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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드레스 - 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
알비 삭스 지음, 김신 옮김 / 일월서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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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단과 응징, 청산 뒤에는 어떤 단어가 놓여야 할까?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군사, 자본 독재로 이어진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리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과거사 정리'만큼 우리 국민들이 자신 없어 하는 과제가 또 있을까? 우리와 같이 오랜 '고통의 역사'를 겪어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를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이유다.


 만델라 정권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응보가 아닌 화해, 처벌보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힘썼다. 가장 먼저 테러와 고문, 인권유린으로 뒤덮힌 역사의 진실을 정리하고 바로잡고자 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파격적이었는데, 인종차별정책 하에서 일어났던 잔혹행위의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나서 진실을 밝힐 경우 모든 민, 형사상 책임에서 면제시켜주는 것이다. 이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제1원칙이 된다.


@ 남아공 대법관이었던 알비삭스의 저서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 죄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건 '부정의' 해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일은 범죄자가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효용을 가진다. 법의 심판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만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완전히 밝혀진 고통의 역사는 모든 구성원과 미래 세대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유된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역사가 충분히 밝혀지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회 공동체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한 사회는 단결되고, 구성원은 안정감을 느끼며,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꿀 희망을 갖게 된다.


 더욱이 과거사, 그 중에서도 '고통의 역사'가 지닌 특수한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남아있는 과거사의 기록은 피해자의 입장 혹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 거의 없다. 역사는 가해자 혹은 승리자의 편이다. 오랫동안 감추어지고 왜곡된 '고통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선 가해자들의 협조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면'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유인이다.


 비밀주의와 권위주의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틈바구니 속에 진실을 숨겨왔다. 기록들이 어디에 있는지, 증인들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죽었거나 살아 있어도 증인으로 나서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곤 깊은 정신적 충격과 동물적 불신감으로 분열 증세를 보이는 생존자들의 손상된 기억뿐인 경우가 많다. 

* 진실화해위원회의 '사면 원칙'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설명한 판결문의 일부.


 고통의 역사에서 '진실의 가치'는 일시에 한 장소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기까지의 전과정을 통해 순차적으로 증명된다. 먼저 진실화해위원회에 나선 가해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죄를 완전히 폭로해야만 하며, 그것은 피해자와의 직접 대면을 전제로 한다. 가해자에게 자신의 저지른 죄에 대한 '수치의 처벌'과 '참회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사면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제한적으로 사면을 결정한다. 일괄적으로 모든 가해자를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공정한 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현대사는 고통의 역사와 화해가 가능해진다.


 역사학자 한홍구 씨는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 직후에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적극적인 흐름이 있었다면, '자발적으로' 죄를 고백할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서로 화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해자와 그의 후손들  역시 새로운 역사의 구성원으로 '재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죄값을 묻지 않을 것을 전제로 추진되는 과거사 정리는 피해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위원회의 다른 분과에서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작은 사람들'을 위한 위원회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처벌과 보상보다 '진실을 말할 기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얻는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일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반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위안을 얻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되는데, 그 결과 온 국민들이 고통의 역사를 간접 체험하고, '과거사의 증인'이 된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제 3자, 모든 세대가 과거 고통의 역사에 동참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듯 고통의 역사가 본모습을 드러낸다.


@ 고통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드디어 '고통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가 완성된다. 남아공은 흑인과 백인, 피해자와 가해자, 테러리스트와 반테러리스트드이 역사가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인종과 이념,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입맛에 맞는 역사를 주장할 수 없다. 적어도 하나의 체스판 위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일단 '고통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를 낸 뒤에야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현장에 없었던 다른 세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고통의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이야기할 것이고, 피해자는 고통의 기억에 휩쓸려 객관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직접 대면과 충분한 대화,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는 진실만이 과거사 청산 후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공과 과를 따지고 합리적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물론 사면을 보장하는 방식은 악용되거나 악행에 대한 타협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절차의 대전제가 되는 공통의 가치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고통의 역사를 밝혀야 하는가.의그것이 바로서지 않으면,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맞물린 과거사 정리에 모든 과정이 난관에 부딪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회복적 정의'를 운영 가치로 내세웠다. 그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의 전통적 가치인 '우분투'(공생,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애)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 우분투,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애

 이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위해 과거의 역사를 들추는 게 아니었다. 그 목적은 인종차별주의정책과 같은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 후손들까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남아공의 미래를 원했다. 흑인, 백인, 피해자, 가해자를 구분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 실현'이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화두였다. 최종 목표가 분명하고, 그것이 국민 전체에 확고하게 공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공정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인종차별과 식민지배에 저항해 불가피하게 선택했던 자신들의 테러활동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으며,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한 만델라 대통령의 부인까지도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처벌받았다.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특정 이해 관계에 좌우되지 않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이라면 중간 과정에서 변질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역시 과거사 청산을 위한 크고, 작은 노력을 해왔다. 반민특위를 설치해 과거사의 진실을 조사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통해 과거사와의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과거사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반민특위 투서함


 '개별 인간의 존엄'이 아닌 '특정 집단의 이해 관계'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이 '나치즘'에 대해, 남아공이 '테러리즘'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과거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뽑으라면 '집단의식'이 될 것이다. 연고주의, 지역이기주의, 정경유착 모두 도가 지나쳐 변질되어버린 '집단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사 청산에 있어서도 개인은 없고 개별 집단이 등장한다. 특정 지역 출신인 것이, 특정 단체 활동을 했던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대일로 만나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고, 과거사 기록에 개인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기기 어렵다. 그러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역사적 진실에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인간 보편의 존엄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도덕적 판단에 이중잣대가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바라는 우리 정부가 베트남 여성들에 대해서 먼저 사과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민족, 우리 국민에 갇힌 채로는 우리가 겪은 고통의 역사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이 고통의 역사에 대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부재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흐릿하게 만든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나치게 이기적이 되어도 눈감아 주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소극적이 되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우리에겐 한 집단, 한 계층 전체만큼이나 한 개인의 생명과 가치를 높이 사는 인식이 필요하다. 집단주의에 저항하는 의지가 사회적으로 공유될 때, 진정한 과거사 정리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몇 백명의 사상자가 난 교통사고로 치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을 특정 집단이 겪을 일로 뭉뜨그리기보다 한 분, 한 분 서로 독립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서술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처단, 응징, 청산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생의 싹이 자라날 것이다. 그 싹은 한꺼번에 큰 나무들로 자라나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싹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다른 싹들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균형을 찾으며 커갈 것이다. 과거사 정리에 있어 개개인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의 무게를 평등하게 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작은 것은 더 크게, 큰 것은 더 작게. 모두가 한자리에서 대화할 수있도록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인간 보편의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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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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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데려가 줘요. 데리고 떠나가줘요.


 보바리 부인의 인생은 세 명의 남자로 요약된다. 처녀 시절, 책에서 본 환상을 기대하며 결혼한 남편 샤를르 보바리. 결혼 생활이 따분해진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블랑제 로돌프. 마지막은 파리에서 여자를 대하는 우아한 습관을 익히고 돌아온 마을 청년 레옹이 있었다.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던 19세기 유럽에서, 보들레르의 이 작품은 '풍기 문란의 죄'로 법정에 출두하게 된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보바리 부인을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바친 인물로 기억한다. 하지만 보바리 부인이 진정 사랑을 위해 살았을까? 그리고 사랑을 빼앗겨 자살했을까?


 마담 보바리는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었다. '엠마 루오', '엠마 보바리'가 아닌 그녀의 이름만으로 살고자 했다. 그녀에게 사랑은 목적이 아닌 더 큰 자유를 위한 수단이었다. 수도원 생활에 갇혀 있었던 처녀 시절 엠마는 자신을 낭만 소설 속 세계로 안내해줄 누군가를 원했다. 처음에 그녀는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의사 샤를르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엠마를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 주지 못한다.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더 큰 불안을 주었다. 새롭고 신비로운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 기분. 평생 야망도 매력도 없는 남자와의 삶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그녀는 첫번째 사랑을 통해 자유를 맛보는 것에 실패한다.


 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는 루앙에서 사는 동안 한번도 극장에 가서 파리에서 온 배우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그는 수영도 모르고, 검술도 모르고, 권총도 쏠 줄 몰라서, 어느 날 그녀가 소설을 읽다가 마주친 승마 용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했다. 

 반대로 남자란 모름지기 모르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재주에 능하고 정열의 위력, 세련된 생활, 온갖 신비들로 인도해주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사내는 무엇 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이 태연한 둔감, 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하여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 65 페이지


 엠마는 자신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로돌프에게 끌린다. 남편과의 결혼에서 자유를 얻지 못한 엠마는 어느날 우연히 귀족들의 무도회에 초대된다. 그녀는 후작과 자작 부인들이 누리는 물질적 사치의 쾌락과 습관에서 오는 우아함 같은 것들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화려한 사교계는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녀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새로운 세계였다. 34살의 미남자 로돌프는 그녀를 화려한 세상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뻔뻔하게 정열을 찬양하며, 사슴가죽과 우단 저고리, 흰 털로 짠 바지를 입고 그녀 앞에 나타날 때면 엠마는 그 언젠가 화려한 무도회에서 봤던 사람들의 풍경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었다.



로돌프 블랑제 씨는 서른네 살이었다. 거친 기질에 머리가 좋은 데다가 여자 관계가 많아 그 방면에는 훤했다. 
- 190 페이지

로돌프는 부드러운 가죽장화를 신고 있었다. 저 여자는 분명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으리라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가 커다란 우단 저고리에 흰 털로 짠 바지를 입고 층계참에 나타나자 엠마는 그 풍채에 매혹되었다. 
- 229 페이지


@ 엠마가 발을 들여본 적 없는 세계


 하지만 로돌프는 엠마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주지 못한다. '정부'였던 그녀를 위해 온갖 번거로운 일을 감당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야반도주를 약속한 날 로돌프는 한 장의 편지를 대신 남기고 혼자 마을을 떠난다. 엠마는 또다시 지루한 결혼 생활과 작은 마을의 테두리에 갇히게 된다. 이미 육체적 쾌락과 사치의 허영을 알게된 그녀는 전보다 더 괴로워한다.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부자유의 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던 그녀 앞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열린다. 오래 전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던 청년 레옹의 귀향이다.


 순진한 마을 청년이었던 레옹은 3년 간의 파리 생활로 사교계의 문법에 완전히 적응한 채 돌아왔다. 그는 능숙한 말과 어리숙한 태도로 과거 엠마가 그에게 품었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다.


그의 내성적인 기질도 장난기 많은 친구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많이 닳았다. 시골로 돌아온 그는 파리대로의 아스팔트를 에나멜 구두고 밟아보지 못한 자들을 모두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훈장을 차고 마차를 타고 다니는 명사의 객실에서 레이스로 장식한 파리 여자 앞에 나섰더라면 아마도 그 보잘것없는 서기는 어린아이처럼 쩔쩔맸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루앙의 항구에서 이런 미미한 의사의 부인을 상대하고 있는 그로서는 미리부터 상대를 현혹시킬 자신이 있었으므로 마음이 편안했다. 자신만만하고 못하고는 스스로가 처한 환경 나름인 것이다. 
-336페이지


 이미 환상 속 세계와 화려한 현실의 세상으로 건너 가는데 실패했던 엠마는 그 둘 사이를 배회한다. 과거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관능과 매혹의 기술을 알고 있는 청년 레옹에게 또다시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교묘한 거짓말로 남편을 속이는가 하면, 점점 더 뻔뻔하고 대담해졌다. 그와의 밀회를 위해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는 거짓말을 하고, 계속해서 돈을 꾸어 치장한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마차'를 타지 않고서는 자유의 세계로 건너가는 법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경제적 자유, 사회적 자유, 감정과 정신의 자유 그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옹 역시 엠마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와의 비밀을 들키지 아노기 위해 남편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오히려 결혼 생활에 더 예속된다. 그리고 그간 자유를 쫓아다니며 정신없이 써버린 삼천 프랑의 빚을 갚아야 할 때도 코앞에 다가온다. 남편과의 관계, 정부와의 비밀, 경제적 여건 어느 것 하나 감당하지 못하게 된 엠마는 일이 왜 이렇게까지 꼬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단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끊임없이 쫓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고, 그녀가 지불하기에 지나치게 값비싼 것이었다. 결국 엠마는 자신을 버린 로돌프에게까지 돈을 꾸러가지만 거절당한다. 그녀는 그토록 끔찍한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사랑의 실패가 아닌 돈 문제였다. 이제 막 일자리를 구한 애인 레옹 역시 의지할 곳이 못 되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엠마는 찬장에 둔 쥐약을 찾는다. 비소를 삼킨 그녀는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도 남편에게 '아무도 책망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때 갑자기 보도 위에서 무거운 나막신 소리가 지팡이를 끄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솟아올랐다. 그 쉰 목소리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화창한 날의 후끈한 열기에 못 이겨

젊은 아가씨는 사랑을 꿈꾼다네.


엠마는 감전된 시체처럼 벌떡 일어났다.


낫으로 추수한 이삭들을

부지런히 거두어 모으려고

이삭들 흩어진 밭이랑으로

나의 나네트는 허리 구부리고 가네. .


[장님이다!] 하고 그녀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엠마는 웃기 시작했다. 거지의 추악한 얼굴이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영원한 암흑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보이는 듯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미쳐 날뛰는 절망적인 웃음소리였다.


그날은 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

짧은 치마가 날려서 들춰졌다네!


한바탕 경련과 함께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졌다. 모두가 그녀 곁으로 갔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 470페이지




 젊은 아가씨는 평생 자유를 꿈꾸었다. 그것은 새로운 매혹의 세계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뭇 남성과의 사랑은 그것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과 수단이었다. 여주인공은 낭만 소설과 결혼 생활에 갇혀있기보다 자기가 본 적 없는 세상으로 건너가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녀는 장님과 같았다. 자신을 향해 잠시 불었다 지나가버릴 바람에 올라타보려 했지만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 바람은 엠마 그녀의 치마를 걷어올릴 만큼만 거셌던 것이다.


 19세기 유럽에 보바리 부인이 있었다면, 20세기 미국엔 스칼렛 오하라가 있었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동명의 영화로 알려진 이 여주인공의 인생 역시 몇 명의 남자로 요약된다. 첫사랑 애슐리,  그에게 거절당한 홧김에 결혼식을 올린 찰스, 그리고 농장에 매겨진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재혼한 사업가 프랭크, 마지막으로 그녀의 허영까지 사랑했던 남자 레트. 스칼렛 오하라의 연애사는 남북전쟁으로 소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흔들린다.


@ 스칼렛은 자신이 직접 마차를 몰기도 했다


 스칼렛 오하라는 자유를 만끽하기 바라는자신의 본성에 충실했다. 위기가 닥치자 직접 마차를 몰아 황무지를 건너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 돈이 허락하는 안정되고 사치스러운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한때 첫사랑의 환상을 쫓기 위해 내키는대로 결혼을 결정하는가 하면, 전쟁으로 황폐해진 집을 일으키기 위한 방편으로 돈 많은 사업가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열매를 맺지 못한 감정으로부터의 자유, 현실의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사랑할 대상을 마음대로 골랐다. 스칼렛이 엠마와 다른 점은 자신의 욕망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바라는가를 충분히 이해했으며, 그것을 스스로 충족시킬 방법을 갖고 있었다는 데 있다. 스칼렛은 전쟁의 혼란기에 직접 사업장을 경영해 돈을 벌기도 하고, 재혼을 거듭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당당해질 줄도 알았다.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레트임을 그가 떠나간 뒤에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그를 되찾을 방법을 고민한다. 자신의 손으로 되살린 고향의 땅 타라로 돌아가서. 그렇게 끝까지 자유를 살아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난 결코 지지 않는다. 이 일에 지지 않고 살거야. 절대 배고프지 않을거야. 
나도, 내 가족도 거짓말, 도둑질, 사기, 살인을 해서라도. 하나님이 증인이야. 
다신 굶주리지 않을꺼야.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바리 부인, 엠마의 욕망 역시 무한한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남자의 사랑을 온전히 받는 것으로 채워질 수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자신만을 바라보는 남편 샤를르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누군가를 원했다. 그 새로운 세계란 처녀시절에는 수녀원에서 몰래 읽은 연애 소설 속 환상이었다. 결혼 후 한때는 정숙하고 자비로우며 신앙심이 깊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우연한 사건을 통해 현실속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모습을 바꾸었다가 한때는 육체적 정신적 쾌락 자체가 되기도 했다.


 엠마의 자유에 대한 욕망은 달리 배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이란 남편이 가져다 주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자유가 아니면 '정부'가 내어주는 몇 가지 종류의 쾌락이 전부였다. 엠마는 스칼렛과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의 외연을 확장하고 그것에 대한 욕망을 채울 방법에 대해선 무지했다. 남편 몰래 빚을 지거나, 정부에게 매달려 사랑 고백을 구걸할 줄밖에 몰랐다. 자유를 향한 그녀의 갈망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 끝을 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난 자식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떤 남자에 의해 자유를 의탁받아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을 원했다. 언젠가 야망을 가진 재능있는 남자로 성장해 자신을 또 어딘가로 데려가줄 아들을 필요로 했다. 그녀는 사랑에 실패했을 때 죽음을 결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빚 때문에 자신이 누려왔던 모든 자유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망설임 없이 독배를 마신다. 마담 보바리는 사랑보다 자유에 목말랐던 인간이다. 플로베르가 '보바리는 나 자신이다' 했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마담 보바리는 자유에 목마른 모든 인간의 상징이었다.


나를 데려가 줘요. 데리고 떠나가줘요.


@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가질 수 없었던 엠마




이미지 참조: http://blog.naver.com/marivegauch/60184243553


책 본문: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스, 김화영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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