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아이, 봇 허블어린이 1
윤해연 지음, 이로우 그림 / 허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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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펼쳐 본 허블 어린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어린이를 위한 책답게 큼직한 글씨와 색채가 선명한 삽화가 눈에 띄었다. 7p에는 이 이야기의 세계관이 짤막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글씨체는 성인이 읽기에도 가독성이 떨어지고 내용은 마치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요약한 것처럼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어 SF 장르가 낯선 아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반면 이야기는 평이하고 단조롭게 진행된다. '나이스'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확장하기 위해 떠나온 여행에서 '피스'를 만나 동행한다. 둘은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전시관에서 '드림'을 만나고, 여기에 전쟁 로봇 컴뱃의 공격을 따돌리려 전시관에 들어온 '팬스'가 합류한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그러던 중 팬스는 자신이 사실 '빨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 로봇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네 로봇은 지구에 남은 마지막 생명체인 빨간 아이를 찾아나선다.

<빨간 아이, 봇>은 아동청소년을 위한 책인 만큼 세계에 대한 탐구보단 '나'라는 존재의 탐구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읽는 내내 그런 메시지가 두드러지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스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밝혀지는 장면은 임팩트가 없고, 모험을 함께한 드림과 팬스는 나이스, 피스와 너무 허무하게 헤어지고 만다. 인류가 사라진 땅에서 새싹을 발견하는 장면은 클리셰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뻔했다.

'엄마'나 '자궁' 등의 단어는 유독 이질적이었다. 아무리 동화라지만, 허블이라는 출판사의 정체성은 SF에 있지 않은가. 기성 소설에서는 끊임없이 가족의 개념과 모성신화의 해체를 시도하는데, 로봇을만든 창조주가 곧 자궁에 아이를 품은 엄마라는 식의 동일시는 너무나 고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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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를 주세요 큐큐퀴어단편선 4
황정은 외 지음 / 큐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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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너머의 이야기까지 펼쳐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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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지음 / 허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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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내려온다≫에는 <마지막 로그>를 포함하여 총 일곱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로그>는 안락사가 보편화된 가까운 미래, '온전한 나'로서 죽기 위해 안락사 시설인 '실버라이닝'을 찾은 주인공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단어가 내려온다>와 <분향>, <미지의 우주>는 화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중 표제작인 <단어가 내려온다>는 만 15세 즈음의 모든 인간이 자기만의 단어를 받게 되며, 아시아권에서는 공자의 용어를 따서 이를 '지학'이라고 부른다는 세계관을 가진다.
자신에게 단어가 내려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은 화성으로 이주하기 위해 거쳐가는 검역소에서 '나는 나중에 그에게 말할 것이다'라는 의미의 이누이트어를 가진 소년과 만나게 되고, 열여섯 번째 생일을 3일 앞둔 어느날 단어를 받게 된다.

<분향>은 화성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화성에서의 첫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남은 가족들과 화상통화로 차례를 지내는 이야기이다.
화성으로의 이주라니 까마득하기도 하고, 거기까지 가서도 차례를 지내야 한다니 갑갑하게 느껴지는 한편으로는,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하고 싶은 존재들에 대한 애틋함 또한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날 밤 숙소에서 너는 말했다. 까마득히 먼 곳의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런 장관을 만들어내는데 너와 내가 그 안에서 함께였다니.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을 기적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분향>, 111p


<미지의 우주>는 화성의 콘텐츠 유통 기업 '레드플래닛'의 사용자 분석팀 팀장인 '미지'가 지구 연수 대상자로 선발되면서 시작된다. 미지를 중심으로 이주와 개척이라는 꿈 앞에서 여성, 그리고 비혼모가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해 풀어내는 소설이다.
배경이 화성이라는 점은 같지만, 지구에서 화성으로 떠나는 <단어가 내려온다>나 <분향>과는 달리 <미지의 우주>는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행성사파리>는 쌍둥이지구에 가기 위해 우주여행을 떠나는 '미아'의 이야기이다.
쌍둥이지구는 크기와 질량부터 기후와 생물까지 모든 게 우리 지구와 쌍둥이처럼 똑닮은 행성이다. 다만 우리 지구보다 50만 년 정도 늦게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기에, 지구인들은 마치 지구의 과거를 구경하는 마음으로 쌍둥이지구를 여행한다.

엄마, 아빠. 저 지금 쌍둥이지구로 떠나요. 혹시 모바일 가정통신문에서 수학여행 일정 업데이트 안 해준다고 학교에 연락해 보고는 걱정하실까 봐 미리 알려요. 걱정 마세요, 저 이제 다 컸대요! 사랑해요! ♡♡♡
<행성사파리>, 164-165p

미아는 성장이 끝났다는 의사의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성장판이 닫힌 사람만 우주여행 티켓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공인인증생체정보를 도용해서 수학여행 불참 사유서를 내는(수학여행이라고 속이고 엄마 아빠 몰래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깜찍한 아이. 과연 미아가 혼자서 머나먼 여행길을 떠난 이유는 뭘까? 쌍둥이지구에서 미아는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게 될까?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은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VR 파일을 관리하고 우주의 풍경을 메일로 전송하는 업무를 맡은 인공지능 永遠의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의 독백으로 전개되는데, 그저 자신의 일을 담담하게 해낼 뿐인 영원의 독백이 참 신선하면서도 잔잔하게 다가왔다.

<일식>은 기억을 기록하고 저장하여 재생할 수도 있게 된 세계에서 '기억 관리자'로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까? '인간의 기억은 재생할 때마다 새로 덮어쓰는 파일 같'아서 ' 애초에 기억과 경험은 한 번도 완벽하게 일치한 적이 없었을(246p)' 거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단연 <행성사파리>이다. 미아는 물론 미아와 함께 패키지 여행을 떠나온 각각의 사람들도 매력적이었고, 쌍둥이지구에서의 여행이 정말 생생하고 흥미로웠다.

흥미롭게 읽은 또 다른 소설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이었는데, 기억을 영상매체로 포맷하여 관리하는 영원의 일에서 영상물을 디지털화하여 관리하는 일을 했다는 작가의 이력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우연을 가능하게 만든 '시작'부터 존재하는 전파를 가르며 별이 되는 중이다. 인간의 가장 소중한 기억들과 함께. 이만하면 충분히 아름답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 224p


소중한 기억들을 품고 우주를 유영하는 영원의 마음은 순간의 반짝임들을 모아 소설이라는 세계로 풀어내는 작가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만하면 충분히 아름답다 고,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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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천선란 외 지음 / 허블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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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과 표지에 반해서 구매했다가 본문을 읽고 깊은 사랑에 빠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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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밖에 없네 큐큐퀴어단편선 3
김지연 외 지음 / 큐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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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 참여작가 전원이 여성인 퀴어소설집이라 행복하게 펀딩했고,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어요.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작가님들의 무지갯빛 문장들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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