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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사회존재론 ㅣ 철학의 정원 47
하피터 지음 / 그린비 / 2022년 2월
평점 :
글쓴이 하피터는 미국 롱비치 주립대학교와 벨기에 루벤대학교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한 철학자이다. 국내에 정착한 후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로 체육철학과 현상학을 가르쳐왔다. 이 책의 서두에서 글쓴이는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의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지난 한 세기 동안 내로라하는 철학자가 닦아놓은 등산로를 일일이 소개한다. 예컨대 사르트르가 닦은 실존주의의 길, 데리다 등이 닦은 반주체주의 또는 해체주의의 길, 메를로-퐁티가 닦은 현상학의 길, 하이데거의 충실한 제자인 헤르만이 닦은 존재의 길, 가다머가 닦은 해석학의 길 등 여러 등산로를 소개한다. 눈에 띄는 것은 글쓴이가 국내 연구자의 하이데거 등정 방법도 등산로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김형효, 권순홍, 박찬국, 김종욱, 김진 등이 닦은 불교철학적 등산로가 그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글쓴이가 난해하기로 이름난 하이데거의 존재사유, 무엇보다 <존재와 시간>의 기초존재론을 기존 등산로에서보다 더 쉽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등산로를 묵묵히 개척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사회존재론의 길이 그것이다. 이 두툼한 책에서 글쓴이는 스스로 개척한 사회존재론적 등산로를 밟아서 어떻게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의 꼭대기에 올랐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향한 사회존재론적 등산로가 어떤 길인지를 밝히기 위해서 글쓴이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후설, 셸러, 딜타이, 짐멜, 가세트, 레비나스, 들뢰즈. 헤라클레이토스 등등 여러 철학자의 철학사상을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풀이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무엇보다 하이데거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 익숙한 사람을 놀라게 하는 하이데거에 대한 사회존재론적 해석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구에 대한 실천적 교섭과 실천적 노동을 통해 전(前)-의식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세계에서 그렇게 사회적 존재양태로 실존하는 사회적 세계-내-존재, 익명의 그들 사이로 흩어진 채 사회역사적 전통에서 뿌리가 뽑힌 비본래적 자기, 민족과 같은 공동세계의 지평에서 단일한 의지로 결속된 사회역사적 공동체의 단일체로 존재하는 본래적 자기, 민족 공동체에서 습속적 자기로 존재하는 본래적 현존재의, 자의와 구별되는 정황적 자유, 인간의 자연적 충동에 앞서는 현존재의 근원적 염려, 인간을 자연적 흙의 자연적 세계에서 존재하는 한낱 자연적 존재자로 보는, 곧 이성을 지닌 동물적 인간(homo animalis)으로 보는 전통적 인간 개념, 경작된 토지의 사회적 세계에서 사회적 존재자로 거주하는 인간적 인간(homo humanus), 곧 대지적 인간 개념 등등에 대한 풀이와 해명은 여태까지 하이데거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놀라운 통찰들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새로운 해석의 맛을 선사하는 하이데거에 대한 탁월한 사회존재론적 해석들과 거기에 담긴 철학적 통찰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