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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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사랑에 관한 책이다.

배리 로페즈는 이 땅에 굳건히 발 붙인 채 - 그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한 자 한 자 담아내며, 또한 팔레스타인의 시민들과 사냥당한 야생동물들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상흔을 담아내며 - 회복과 자연을 이야기한다. 그가 겪은 일들에 지나간 나의 고통들을 겹쳐 본다. 배리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자각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말 없이 압도적인 설득력으로 감각하게 해 주는 바람과 파도와 홍수를 마주했다(p.108). 그의 글에 담긴 것은 "사후에 가는 천국이 아니라 현세의 여러 장소와 현상(p.15)"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이다. 나의 세계가 저 너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일 때 신이 온전히 현현할 수 있다.

리베카 솔닛은 배리의 에세이에서 안을 향하는 시선과 바깥을 향하는 시선이 결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적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한 호흡으로 이야기(p.11)" 된다. 이 호흡의 규칙을 잊어버리면 세계 인식과 자기 인식이 필연적으로 왜곡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호흡이란, 가만히 내버려져 인간의 시혜적 손길을 원하는 가련한 자연에게 인간이 불어넣어주는 숨결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 그러나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악마 같은 인간의 손길로부터 유린당하는 전형적인 수동적 자연의 이미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극적 환상에 불과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만큼 자연이 살아 있다(그 반대도 성립하여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배리의 에세이에 담긴 자연은 우리의 호흡이 들숨과 날숨으로 자연스레 짝을 이루듯 우리의 존재 내외부를 이루는 근간이다.

그러니 배리의 치유가 단순히 자연의 풍광에 감탄하는 '힐링' 여행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그가 목격한 자연 속의 순간들로부터, "우리가 이 행성에 저지른 행태(p.144)"와 희생자들의 흔적으로 남은 "광기와 잔학(p.155)"이 어떻게 우리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고 윤리를 멍들게 하는지 이야기하며, 씨앗에서 튼 싹이 햇빛을 따르듯 우리의 삶이(생존이) 향하여 가야 할 지향점을 보여준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는 분들이, 자연 안에서의 소통과 치유를, 한 인간이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굳건히 두 발로 설 수 있는가를,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영원히 "사랑에 실패(p.251)"하지 않게 해줄 희망을. 그리고 그 누구도, 무슨 일을 겪더라도, 돌이킬 수 없이 산산히 부서지지는 않으리라고. "결코 사라질 수도, 파괴될 수도 없(p.69)"는 태양과 땅처럼.

#도서제공 #배리로페즈리뷰대회

https://www.instagram.com/p/C1Q8ufQynGW/?igsh=Z2p3aXpvZzZhdD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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