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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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9월 6일에 개봉한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의 원작 소설입니다. 저는 영화보다 책을 먼저 알게 됐어요.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과연 무엇에 매혹당했을까?'였습니다. 표지의 여자들에게 누군가 매혹된 걸까, 아니면 여자들이 매혹당한 걸까.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제목이라는 인상도 받았어요. :)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이 작품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1864년,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떠난 인적 드문 마을에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죽음 직전 상태에 놓인 군인 '존'이 구조됩니다. 존은 7명의 여자들만 살고 있는 여자 신학교에 머물게 되는데요. 매혹적인 손님의 등장은 그녀들의 숨겨진 욕망을 뒤흔들고, 살아남으려는 존의 위험한 선택은 모든 것을 어긋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매혹당한 사람들>의 작가인 '토머스 컬리넌'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입니다. 1966년에 발표한 첫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2017년 현재 읽어도 전혀 지루하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래 전에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작품은 최근에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전혀 잔인하지 않은 일상적인 장면만으로도 여자들 간의 관계와 갈등을 긴장감 있게 서술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소설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부 연방군 소속인 존과 남부 소학교의 여자들은 이념이 상반되죠. 이 책에서는 대립하는 이념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신학교를 고립시키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남북전쟁이라는 배경을 선택한 것 같았어요. <매혹당한 사람들>이라는 작품은 고립된 공간이기 때문에 성립될 수밖에 없는 갈등들을 담고 있거든요. 오히려 소설 속 인물들 중 대부분은 살기 위해 이념을 바꿀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숲에서 그를 발견했다. 해리엇 선생님이 인디언이 다니던 길에서 더 멀리 가지만 않으면 버섯을 캐러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인디언 길은 호수 쪽으로 경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있었다. 땅은 전부 판즈워스가 소유였지만 그들은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로서는 상관없었다. 자연 그대로 보존된 숲과 같은 곳이 남아 있는 게 더 좋았다. 어쨌든 그날 오후, 5월 첫 주의 어느 날, 나는 버섯을 많이 못 캤지만 그를 발견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 다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성격도, 욕망도, 목표도, 이념도 다른 인물들이 고립된 공간에 묶여있다 보면 서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소설의 화자를 인물들이 번갈아 가면서 맡고 있기 때문에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더 돋보이기도 했던 것 같고요. 존 맥버니 상병이 각기 다른 여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서 비위를 맞추고, 여자들이 서로를 경계하면서 작품의 긴장감은 점차 고조되고 독자들은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이 책의 후반부 100쪽은 협박과 폭력으로 스릴러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그때까지는 오로지 관계와 권력, 갈등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존 맥버니 상병이 초반에는 신학교의 모든 구성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위를 맞추는 것이 감탄스러울 정도였는데요. 그렇게 싹싹하고 센스 넘치던 인물이 다리를 절단 당한 이후로 완전히 캐릭터가 변하던 게 소름 끼쳤어요. 그래서 전반부에서는 존 맥버니를 차지하기 위한 갈등에서 후반부에서는 존을 몰아내기 위한 갈등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변하는 관계들의 양상을 보면서 독자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모두 이렇게 근사한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아가씨들이 그날따라 근사해 보인 건 서로 파티 준비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모여 어떻게 하면 가장 예쁠지 의논했고, 서로서로 가장 예쁜 모습으로 꾸며주었다."

자기 말이 모두 옳다고 강요하는 독선적인 '마사', 모든 책임을 언니에게 떠맡기는 의존적인 '해리엇',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존', 고상한 척하면서 모두를 비웃는 '에드위나', 자기가 가장 똑똑한 줄 아는 '에밀리', 존을 대놓고 유혹하는 '얼리샤', 모든 사람들을 약올리는 '마리', 존을 동물처럼 여기는 '어밀리아'.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중에서 누가 가장 악한 걸까?'였어요. 그정도로 인물들을 선악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을 서술하고 있어서 자신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으면서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는 게 들통나기도 하고요.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매호강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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