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임금님의 위험한 생일 파티
조나단 프리들랜드 지음, 에밀리 서튼 그림, 김서정 옮김 / 달과로켓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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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참 좋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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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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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줄리안 반즈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대한 대응물이라 할 만하다.

하나는 상징계적 서술이라면 다른 하나는 상상계적 서술이다. 이 둘이 다루고 있는 대상은 바로 근친상간적 애정관계이다. 아버지와 딸,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탐구.

  <예감은...>이 건조하게 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었다면,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상징적 질서, 그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부여받은 지위, 역할을 해내는 찌질한 존재로 그려졌다면, <비밀>에서 주인공인 아버지는 어떤 숭고할 정도의 순수한 사랑, 딸에 대한 사랑에 그 어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섞였다 하더라도 결국 극복해내는 완전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상상적인 어떤 것, 사후적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자아, 뺄건 빼고 살릴건 살려서 자기합리화된 주체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모습은 <예감은...>에 나오는 초라한 아버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움직이는 오이디푸스적 존재일 뿐이다.

  영화 <경주>의 장면들이 주인공에 의해 과잉 포장되고 미화되어 사후적으로 그려진 모습일 뿐, 사실은 훨씬 초라하고 찌질한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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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지젝 - 정치적, 신학적, 문화적 독법
강응섭 외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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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국내 라캉 전공자들의 독립적 연구가 나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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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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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충격적이면서도 터무니없다.

 

그리고 이 소설은 너무나 솔직하다. 너무 솔직하기에 충격적 반전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일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왜 안돼?” 진도를 나가려던 손이 제지당하면, 그렇게 묻게 된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 그 ‘느낌’을 두고 입씨름이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감정 문제에서 여자들은 전문가였고, 남자들이 거친 초보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은 교리나 어머니의 권고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반박 불가능했다. (44-45)

 

(느낌을 대지 않고 논리를 말하면 뭔가 반박할 것이 있을 텐데...)

 

좀 취했다 싶었던 어느 날 밤, 베로니카는 내 손을 그녀의 속바지 속으로 이끌었다... 두 어주 동안은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호령하는 기분이었지만, 내 방으로 돌아와 수음을 하다보면 때로 분한 마음으로 기분이 날카로워졌다. (62-3)

 

이런 방충맞은 놈을 다 봤나. 그래, 그 여자가 네 성기에 콘돔을 말아 씌어주는데도 처녀라고 생각했던 거야? 묘하게도, 그랬다. 내겐 속수무책으로 결여된 여성의 직관적인 기술 중 하나인가 싶었다.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 “넌 너만 아는 나쁜 놈이야.” 다음번에 만났을 때,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건 강간이나 다름없어.” (68-9)

 

나는 베로니카가 오래전에 받은 괴로운 상처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에게 신중할 것을 권했다... 무슨 뜻으로 ‘상처’라는 말을 한 거냐고? 그냥 짐작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증거가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했던 주말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다만 순진한 면이 있는 한 청년이 자신보다 지체 높고 사교술에 능한 가족에게 부대껴 심기가 불편했던 것 이상의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78-9)

 

  에이드리언에게 편지를 썼을 때, 나는 어떤 의미로 '상처'란 말을 썼는지를 스스로도 명확히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가, 인생의 끝자락에 와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한번은 장모가 -또 한 번의 아동학대가 신문지상과 TV 뉴스 프로그램을 오르내렸을 때- ‘학대받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베로니카가 목욕할 때나 잠잘 때면 맥주로 불콰해진 눈으로 그녀를 보던 아버지와, 포옹을 할 때마다 어딘지 도를 넘어선 듯한 오빠의, 요샛말로 ‘부적절한 행동’의 희생양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뭘 안다고? 무언가를 상실하게 된 근본적인 순간이라든가 사랑이 가장 절박했으나 그것이 거둬진 순간, 혹은 아이가 어쩌다 엿듣게 된 대화로 인해 혼자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 같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80)

 

(여기서 학대는 성학대 sexual abuse로 바꿔 번역해야 보다 명확할 것 같다. 물론 그러면 표현이 너무 강하겠지만. 학대라는 번역도 좀 과한 것 같다. 성 남용이라면 뜻이 애매해지고. 성 추행이 맞겠지만, 역시 표현이 강한 것 같다. 과도한 애정 표현 정도 일텐데.)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81)

 

** 여기서 이런 인용을 계속하는 것은 이 소설의 ‘반전’, 수수께끼 때문이다. 주인공의 ‘머리 좋은’ 친구 에이드리언이 주인공의 애인이었던 베로니카를 좋아하다가, 베로니카가 아니라 베로니카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는 충격적인 반전, 그래서 난산으로 장애아를 낳고 그로 인해 베로니카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반전 때문이다.

   이 소설은 말미에 그런 엄청난 반전을 만들어 놓고 아무런 설명없이 갑자기 끝나고 만다. 그러니 독자 스스로가 되짚어 설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나의 설명.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성적 ‘추행’을 경험한 베로니카는 그 상처로 인해 남자를 사귀는 데 극도로 예민하다. 한편으로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혹은 그와 유사한) 그런 성적 접촉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도("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 그로 인해 받은 상처 때문에 그것을 경계한다. 그녀는 늘 아버지와 오빠와 유사한 인물을 파트너로 선택한다. 처음 그것은 앤서니였다가, 더욱 유사한 인물인 에이드리언으로 바뀐다.

  베로니카에게 남자와의 접촉과 성적 접촉은 늘 잘못된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 어릴 적 상처를 다시 불러내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남자와의 접촉과 성적 접촉은 다른 말이 아니다.(남성이 만든 질서 속에서 남성들이 원하는 선택 이외에 다른 선택이 어디 있겠는가?) 어렸을 때의 상처가 그랬듯이 성적 접촉은 반드시 상처만을 남기게 되고, 그 모든 결과는 모두 자신이 아니라 타인들이 자신에게 부당하게 가한 결과이다. 그래서 베로니카는 모든 잘못된 결과를 상대방의 탓으로 책임을 떠넘긴다. (작가는 그런 부류를 피도 눈물도 없는,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라고 못박는다. 헤겔식으로 표현하면 '아름다운 영혼'의 경우, 라캉이 말하는 도라의 경우이다.)

   한편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가족 내에서 늘 따돌림 당한다. 남편과 아들은 베로니카만을 둘러싸고 돌아 간다. 그 결과, 그녀는 딸의 애인을 ‘유혹’한다. 그를 통해 딸에게 복수한다. 그리고 가족 내의 다른 남자 구성원들에게도.

  그러나 그 딸은 어머니와 에이드리언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작가의 표현은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이다. 그 상처를 끝없이 반복하기 보다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황당하고 지저분한 설명을 작가는 자신이 손수 하기 보다는 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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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박세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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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 참 재미있게 읽고 있다. 책의 내용이 원주의 생활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기에 원주에 살고 있는 내가 더욱 정감있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평소 박시인의 시를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꺼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 조금씩 읽는다. 아니 한꺼번에 몽조리 소화하기가 어려운건지도 모르겠다. 몽조리 소화하려는 조급한 강박증이 내 속에 숨어있는걸 이 책을 읽으며 '소급적으로' 발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재미라는 두리뭉실한 말로, '기의없는 기표'로 표현하기에는 좀 밋밋하다. 제목대로 가슴 밑바닥에 설렘이 일어난다고 할까. 가을이 신호등에 걸려 있다는 박시인의 표현이 떠오른다. 
  책에서 소개하는 원주 가볼만한 곳 가운데, 거돈사 절터가 있다. 거돈사 절터에서 현계산을 끼고 어재를 넘어오면 손곡이다. 책에서도 소개되는 조선시대 삼당시인이자 허균의 스승이기도 했던 손곡 이달이 기거했던 곳이다. 손곡 마을회관 옆에 옛날 주막 분위기가 조금은 남아있는 가게가 있다. 거기서 막걸리 마시던 풍경이 떠오른다. 비닐을 둘러쳐 가게 공간을 넓힌 구석에 옹기종기 마주앉아 주막 아주머님께 부탁드려 꽁치통조림을 따서 김치에 조림한 안주를 앞에 놓고, 지인 몇 분과 찬 공기를 마시며 눈길을 걸어와 마시던 치악산 막걸리, 그 분위기가 한꺼번에 버무려진 그런 감칠맛이 설렘과 더불어 느껴지는 그런 맛이 이 책에서 돌이켜 느껴진다. 
  다시 한 번 느끼는데 박시인의 시와 글들은 낯선 문자들의 돌연한 출현으로 어리둥절함, 생뚱맞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기표들의 우연한 듯한 불가피한 불륜적 조우,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다'란 책제목이 있던가, 내 속에 있던 안타까움, 무심히 아니 냉정하게 잘라냈던 나의 '보물'들이 자기 존재를 외치며 되살아난다고 할까. 
  어쨋든 읽기에 편하고 나를 돌이켜 보게 해 좋다.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다 생각해냈을까...^^  옛날 앙케이트 조사가 도입된 초기 무렵, 집을 방문해 설문지를 내밀면 집주인 왈, "내가 여기 살고 있는걸 어떻게 아셨나요?"라고 물었다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박시인은 이 책의 내용이 자신을 알몸으로 드러내는 느낌이라 했는데, 내가 볼 때 발가벗은 마음이 적절한 형상화의 의상, 객관적 제3자적 시각화를 통해 나름의 의상을 걸쳤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자신의 모습을 삶의 순간순간, 혹은 고비마다 나름대로 점검해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기와 비슷하면서도 객관화된 마음의 점검이랄까. 때로는 희화화시키기도 하고, 그를 통해 넘어서려 하기도 하고,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토로하면서 그것을 정제하기도 하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느꼈다. 
  이런 글이 글쓰는이 자신에게, 독자를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을 때, 자기 치유가 되는게 아닌가해서 약간 부러웠다. 시를 쓰는 사이사이 시적 형상화가 되기 전의 점검일 수도 있고 등등의 의미에서 시인 스스로 이런 글을 더 이상 안쓴다고 선언하는 것보다는 유예를 두는게 어떨지 생각해봤다.
  어쨌든 삶의 공백이라 느끼던 것들이 그냥 공백은 아니라는 걸, 곱씹어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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