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고화질세트]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총5권/미완결)
가시와기 하루코 / 문학동네/DCW / 2025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지공무원으로 수급자들에게 설명하고 신청을 수리하는 대응이 만화 내용이다. 애매하게 뭉뚱그리지 않고 좋으면 좋은거지라며 넘어가지 않고 최악을 보여준다. 그다음에 갑자기 현명하게 해결책을 찾는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편협하고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인 보통 사람이 어떻게든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맘에 든다. 그러면서 한 에피소드의 마무리 독백이 독자들을 의식한 사건 의미부여, 설교,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러면서도 있었던 일을 그저 관찰한다는 듯한 건조한 방식이 아니라, 인물의 심정이 느껴지고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는듯이 보여줘서 좋다. 거리두기 하는 식으로 그려졌다면 이 작품의 내용이 이렇게 다가오진 않았을 거다. 독자들에게 답답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최악을 그대로 그려내는 건 용기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의 사건의 마무리도 진행의 박진감이나 인물의 우수함을 감상하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편협하고 감정적인 보통 사람의 노력, 거기다가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용기있는 작품이다.
기합으로 해결! 자신의 결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범위 내에서 스스로의 자질 활용! 이전과는 달라진 나!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그런 작품 아니다. 뭘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전처럼 미숙하고 동요하면서도 소통해보려는 식이다. 친구에게 할 말을 준비해와서 일대일로 자기 심정을 털어놓는게 아닌, 교실에서 껄끄러운 사람에게 애써 웃음지으며 안녕…?이라고 답하는 상황과 비슷한 느낌..(?)그래봤자 썩소다.
주인공 정말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을 모른다. 둔하고 느슨한 성격인데 원칙과 문제해결로 사고방식이 세팅돼있어서 수급자가 비협조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원칙을 되풀이하는 대응밖에 하지 못한다. 숨겨진 사정이나 심리적 장애물, 즉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한다는 발상을 못하는 건 아닌데 ‘모든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을 파악하여 신속히 해결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아서 말하면 다 말해줄 줄 알고 가자면 다 갈 줄 알고 내라면 다 낼 줄 알고 사람들이 다 의욕적일거라고 생각한다. 생활보조자가 느낄 굴욕감, 무력감, 경계심, 그리고 괴로움의 무게를 전혀 모른다. 주인공은 행정공무원이지 심리상담사가 아니라 그걸 해결해줘야하는 건 아니긴 하다. 만화 보면서도 너무 심리상담사스러운 일까지 다 한다;;싶었고. 근데 조금이라도 공감한 다음에 정보전달을 하는 요령이 없어서 도움이 될 정보를 이끌어내지 못한채 원칙을 강요하는 식이 된다. 최악의 상황에선 마치 처형선고를 내리듯이…2권에서 알바 소득 미신고로 전액 반환해야한다는 처형선고를 내린다. 고딩 자녀가 절망감에 거지는 벌어 쓰는것도 죄냐고 그러는데 거기다가 그건 죄가 아니라고, 원칙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자기 잘못이라고 다른 만화가 그러듯이 좀 작위적으로 자기의 분명한 견해를 말하며 가르치는 식으로 생각을 바꾸려하는거…그런거를 안해서 의외였다.(좋게 말하면 소년만화식 용기를 주는 연출) (그리고 주인공 잘못 아니긴 했다. 알바 권유한 바로 다음날 부정수급 문제를 깨달은 거니까. 부정수급 문제되는 알바는 애가 말 안하고 작년부터 했었다. 설명 잘 안한것도 전임자였다.) 왜 이런 말도 못하고 가만있지? 진짜 상대의 상처를 헤아려줄 생각이 없는 건가? 상대의 한쪽으로 쏠린 생각을 지적할 지능도 없는 건가? 근데 이런걸 안해서 더 좋은 작품이다. 훨씬 더 용감한 작품이다. 이런말로 간편하게 해결해버리고 끝내지 않았다. 난 사실 작위적인걸 별로 안좋아해서 상황과 사고 전환에 딱 맞는 정제된 말이 들어가는걸 싫어한다. 그 상황에서 아주 침착하고 노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예쁜 말로 끝나버리는건 깔끔하지만 공허하다. 그래서 좀 날것의 말로 사고 전환이 되는 것까진 ok하는데 여기서도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고 나 혼자 끝없이 막막하더라도 다시 돌아와야하는, 그걸로 그려진게 내겐 잔잔한 놀라움이었다. 이건 그 고딩 긴야 입장에서고 주인공 입장에서도 다른 내가 되지 못하더라도 즉 하던대로라도 다른 이와 엮여 생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 감동이었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싸구려 메시지가 아니다. 마음같은 걸로 뭔가를 해낸 것도 아니다. 중요한건 나는 다른 내가 될 수 없고 하던 나 그대로 최선을 다하려한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온 힘을 다해서 찾으려는 거고. 그 가족은 결국 반환을 받아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멋진 해결책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을 의미부여는 없었다. 알바하는 가게에서 조금 쑥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것 뿐이다. 그래도 이 현실은 멋지다.
어쨌든 공무원은 협조를 해줄수도 있고 안해줄수도 있고 거기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직업이 아니라 무조건 협조를 받아야하는 직업이기에 여주의 태도가 근본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 - 본인의 사정, 나라의 사정, 부서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신청자를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주 맹하고 덜렁거려서 그렇게 안보이지만…원칙주의자다. 정해진 룰을 그대로 따르는 것밖에 모른다. 그런데 룰 외의 재량으로 해야할 일이 많고 뭘해야하는지 범위도 확실하진 않은데 하여튼 좁고…서비스직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도 나도 공무원이나 할까 싶기도 하고 (안웃겨)

리뷰가 너무 안좋아서 안샀었는데 살 걸 그랬다. 이벤트 3천원 날림. 정말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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