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한국인은 특별함을 거부한다. 남들보다 희생적이면서 누구보다 조용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 외적에 맞서는 산성 안은 혼자만 주목받아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원치 않게 영웅으로추대되기라도 할라치면 자신을 뭉툭하게 깎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한국인의 선조가 한반도에 사로잡힌 탓에 얻은 특질을천박한 숭고함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어떤 인간집단인가? 한국인은 숭고한 속물이다. 숭고한 속물은 평시와 전시, 생존의 지옥과 멸망의 그림자 사이에서 태어난 별종이다. 그러나한반도가 한국인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한반도는 민족성의 얼개가 잡힌 틀이지, 민족성 자체는 아니다. 민족성이 형•성되려면 먼저 하나의 민족이 탄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