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걸
이정환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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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을 해보자면 사실 반절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차분히 가라앉지 않고 약간 붕떠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독립 출판 에세이를 자주 찾아 읽다 보니 에세이라 함은 무조건 이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 관념이 생겼나 보다. 뭔가 한 장소에 대해 이제 좀 알려주려나 보다 하면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게 나에게는 템포가 좀 빠르게 느껴졌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작가가 이곳에서 진정으로 느낀 건 뭐였을까 하는 미련이 남아 페이지를 거침없이 넘기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이 책으로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을 충족하려고 했던 걸까 코로나로 인해 좌절된 여행들이 떠올라 어딘가 끝맺어지지 않은 작가의 여행 스토리가 방에서 책밖에 읽지 못하는 신세를 더욱 한탄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잠시 독서를 중단하고 밥을 먹으면서 엄마와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에게서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그냥 여행 일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일 수도 있잖아, 꼭 뭔가를 보여줘야 해? 하는 엄마의 말이 머리를 뎅 하고 쳤다. 내가 원하는 내용과 구성이 아니라고 제대로 읽지도 않고 실망부터 하던 모습이 그제서야 보였다. 나의 고집스러운 마음이 독서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일상을 살면서 매순간 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한다고, 좋자고 간 여행에서 굳이 굳이 어렵게 생각하고 강제로 의미를 뽑아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랬다면 오히려 억지스러운 면이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엔 마음을 비우고 독서에 임해보기로 했다.

훗날 크로아티아를 더올린다면 아드리아해나 주황색 지붕이 아닌 아침마다 마셨던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초콜릿이, 한낮의 햇살이 따스하게 드리워진 소파의 포근함이, 상점에서 매일 인사를 나누던 아주머니의 반가운 미소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105쪽

누군가의 등을 빌려야만 겨우 오를 수 있던 그때, 산을 미워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홀로 산 앞에 있자니 왜 그렇게 부모님이 나를 산으로 이끌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온기를 기억했다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인생은 늘 후회와 깨달음의 연속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일 때 다가오는 울림은 길을 걷는 데 평생 동안 지표가 된다. 조금만 더 일찍 그 뜻을 깨달았다면, 부모님과 더 큰 사랑을 나누며 각박했던 내 인생을 좀 더 따뜻하게 채우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유독 비와 함께 그리움이 더해지는 밤이다.

167쪽

나처럼 꼬아서 생각하고,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거 하나 없이 직관적으로,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게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 책의 강점이다. 여행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걸 뚝 끊고,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경관,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 마음 한가운데에 들어찬 사람과 생각을 품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거라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책도 여행도 인생도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다. 책에서 나온 어떤 도시든 아직 가보지 못해서 작가의 스토리가 너무 자세하게 펼쳐졌다면 왠지 가기도 전에 여행을 해버린 것 같아 첫인상의 기회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약간의 아쉬움이 있어야 더 가고싶고, 더 간절해지는 게 있다.

그리고 .. 세상과 가족, 친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애정이 눈에 돋보인다. 여행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로만 마음을 꽉꽉 채우려면 일단 걱정과 고민을 밖으로 잠시 밀어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나의 결핍이나 못난 점을 무조건적으로 극복하고 싶다거나 혹은 아예 나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같은 집착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어딜 가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세상을 대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 굉장히 닮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끝으로 갈수록 작가가 점점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다시 삶으로 복귀할 용기가 차오르는 게 책의 후반부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두고 온 과거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오롯이 여행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행 가고싶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도시들을 보니 언젠가 그곳에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까지 나도 열심히 살고 있어야겠다.‘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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