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우리 시대의 고전 15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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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0,18 :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의 제목은 성경에서 빌려온 것이다.

제목에 걸맞게도 이 책은 기독교 옹호론으로 가득 찬 도서이다.

그래서인지 블로그들을 살펴보니 이 책을 주로 언급한 사람은 기독교인들이다.

아쉽게도 난 기독교인이 아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가르침은 부처의 가르침에 가깝지만

오해의 소지를 지우기 위해 몇 가지 말하겠다.

나는 불교계에서 범람하는 근거 없이 기적을 강조하는 호교론적 종교서와

현대 물리학등과 같은 과학적 지식으로 불교의 사상을 과학적으로 보이게

하는 책들 따위엔 반감을 가지고 있다.


제발 종교는 종교로 놓아두면 안되겠냐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란 것이 손댈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거나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쓸데없이 인문지식과 과학이론을 아전인수식으로 끌어와

불상에 번쩍거리는 개금을 하듯, 그렇게 순진한 일반독자들에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종교의 모습으로 호도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책의 평가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인류학적 측면에서 쓰였다는 뉘앙스를 취한

즉, 인문도서의 탈을 쓴 기독교에 대한 신앙고백서이다. 게다가 철저히 오만하다.


그는 신화와 성경을 구분한다.

신화는 거짓이고, 사탄이고, 모방경쟁관계가 불러온 희생제의로 정화된 일종의 사기이고

성경은 참되고 신의 말씀이고 모방경쟁관계를 해소하면서 신화의 거짓 정체를 폭로 하는  

기준이 되는 텍스트란 주장이 주야장천 이루어진다.

만약 그가 목사이거나 신부라면 나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거려 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모방이론과 희생양제의라는 문학적, 인류학적 용어를 생산해 낸 그가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성실성을 저버리고 치매에 걸린 영감마냥

내뱉는 발설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가 끊임없이 성경의 구절과 비유하는 신화들의 태생은 그리스에서 온 것이고

(대체 이집트나 동양의 신화는 왜 비유의 대상이 안 될까? 공부를 하지 않아서일까,

세상이 헬레니즘 아니면 헤브라이즘, 딱 두 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논거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일까.  

전자라면 학자적 불성실이요, 두 번째라면 서구 백인의 제국주의적 오만이오,  

마지막이라면 학자적 양심에 어긋나는 셈이다)

그가 아주 적절하다는 듯 비유하며 신화와 성경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예로 삼은  

그리스의 오이디프스 신화와 성경의 요셉의 일화는 눈 있는 사람이라면  

"왜 하필 하고많은 신화 중에 저 둘을?" 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든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들만 빌려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모든 저자들의  

속성임을 감안하더라도, 르네 지라르는 이 책 내내 그 한도를 벗어난 인용을 구사한다.

심지어 복음서에 쓰여진 "헤로더와 빌라도는 (예수의 죽음으로) 그날 친구가 되었다."라는

누가 복음서의 구절마저 스스로 배신하며 해석하는 무모함.

저자에 의하면 이 부분은 성경의 신화적 측면을 밝혀주고 암시하고 있지만,

성경은 원래 고결하고 명민한 저술자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그 오해의 소지를 성경의 저술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경은 거짓 신화 따위와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감 있게 집어넣었다는 부분을 읽으면

아무리 명망을 쌓은 대학자라도 이런 식의 궤변을 펼칠 수 있는가 난감할 뿐이다.


대체 그의 확고한 기반으로 보이는 성경무오류에서 근거해서 밝힐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이미 정답은 정해졌고, 그것을 기준으로 이교도들의 신화와 종교는  

하나씩 제거해나가기만 하면 될 뿐, 어떤 심오한 고민과 번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내가 성서고고학을 고고학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그들은 이미 성경이 옳다는 전제하에

모든 발굴을 시작하기 때문에 항상 오류와 거짓을 남발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은 <창조신학회>의 얼빠진 과학자들과 다를 바 없다.

애석하게도 르네 지라르는 그간에 보여준 석학으로서의 명민함을  

이 책 한권으로 먹칠을 해버린다


만약 그리스도교의 우위를, 십자가의 승리를, 모든 이교도의 신화와 잡설들에 관한

성경의 정복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읽기 바란다.

이 책은 당신들의 저급한 우월주의에는 큰 만족을 줄 테지만,

당신의 거의 없다시피 한 지성의 샘물은 싸그리 말려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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