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 - 화가 최용건의 진동리 일기
최용건 지음 / 푸른숲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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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이라는 책은 스코트 부부의 <조화로운 삶>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도시의 치열함과 자본중심의 분위기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이 책은 보여준다. 특히 저자가 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책 속의 그림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붓으로 쓱쓱 그린 것 같은 느낌의 그림이 저자의 소박한 글과 함께 어우러져 나는 어느 새 자연 속에 들어가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화가 최용건의 산골 삶은 소탈하고 투박하다. 그리고 간결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양봉, 텃밭의 농사, 그리고 그림. 하지만 이러한 생계 유지가 그들 삶에 욕심과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활동은 자연 속에서 인간을 묻힐 수 있도록 하는 신성한 노동과 여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쫓아가다 보면 저자가 말한 '가난'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게 된다. 화가 최용건의 말처럼 '조금 가난해도 좋다면' 이들처럼 속도에 치이고, 자본에 치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자연 속에 묻혀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가난'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식의 의문이 든다.

요즘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본주의 삶과 도시의 삶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압박감에 대한 탈출 심리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 우리들은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어하지만, 방법과 용기를 내기에는 어려운 현실 때문에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용건의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을 읽고 이들을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실은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더욱 많이 든다. 최용건의 학력, 화가라는 전문적인 직업, 그리고 자식이 없다라는 이런 일련의 환경이 저자를 자연 속으로 인도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많이 든다.

나처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어렵게 느껴지는지. 우선은 '가난'한 삶을 몸으로 체득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후에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현재 나의 삶도 돈이 많이 부족해서 '가난'하지만, 왜 용기가 안생기는지를 좀더 몸으로 체득하게끔 만드는 소중한 책이다. '가난'이라는 의미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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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최영미 지음 / 사회평론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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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영미의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는 최영미의 예전모습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중첩되어 있다. 일기처럼 내밀한 자신의 고백은 아니지만, 최영미의 변화된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눈치챌 수 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 그리고 <길>지나 <한겨례> 등의 매체에 솔직한 글을 썼던 작가. 그리고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미학전공자. 내가 알고 있는 최영미에 대한 전부일 것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력한 언어와 목소리를 너무 좋게 느꼈다. 겉모습과는 달리 강한 언어에서 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글이 나왔던 시점은 대부분 등단 한 후 몇 년 사이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은. 결혼을 한 지금은... 최영미의 예전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라는 것을 감히 말하고 싶다.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쌓여 있다는 것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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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 -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티베트 소년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음, 엄정순 옮김, 오라프 슈베르트 사진 / 샘터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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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넓은 들판에 앉아서 돌을 만지며, 물 흐르는 소리와 가축들의 종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또한 들판에서 자라는 야생식물과 들꽃 냄새를 맡으며 타쉬의 머리 속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노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p.68)

타쉬는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고 시력을 잃은 순진무구한 아이다. 시력을 잃은 것 자신이 잘못을 한 행동때문에 집안을 지키는 귀신이 시력을 앗아갔다고 믿는 순진함까지 가지고 있다. 타쉬는 시력을 잃은 후 영혼의 눈을 가지게 된다.

소리로 가축들을 구분할 수 있고, 발의 촉감으로 주위에 있는 집과 길까지 알 수 있게 된다. 시력을 잃었지만, 그동안 타쉬에게 잠재되어 있던 촉감과 청각으로 사물을 인지할 수 있고,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자연의 소리와 감촉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목동이 된다. 그 마을에는 타쉬처럼 모든 가축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목동일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서양인이 점자와 시각장애인 학교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 2년이 지나고 난 후에 유목민이 그 학교가 있는 마을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타쉬는 따라나선다. 자신도 친구들처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루고 싶어서...

<타쉬>는 티베트의 실재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티베트에는 고원의 따가운 햇살과 깨끗하지 못한(?) 집안의 공기 때문에 시력을 잃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현대에서 보기 어려운 영혼의 눈을 가지고 있다. 관광객이 현대 사회의 휴대폰과 자동차, 비행기를 이야기해도 신기해할 뿐 그들에게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순수함이 있기 때문이다.

타쉬로 대표되는 티베트인의 기질은 <타쉬>에 나오는 티베트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술술 읽히는 한 권의 책이지만 그 속에는 미지의 나라 티베트에 대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지은이인 사브리에 텐베르켄 또한 시각장애인이고, 또한 사진가인 오라프 슈베르트 또한 티베트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은이는 티베트에 시각장애인센터를 설립했고, 티베트 점자를 만든 31살의 여성이라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이들이 만든 순수하고 아름다운 책이 바로 <타쉬>다.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티베트 소년 '타쉬'로 대표되는 자연의 사람들이 만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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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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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손석춘. 많은 이들에게 언론의 폐해성과 한국언론의 후진성을 실감있게 설파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언론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신문과 방송이 아닌 단행본 그것도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서 언론에 대해 다뤘다니... 재미있을까? 읽을만할까? 언론문제로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책을 집어들었다. 소설가 손석춘. 언론인이기에 글을 잘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기사와 소설은 엄연히 장르의 차이가 특별하니까. 스트레이트성 기사와 소설의 창작성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집>은 술술 잘 읽힌다. 그리고 재미도 있다. 그리고 역사성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진선이라는 인텔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북한과 남한의 역사가 보인다. 그만큼 그는 한반도의 삶의 궤적을 모두 맛본 인물이다. 이진선은 또 언론인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언론인으로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기록해나갔다. 자신의 사랑스런 가족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죽었을 때에도 그는 역사의 기록을 멈추지 못했다. 이진선이 쥐고 있는 역사의 펜은 날카롭고, 감성적이며 또한 철저한 이성주의자의 모습이다. 왜곡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며, 감상적인 친절함도 완곡히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는 북한과 남한에 대한 환상을 거둔 실제적인 발가벗긴 모습이 나타난다. 이 소설을 읽고 누가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질 것이며, 남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거둘수 있을까. 우리는 이진선의 삶의 궤적을 따라서 사랑과 역사 그리고 언론인의 사명을 함께 느낀다. 또 하나 책을 조용히 덮을 수는 있지만, 마음속에서 용솟음 치는 개인과 역사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상식적인 시각과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황석영의 소설처럼 역사의 기록이자 우리 시대의 처절한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손석춘.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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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 - 서해컬처북스 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지수희 옮김 / 서해문집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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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는 책의 설명처럼 발자크가 저널리즘에 관한 원망에서 시작한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원망이 클수록 발자크의 눈에 보인 기자나 저널리즘은 난장판과 협잡꾼만이 보일 듯 싶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협잡꾼으로 묘사된 수많은 기자와, 평론가, 비평가 그리고 정치가까지. 우리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들의 추악한 이면을 볼 수 있다는 재미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만하다.

사설을 쓰는 이들을 몇 종류로 나눈 것이나, 저널리즘을 먹고사는 평론가를 몇 가지 종류로 명쾌하게 나열함으로써 독자들은 쉽게 발자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만큼 현재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저널리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책이다. 하지만, 프랑스 저널리즘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꽤 책을 읽어나가기 곤욕스러운 면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비록 각주가 체계적이고 친절하게 달려있지만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데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표면적으로는 현대의 저널리즘에도 맞는 이야기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이 책 속에 나온 많은 저널과 기자 평론가를 알지 못하기에 술술 읽혀나가지 못한다는 점이 이 책의 단점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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