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홀리야 > 경계에 서서 살아가는 법


인문학 강의
 

그런 적이 있었다.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은 지금 굶주리고 헐벗어 가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끝없이 계속되는 소비를 해도 될까라며 고민했던 때가. 하지만 죄책감과 별개로 내 일상은 돌아갔고 그 일상의 무자비함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했다. 그걸 끊을 용기도 없으면서. 최근까지, 나는 그 짐을 내 어깨 위에서 내려 놓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알라딘에서 여행인문학 강의 지원이 떴었다. 그리고 난 임영신 선생님의 강의를 보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었다. 임영신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로 결심한 것은 그녀가 쓴 글 때문이었다. '평화는 나의 여행'을 읽으면서 이라크 전쟁 후 다른 곳은 폭격으로 인해 상처투성이인데 석유에 관한 건물은 하얗고 깨끗했다고 말한 부분이 아직도 내 머리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선배로써 그리고 비슷한 길을 소망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나에게, 그녀의 강의는 내 삶에서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서 자그마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거리의 차이(서울로부터 백 리란 거리는 괜히 있는게 아니니까..)와 갑자기 시작한 감기때문에 갈까말까 고민을 했던 그녀의 강의를 이 때 아니면 언제갈까, 혹은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하겠지 싶어서 아주 짧은 하루 동안의 고민을 마치고 결국 가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다. 

약도를 안 뽑아서 헤매다가 동네 주민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민중의 집' 2층. 아직 강의가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열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맨 앞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강의를 기다렸다. 차분한 임영신 선생님의 목소리로 시작한 강의의 주제는 'Between here and there'. 처음에는 첫 여행이었던 일본 여행을 풀어내셨고, 그 후로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잃어버린 이야기도 하셨다. 그리고 곧 최근에 다녀온 미국 이야기를 하셨다.  

Between here and there,  

미국 필라델피아에 서 있으면서도 바그다드를 떠오르게 되고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이라크의 티그리스 강을 생각하게 되고.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그 기억은 종이접기를 할 때처럼 한 점으로 겹쳐져서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관통점에서는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차올라서 폭격 전야의 그 순수하고 놓아주기 싫어했던 이라크 아이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차마 어떤 말을 해야 될 지 몰라서 망설이는 이에게 '기억할게'라고 말하던 아이들을 떠올리는 그녀의 눈물에서 나도 모르게 전이된 감정으로 눈물 한 방울 뚝뚝. 

하지만 그녀의 강의 말미에도 말한 것처럼 함께 우는 여행보다 희망을 발견하는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언젠가 타고 싶은 피스보트는 평화와 비평화의 간극에서 고통받는 그녀에게 평화의 일상을 만드는 게 또 다른 평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고 한다. 또한 뉴욕 소호에 위치한 Housing works 라는 중고책카페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혼자 우는 것보다는 모두 같이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최근 다녀온 펜드릴의 이야기와 Eco map의 이야기 또한 우리가 조금은 덜 위험하지만 많은 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도움이고 나눔이다. Beyond the maps, into the future의 말처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방향으로 여행이 나아가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의의 마무리는 경계에 선 자의 고통과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사회의 변화였다. 경계에 선 자는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소속감 불명의 괴로운 처지에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쪽과 저 쪽 어디에서든 상대를 끊임없이 생각해 내게 하는 역할이 될 수 밖에 없다. 여행자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강의처럼 여행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감수성으로 인해 불합리한 점을 잘 잡아내기에.

이렇게 강의는 끝나고 나의 가슴에는 푸른 별빛 바다를 꿈꾸게 되었다. 이제껏 나는 아직 익숙한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지 나만의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강의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나만의 지도를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강연 후 뒷풀이도 있었지만 내일 아침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서둘러 진주로 내려가야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고,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니까, 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았다. 또, 많은 것을 배워가니까. 그게 큰 기쁨이었으니까 약간의 안타까움은 지금은 고이 접고, 다음을 위해 웃기로 했다.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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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홀리야 > 살면서 쌓아온 성을 벗어난다는 것

 알라딘에서 당첨 메일이 왔을 때 나는 길 위에 있었다. 전국 기차여행 마지막 날이었는데 '나 누구게? 얼른 확인해봐' 라는 문자음이 울리더니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때부터 1번과 3번 중 고르다가 1번을 찍으면 3번이 답이 되고 어디 이벤트에 응모해도 지지리도 뽑히지 않았던 그런 내가(참고로 여행인문학스터디 '김남희 씨' 편에도 응모했는데 떨어졌었다.)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당첨되다니!!!!  여행 중이라 메일을 확인할 수 없었고, 여행을 마치고 메일을 확인하자, 맙소사! 진짜다! 

 그렇게 나의 전국 기차여행은 저자와의 대화라는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21일 당일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가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상암 누리꿈 스퀘어 비지니스 타워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 벌써 시작했으면 어떡하지?'(어, 근데 출석체크 안 하나?)  

다행히 나 같은 사람들을 배려(?)해주시느라 이 행사는 5분정도 늦게 시작되었고 나는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김남희 선생님의 실물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김남희 선생님이 맨 처음 여행이란 무엇이라 물으셨을 때 나는 물질에 현혹된 것도 있지만 행사 자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손을 번쩍 들어서 '여행이란 일상' 이라는 말을 했었다. 아, 어찌나 떨리던지... 마치 대선배 앞에 선 까마득한 꼬마후배의 느낌이 되어 덜덜덜 떨면서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여행이란 일상이라고 말을 했지만 김남희 선생님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행이란 살면서 쌓아온 성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여행을 다니면서 나 자신에 관계된 것을 모두 끊고 나를 발견하라는 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법에는 첫째, 연애가 있고 둘째로 여행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은 자신을 만나고, 타인을 만나고, 그리고 자연을 만난다고. 

그 후로도 선생님이 7년동안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을 말씀해주셨는데 세 번째로 말씀하신 '현재의 긍정' 이 기억에 남는다. Carpe Diem,즉 현재를 즐겨라는 선생님이 사인에도 쓰신 구절이었는데 긍정의 힘을 배운 것 중에 제일 큰 의미로 다가온 것 같다. 사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꿈을 꾸고 망상을 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여행을 통하여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건 나도 이미 많이 느낀 터라 시험치기 위해 수험생들이 책상 앞에 붙여놓는 그 'Carpe Diem'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다음으로 그녀의 여행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정리한 좋은 여행의 정의는 6가지였는데 그 중에 익숙한 것을 포기하라라고 말하는 '공정여행'의 이야기는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와 같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익숙한 것을 포기한다면 더 많은 길이 열리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이마트에 가는 대신에 시골장터에서 물건을 사고 거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여행지가 살포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건 '현명하게 돈 쓰는 법'과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서만 가능한 일을 하라!' 라는 말에는 거기가 아니라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스타벅스'말고 다른 여행을 찾아라는 뜻 아닐까. 

김남희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졌다.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세계 일주를 떠나기 위해 아내를 설득하는 방법을 여쭈어보신 내 뒤에 앉으셨던 남성분이라든가 올레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여성분. 좋은 길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 남성분도 있으셨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세'를 여쭤보신 분도 있으셨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앞뒤 추려내면 이것이었다. 

'여행하기 전에는 어떤 생각을 하세요?' 

나도 여행을 미치도록 가고 싶어도 여행 가기 전에는 진짜 가기 싫어죽겠고 내가 왜 이 짓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왠지 7년동안 여행을 한 그녀라면 뭔가 다른 대답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책에서 자신이 소심하고 까탈스럽다고 과감히 고백하는 그녀니깐 이와 비슷한 대답을 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했던 것도 반쯤은 있었는데 역시나, 떠나기 전엔 내가 왜 이 짓을 해야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안락함을 포기하게 되고 여행이 끄는 대로 끌려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랬다. 비단 여행 뿐만 아니라 무언가 일을 할 때 항상 나는 그 전에 고민했다. '아, 귀찮아.' '꼭 가야 될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웠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엔 여행은 아니지만 분명 내가 기대했던 일이었고 바랬던 일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출발할 때 '아, 진주에서 서울까지면 진짜 먼데 꼭 가야 될까?' '나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은데 안 가면 안 될까?' 이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안락함을 포기하고 나섰던 길에서 나는 '저자와의 대화'라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이 시간은 나에게 크나큰 상상력과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존경하고 있었고 한 번쯤 꼭 뵙고 싶었던 분을 이렇게 바로 만나게 된 일은 어떤 몸의 고달픔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었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간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오늘도 나는 꿈이라는 별을 먹고 한 뼘 한 뼘 성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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