 누구한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보편주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인권' 역시 미국의 입장에 따라 정의된다면, 인권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인권을 이용한 정치 모략꾼들의 이면만 보게 될 뿐이다. 인권, 법, 정의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앞세우기 전에,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이용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