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 - 날_안아_주었던_바람의_기억들
안시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안시내 작가님이 쓰신 <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라는 여행 에세이는 개인적으로 저에겐 굉장히 오랜만에 접하게 된 에세이였어요. 언제부터인가 에세이를 멀리 하게 되고, 소설이나 시만 읽어왔거든요. 학교 수업에서 에세이는 다루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 에세이는 굉장히 간만이었답니다. :)



"함께하는 여행이란 말이야.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너를 알아가는 시간이 늘어난다.
홀로 커가며 만들어진 투박하고 딱딱한 마음 대신에
사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에세이의 첫 여행은 '어쩌면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친구인 소희와 함께 떠난 러시아에서 시작됩니다. 안시내 작가님이 SNS에 올리는 짤막한 여행 일기에서 시작된 책이다 보니, '나' 혹은 독자에게 건네는 편지나 일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책을 읽고 있다기보다는 조곤조곤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 읽다 보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에세이가 서재에 한 권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을 떠나면 현실의 고민이나 걱정거리들을 잊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에세이 자체가 여행의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안시내 작가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있는 기분이 든답니다.


"우리는 생각했다. 귀찮다고 미루기에 이 도시는 아까울만큼이나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급하게 비운 가슴일지라도 오늘 또한 아름다운 이 모습이 오롯하게 담긴다는 것을. 낯선 언어의 지저귐은 우리의 마음을 늘 들뜨게 한다는 것을. 오늘 바람에 섞여 들어오는 달과 별의 냄새는 딱 오늘뿐이라는 것을.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망울이 우리의 여행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안시내 작가님이 책속에서 표현한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의 일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해외여행의 이국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지 않아요. '오래된 여행, 여행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장에서는 초보 여행자와 오래된 여행자의 태도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나'는 하루에 한 곳만 다녀와도 피곤한 지금과는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 밤 늦도록 이곳저곳을 쏘다녔던 첫 배낭여행을 떠올립니다. '어떤 여행은 좋고, 어떤 여행은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지던 때가 그리워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네요. :)

저는 오사카와 싱가포르에서 각각 4박 5일간 여행을 다녀온 경험밖에 없는 초짜 여행자라, 오히려 작가님처럼 오래된 여행자의 태도로 한 번쯤 다녀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소나 맛집을 꼭 방문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곳의 일상을 그대로 느껴보는 여행도 색다른 느낌을 줄 것 같아요.



"고작 두세 살이나 되었을 법한 아이는 나와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여윈 고사리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함께 길을 거닐던 나의 소중한 친구였으며 나의 아이였다.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건네고, 품 안 가득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는 게 우리의 대화였으며 이런 살갗의 대화들은 우리의 시간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가끔씩 그 아이를 떠올렸다. 얼굴 가득 돌가루를 묻힌 길 위의 아이, 물 비린내가 가득 묻어나던 살냄새, 그 아이가 좋아하던 콘 아이스크림, 내 무릎에 앉아서 함께 바라보았던 반짝이던 호수, 작별과 함께 터져버린 아이의 먹먹한 울음, 뒤돌아가던 나의 모습까지."

이 에세이는 전체적으로 시간, 장소, 사람, 이 3가지의 요소를 중점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여행에서 만난 친구와는 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만남이 품는 소중함이나 애틋함이 있더라고요. 몇 년간 사귀어온 친구에게도 선뜻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여행 중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툭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추억도 하나의 기념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어요.

특히 '싸마디를 위하여'라는 장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싸마디는 인도의 길에서 사는 아이인데, 말은 통하지 않지만 교감을 통해 '나'와 친구가 된 아이예요.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난 친구였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3년 후에 안시내 작가님이 다시 인도로 여행을 와서 재회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깊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네요. 시내 작가님은 또 다시 인도를 떠나며 싸마디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하지만, '똘망똘망한 소년이 되었다가,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가,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는 싸마디의 모습을 그리며 인도와 작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짤막한 감성 에세이와 여행지에서 촬영한 사진드롤 구성되어 있어요. 그 장소에서 보낸 시간을 중요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여행 사진들은 그 나라의 특색보다는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안시내 작가님이 사진을 촬영할 때,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찍은 사진들이 실려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에세이가 지닌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사진에도 듬뿍 묻어났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사진 이미지를 한 장에 걸쳐 삽입한 경우도 많았는데, 책이 접히면서 사진의 중앙부가 잘려나가 마음이 아팠어요. ㅠㅠ


"낯선 거리와 낯선 공기, 귓가를 맴도는 낯선 언어의 지저귐이 만들어내는 행보을 만끽하며, 나와 그리고 우리는 온전한 설렘을 느끼며, 하루 종일 행복해볼 거라고 다짐하며 걸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죠. 그곳, 그 순간, 그 사람을 기록하는 것이 나만의 여행을 완성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여행 에세이, 한번 써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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