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1. 보온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오리진 시리즈 1
윤태호 지음, 이정모 교양 글, 김진화 교양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윤태호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미생>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어요. 솔직히 <미생>을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취준생의 입장에서 읽어버려서 회사 안의 그 치열한 경쟁 구도를 주인공과 함께 버텨가는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많은 고찰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윤태호 작가님의 신작, <오리진>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



<오리진>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ORIGIN이란, '기원,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죠. 그래서 처음 제목을 봤을 땐 굉장히 거대한 이야기가 이 책 안에 들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제가 책을 쓴다면 '오리진'이라는 제목을 택할 때까지 많은 고민이 들 것 같았거든요! 거대하지만 추상적인 개념을 의미하고 있는 단어니까요.

이 책의 장르는 '교양만화'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만화책이라고 하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내용만 들어있다고 생각하시는 부들이 많으실 텐데, 이 <오리진>이라는 작품은 그런 편견을 깨부수고 있습니다. 꼼꼼하고 천천히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중간중간 재치 있는 대사나 재미있는 표정 묘사를 통해 웃음을 주기도 해요. 특히 주인공인 인공지능 로봇 '봉투'가 넘나 귀엽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윤태호 작가님만의 독자적인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관련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도 내게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작품의 연재가 끝나면 사라지는 지식들. 다시 무식한 나로 돌아왔다. <미생>에 쓴 대사처럼 '기초 없이 이룬 성취는 단계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성취 후 다시 바닥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흔히 말하는 '교양'이라는 것을 파고들어 알기 쉽게 서사와 연결하고, 드라마의 힘을 결합한 정보로 기억에 강하게 남는 책을 원했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다루려는 주제는 '교양'입니다. 교양이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교양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우리 삶을 성장시킬 수 있는 품위와 지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교양을 다루는 교양만화라니.


"우주는 귀하다. 지구와 생명도 귀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인류가 없다면 우주는 찬란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하며, 자기 나이가 138억 살이라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없었다면 그 어떤 동물과 식물도 이름을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며, 그 어떤 꽃도 예쁘지 못했다. … 이처럼 귀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역시 생명이다. 생명은 열이 있는 곳에서 기원했으며, 열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열은 생명의 기원이자 조건이다. 열을 지키는 보온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오리진> 시리즈는 10권에 걸쳐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 중 1권에서는 '보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는 책의 첫 출발이 왜 보온에 대한 이야기인지 궁금해하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서울시립과학관장이신 이정모 관장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 체온 유지는 필수적입니다. 36.5도라는 이 미묘한 온도에서 1도 낮아지거나 높아져도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보온'이라는 개념은 누군가의 도움을 의미합니다. 누구도 혼자 살아남을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윤태호 작가님께서 보온을 첫 이야기의 주제로 삼은 것은 사람들과 로봇 '봉투'의 만남에서도 중요한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영원히 살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오히려 사람들은 훨씬 어린 나이에 목숨을 끊는 일들이 빈번해집니다.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먹으려 하지 않고, 살려 하지 않게 된 것이죠. 사람들은 스스로를 멸종의 길로 몰고 가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한 과학자가 그런 인류를 돕기 위해 삶의 에너지가 가장 뜨거웠던 21세기로 로봇을 보내 그 원인을 학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래에서 보내진 인공지능 로봇은 과거에서 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해야만 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인 드림로봇 회사의 과학자 일행들은 이 로봇에게 '교양'과 그 '기원'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사명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드림로봇 회사는 이미 파산한 상태고, 빚쟁이들이 남은 모든 것을 가져간 후입니다.


과학자 일행과 로봇은 한 빚쟁이의 동정으로 그의 집에서 지내게 되고, 여기서 로봇은 인간의 항상성에 대해 학습하게 됩니다. 빚쟁이 가족들이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자 자신의 체온을 내려서 열을 낮춰주기도 해요! <오리진> 1권에서는 '동정심'이라는 감정선이 굉장히 많이 드러나는데요. 보온이라는 테마와 함께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우리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감정선이 아닐까 싶네요.


처음엔 로봇을 낯설게 여기던 가족들도 로봇의 도움을 받게 되자 천천히 그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로봇의 이름도 '봉투'라고 지어지게 되는데요. 로봇의 정신연령대가 5~6살이라 아들인 봉원이와 정신적 유대를 많이 쌓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봉투는 1권에서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36.5도로 맞춰 인간의 항상성 모드로 변환하는데요. 그래서 사람처럼 추운 곳에 오래 나가 있으면 순간적으로 기절도 하더라고요! 봉투가 자신의 체온을 36.5도로 맞춰놓는 데에는 온도를 통해 조금이나마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점이 기존의 인공지능 로봇 캐릭터와는 다른, 학습하는 로봇인 '봉투'의 캐릭터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뒷 부분에는 '보온'에 대한 과학적·역사적 사실들까지 덧붙여 놓아서 재미뿐만 아니라 논리성도 확보하고 있어요. 정말 완벽한 교양 만화 아닌가요?ㅋㅋㅋ 아이들이 이해하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딱딱하게 배우는 지식들을 만화책을 재밌게 접근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1권밖에 나오지 않았다 보니 전체적인 스토리가 확실히 파악되기 보다는 복선을 많이 깔아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편이 더더더더 궁금해진달까요!!! 특히 봉투가 사람처럼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보니, 봉투의 학습과 성장을 통해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가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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